뇌가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전원을 뽑아버린 뇌의 비밀

by 미리나


통증은 마음이 감당하지 못할 슬픔을 몸이 나누어 짊어주었다.


소파 위에 쓰러지듯 기절해 버리는 밤, 해마 속에 뿌연 안개가 갇힌 듯한 '브레인 포그'가 느껴질 때면 가장 아픈 건 몸보다 나 자신을 향한 날 선 칼날이었다.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자책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한 번 더 짓밟곤 했다. 더 가다가는 정말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몸이 먼저 배터리를 분리해 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왜 이 모양이야?”라고 하지 않고
“오죽했으면 이럴까.” 그렇게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잘 되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내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내가 먼저 알아주자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멈춰버린 컴퓨터를 세게 흔든다고 재부팅이 빨라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회복은 시작된다.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반드시 비용이 따랐다. 시간, 에너지, 설명되지 않는 좌절까지. 세상은 그것을 공부라 부르며 언젠가 성장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통증은 달랐다.

선택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수업.


몸이 먼저 듣고 마음이 뒤따르는 살아 있는 시험이었다.






가끔 세상은 나만 모르는 '비밀 대화방' 같다. 나만 빼고 모두가 즐거운 암호를 주고받는 것 같고 나 혼자 텅 빈 교실에 남아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소외감의 끝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지금 어려운 건 맞지만 다 지나갈 것이다, 이 지구별은 온통 배움이 많은 곳이자 공부라고 늘 말씀하셨다.


대체 무엇을 더 공부하신다는 건지 의문이 생길 때쯤 나는 그분의 손을 보았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삶을 '공부'라고 정의해 보았다.




정의를 가슴에 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책 속 문제는 머리로 풀 수 있었지만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통 앞에서는, 이 또한 배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타들어 가는 와중에 불의 온도를 재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공부는 정답이라도 있지만 삶이라는 문제지는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도 해설지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지금 제대로 풀고 있는 것인지, 오답을 정답이라 믿으며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엄습했다.




남들은 모두 다음 챕터로 넘어가 행복이라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해독 불가능한 고통 앞에 멈춰 서 있다는 것이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삶이라는 위대한 학문을 써 내려간다고 나를 다독이며 그렇게 고통을 공부로 관점을 바꾸자, 통증은 문제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풀기 어려운 고난도 문항 앞에 있는 것뿐이다."

"나는 누구보다 어려운 전공 필수 과목을 이수 중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답안지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적어도 내가 겪는 이 시간은 의미 없는 소모가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나는 잎을 떨구고 있었지만 내면에서는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아픔 앞에서 자주 위축되었지만 통증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증오하지 않아야지.

견디지 못하는 날이 와도 제발 나를 탓하지는 말자.


공부가 늘 좋은 성적표로 보상받지는 않듯, 삶의 배움도 언제나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어떤 통증은 지나고 나서야 배운 것이 된다. 의사 선생님은 삶의 모든 순간이 배움터라고 하셨다. 그 말은 고통마저도 인생에서 버려질 시간은 아니라는 따뜻한 응원이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속으로 몇 번이나 되물었다. 쉽게 수긍되지 않았지만, 그 말씀은 마른 땅 아래로 번져가는 물기처럼 스며들었다.


내 의심은 바람처럼 오갔지만 그 음성은 자리를 지킨 채 서 있었다. 밀어붙이지 않았기에 더 깊이 내려왔다.


말은 그렇게, 마음의 바닥까지 닿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문을 열게 되었다. 왜 한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그 영혼의 밑바닥까지 다독여주시는지.


그 따스한 음성 끝에 매달려 걷다 보니, 어느새 고통은 잘라내 버려야 할 손톱이 아니라 지우개처럼 닳아 없어지던 내 마음을 잡아주는 근육이 되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객관적이어야만 하는’
직업이라 믿어왔다.


주치의 선생님의 철학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그 괴리감 속 진심의 무게는 실로 엄청났다. 수동적인 ‘환자’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공부하는 주체로 격상시켜 주셨다. 그 깊은 예우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고통이란 견디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내게, 고통을 ‘해석하는 힘’을 선물해 주셨다.


전문성 위에 얹어진 따스한 ‘인간미’의 뿌리는 어디였을까. 잘 다니던 대기업을 뒤로하고 32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띠동갑 동기들과 부딪치며 의대에 입학하셨다던 치열하고 특별한 이력이 떠올랐다.


전공의 시절 이성적으로만 환자를 대하라고 선배들에게 혼이 나기도 하셨다는데 (이걸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꾸중조차 꺾지 못한 청년 의사의 진심은 지금도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이쯤 되면 나의 회복기라기보다, 의사의 삶을 기록하는 ‘주치의 탐구생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 또한 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또 다른 회복이 아닐까. : )




우리를 수렁에 빠뜨리는 건 육체의 아픔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는 허망함이 더 클 것이다. 나는 여타 삶을 좀 살았다는 어른들의 조언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들렸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 몸의 고통을 직접 다루는 의사의 말은 다르게 와닿았다. 고통에 ‘이름’과 ‘의미’를 붙여주는 엄숙한 의식같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울림이 다르듯, 원장님은 한 사람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려 애쓰셨고 그 위에 ‘배움’이라는 화음을 얹어주셨다. 아픔을 홀로 감당해야 할 ‘공부할 거리’로 주지 않고 곁을 지키며 함께 ‘풀어갈 숙제’로 여겨주셨다. 나의 자랑스러운 주치의 김정훈 원장님. 원장님께서 보여주신 따스한 철학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고 믿는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라는 생각은
고통을 다시 커지게 했다.



어쩌면 고통은 사라지려고 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고통을 자체 생산하는 '자가 발전소'가 되는 걸지도 모른다.


원장님의 말을 인용하면 자율신경은 의지로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와 같다.


"그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억지로 고삐를 당기지 않고 말의 등에 몸을 맡기는 것이겠구나."


"오늘은 좀 아프네, 뭐 어쩌겠어"
"내일은 좀 덜 매운맛이겠지"하는 맹목적인 낙관 사이 어디쯤에 자리를 마련해 둬야지.




바닥에 닿았다는 건 더 내려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 내면에서는 수조 개의 세포가 단 한 명의 VIP, 당신을 살리기 위해 24시간 비상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통증은 그들이 무너진 탑을 쌓으며 다시 빛을 밝히기 위해 전선을 잇는 스파크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몸이라는 위대한 제국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


당신의 고통은 유효하다. 그리고 당신의 회복은 필연적이다.



완벽한 치료는 없지만 동행은 가능하다



의사 또한 위로가 필요한 유한한 존재라는 것은 나에게 하나의 다짐이 되었다. 하지만 치료 초기의 나는 지금보다 다섯 배는 더 무거운 시간을 지나고 있었기에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견디기 벅찼고, 조급했다.


원장님은 늘 다 들어주겠다는 듯 천천히 말씀하셨다. 나는 잘 넘어졌고 치료실 베드며 의자에 자꾸 부딪혔다. 나에게 원장님은 천천히 말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왜, 왜 제 마음을 다 알아주지 못하느냐고.


적어도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만큼은 다 알아주길 바랐다. 간호사님들이 난처해할 만큼 개인마다 꼼꼼하게 질문하는 것, 그것이 주치의 선생님의 진료 스타일이었다. 환자의 삶을 깊이 굴착해야만 다음 진료라는 길을 낼 수 있다고 믿는 분의 성실함 앞에서 마음의 끈을 늦출 수 있었다.




원장님의 권유에 따라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짓누르느라 온몸의 근육이 비틀리고 있었다. 나의 수위는 턱 끝까지 차올라 지금 당장 와다다 쏟아내지 않으면 영영 이 고통으로 침몰해버릴 것 같다는 공포를 모르시는 것 같았다.


“원장님, 제가 왜 천천히 말하지 못하는지 아세요? 제가 지금 최고로 아파요. 이렇게 어떻게 살아요. 저 지금 너무 고통스러운데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영영 이 어둠 속에 잠겨버릴 것만 같아요. 제발...”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은 혀끝을 맴돌다 차가운 위장 속으로 꿀꺽 삼켜졌다. 감당할 수 없는 이 대형 아픔의 무게를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나만큼이나 느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내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의사 역시 한 인간일 뿐인데 그때 나는 논리보다 감정이 앞섰고 주치의 선생님만큼은 환자 중 한 명이 아닌 전부이고 싶었다. ;;



돌이켜보니 그 서러움과 간절함은 치열한 자기애였다. 나를 포기했다면 그렇게까지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토록 아파했던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너무나도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몰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다시 수면 위로 숨을 쉬러 올라가고 싶어서 나는 그토록 처절하게 이해를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너는 참으로 뜨거운 바다였어. 살고자 하는 불꽃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지."


이제는 그 시린 바다를 건너온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의사는 기계가 아니고, 나 역시 쉬운 환자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종종 시간을 넘기고 결론을 미뤘지만 단 한 번도 대충 지나치지는 않았다. 서로의 유한함을 인정하며 느릿하게 맞춰간 그 보폭은 가장 밀도 높은 치유의 과정이었다.


어느 날 원장님은 내 증상을 다 밝혀내지 못한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사과는 오히려 나를 덜 외롭게 했다. 누군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이 문제를 들고 가고 있으니 아픔을 나 혼자 책임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나는 환자인 줄 알았는데 진료실에서 관계를 배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료는 이인삼각 경기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 한쪽이 앞서 나가려 해도, 다른 한쪽이 멈추면 같이 넘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진료 때였다.


“제 증상이 워낙 복잡하잖아요. 그래도 저 치료 잘 받을게요. 원장님 믿어요.”


원장님은 웃으시며 "잘 해오셨잖아요.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파이팅!!" 하셨다. 당시에는 힘듦만 보여서 그 짧은 말이 별것 아닌 것처럼 들렸는데 나를 꽉 붙잡아 주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같이 가고 있다는 건 절절히 느꼈다.


나 역시 모든 진료를 다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어떤 순간들은 많이 기억난다. 감히 내가 받던 그날의 사과나, 그날의 웃음처럼, 의사도 위로가 필요했을 거라고 이제 와서야 생각한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불안한 이유



뇌가 가짜 통증을 처방하던 시절이 있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마음의 부정적 생존 본능은 비극을 집필했다. 사소한 지연은 몰락의 아카이브에 박혔고 실수는 ‘인생 폐업’이라는 표제를 붙여 저장되었다.


의학적으로 뇌는 안온함보다 위협에 훨씬 더 민감하게 설계되었다는데 나의 뇌는 그 본능을 백 배쯤 비대하게 부풀려 실행하는 듯했다. 생존을 위한 기제라지만 이 창작 활동이 지나치게 정교한 것이 화근이었다.


명치의 뻐근함은 뇌가 출력한 고약한 오류였을지도.

정서를 통증으로 오역하는 과잉친절, 인지적 오지랖...ㅎㅎ




요즘 나는 뇌의 자동 업데이트 기능을 강제로 폐기하고 느릿하고 투박한 '수동 패치'를 가동한다.


(자동 사고-오늘 정말 망했어, 곧 세상이 무너지고 종말 하겠는데?)


(수동 사고-놉! 뇌가 에너지가 고갈되어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야. 당분이 결핍되었다는 것과도 같으니 초콜릿이나 씹자.)


수동 모드의 연비는 가히 최악이다. 타인들이 편견이라는 8차선 고속도로를 무념무상으로 질주할 때 나는 생각의 길목마다 검문소를 세워 일일이 통행 검사를 한다.


“너, 진짜 위협이야? 아니면 내 뇌가 비축해 둔 저급한 소설이야?”


에너지가 바닥나면 뇌는 파업을 선언하며 태업에 돌입한다. '야, 예전처럼 편견과 불안의 늪에서 안주하자. 그게 훨씬 가성비 좋아'라며 머릿속에서 시위를 벌인다.


이럴 때면 내 뇌가 나를 무한 동력으로 회전하는 ‘태양 전지판’쯤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분 좋은 과부하가 꽤나 애틋하다. 자동으로 렌더링 된 가짜 현실에 사느니 땀 흘려 수동으로 채굴한 피곤한 진짜 현실에 발을 딛는 편이 훨씬 낫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증상 앞에 서 있다면 지금의 현실보다 앞서 불행을 써 내려가는 과대망상적 시나리오 작가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보길 권한다.


우리의 통증은 때로 뇌가 보낸 비겁한 오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허술한 소설의 구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나는 망가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뇌가 나를 살리려고 전원을 뽑은 것이었다.



나는 지금, 재부팅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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