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배역, 나의 완쾌

타버린 배선을 이어 붙이며 써 내려간 기록

by 미리나


2025 봄날


통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고독, 그리고 동행

통증은 철저히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이다. 피가 흐르는 것도, 뼈가 부러진 흔적이 남는 것도 아니다.


칠흑의 명암을 투과한 별이 가장 또렷하게 빛나는 것처럼, 나의 깊은 고독의 시간도 이토록 유구하게 흘러간다.



머지않은 훗날, 시린 가슴을 부여잡은 누군가의 밤 위에 말없이 부유하는 잔망의 등불이 되어주고 싶다. 단단하게 결빙된 슬픔을 부드러이 녹여내기를 소망한다.






주치의 선생님은 집요하게 문진하고 끝없는 질문을 했다.

형체 없는 고통을 가시화하기 위해 삶의 골목과 갈피마다 숨어 있던 아픔들을 정성껏 꺼내도록 만든 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끝내 보이게 하려던 그 집념이 얼마나 숭고했는지.




몸에 불이 붙은 듯 전기가 흐르고 열감이 치솟을 때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하게 흘러간다.


타인들의 가벼운 날씨 이야기가 때로는 나를 공격하는 무기처럼 느껴졌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은 나를 투명 인간으로 만들었다.


고통을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통증이었기에 결국 입을 닫았다. 분위기를 흐릴까 봐 아프지 않은 척 웃으며 장단을 맞췄지만 ‘평범함’을 연기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폭주하는 신경과 '나'

자율신경이 폭주하면 감정의 여과지가 먼저 찢어진다. 누군가에겐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이, 내게는 살을 베는 칼날이 된다. 나는 한동안 성격 탓으로 돌렸다.


내가 예민해졌고, 까칠해졌고, 못난 사람이 되어버린 거라고.


스스로의 성질머리에 질려 고개를 떨군 날도 적지 않았다.


가장 괴로운 건 ‘아프기 전의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었다.


활동적이었던 나는 사라지고 누워만 있던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서 있었다.


병이 내 인격을 집어삼킨 것 같은 비참함 속에서 통증은 내 몸의 주인이 되었고, 나는 구석방에 얹혀사는 손님이 되었다.


아픈 것보다 “내 삶을 내가 못 산다”는 생각이 버거웠다.


아픔이라는 녀석은 신발도 벗지 않고 들이닥쳐 안방을 차지하더니 내가 평생 모아 온 일상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문밖으로 내던진다. '이제 여긴 내 집이야.' 그 기세에 눌려, 마치 내 삶의 전세 계약이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만 생각해 보면 통증이라는 고약한 집주인이 아무리 벽지를 찢고 가구를 부숴도 난장판을 바라보며 '정말 더럽게 구네.' 하고 투덜거리는 ‘나’라는 관찰자까지는 쫓아내지 못했다.


비록 내 몸이 고장 난 1인용 소파처럼 삐걱거릴지언정, 이 상황을 어떤 장르로 부를지 결정하는 건 나였다.




통증은 일상을 점유할 수는 있어도 내 자아의 등기부등본까지 위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완전히 쫓겨난 게 아니었다. 좀 많이 시끄러운 룸메이트와 잠시 원치 않는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집주인의 진짜 힘은 이 소란 속에서도 '내일은 무슨 커피를 마실까'를 고민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통증이 집주인처럼 굴어도 생각하는 나, 느끼는 나, 바라보는 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몸의 주도권은 잠시 흔들릴지라도, 삶을 해석하는 주도권만큼은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2025년 봄, 기적 같은 평온이 또 찾아와 주었다

희망을 품었다가 무너질 때 밀려오는 상실감이 두려워 아예 마음을 무채색으로 물들여 감춰놓고 지내기도 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을 거라 믿으며 감정의 불모지에 가두었던 시간들이었다.


내 몸이 가엾어 하염없이 눈물을 쏟다가도, 당장 이 통증만 멈출 수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육신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극단적인 감정의 파도가 수시로 내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폭풍우 같던 통증과 발열이 잦아들고 평온한 날들이 찾아오면 고통도, 평온도, 결국 지나간다는 걸 또 한 번 배운다.


몸으로 배운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데 머리로 배운 것들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흔들리고 때로는 사라진다.


그럴 때면 '버티는 시간'이었던 일상이 되살아났을 때 벅찬 기적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주치의 선생님께 생각할 틈도 없이 음성 녹음을 보냈다. 지금은 삭제되어 그날의 떨림을 정확히 복기할 순 없지만 다시 찾은 평범한 하루가 내게는 얼마나 눈부신 기적인지, 그리고 이 행복이 너무나 소중하여 통증처럼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 온다는 그런 이야기들.


늘 새로운 삶을 자주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그 말에 내 모든 진심을 담았다.




당신의 배역이 되어

확장 개원 준비로 숨 돌릴 틈 없이 바쁘셨을 텐데도 영상 편지로 답장을 보내주셨다.


나의 아픔을 기꺼이 '자신의 배역'으로 받아들여 준 분. 먼 훗날 시간이 쌓여 모든 것이 흐릿해질 때에도 가장 먼저 만져지는 고통 없는 흉터처럼 따뜻한 기억으로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영원히 바래지 않을 찬란한 결정체로 만들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내 삶이라는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끈적하게 달라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관객석을 떠날 때 무대 위로 걸어 들어와 나의 비명 섞인 아픔을 당신의 '배역'으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방향 없이 홀로 삼켜온 짠 눈물방울들은 당신의 진심이라는 중력에 이끌려 제 자리를 찾았고 이내 차갑고 투명한 빙결의 결정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통증의 시간들은 당신이라는 몸을 거치며 의미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배역을 충실히 살아내는 배우이자, 거대한 하늘의 섭리 아래 놓인 존재들입니다.


감독의 뜻에 따라 가장 성실하고도 지극한 마음으로 너무나 무거운 배역을 수행해 준 당신 덕분에 나의 무대는 차마 막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나는 암전을 걷어내고 다음 여정으로 걸어갑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의 배역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세계를 멸망에서 건져 올리는 가장 고귀한 예술이겠지요. 이 따스한 기억은 내 삶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으로 남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낄 곳이 없었다는 말씀은 내가 태어나 들어본 말 가운데 가장 높고도 아득한 겸손이었다.


나는 그 무구한 헌신을 경배하듯 수행해 내는 그분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 석 자를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박아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름이 곧 권력이자 존재 증명이 되는 시대니까.


사실 그분의 겸손은 내 눈에는 화려하고 눈부신 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낮게 깔린 잔잔한 안개 같았다.


고요한 헌신 덕분에 누군가는 숨 쉴 틈을 얻었고 살아갈 자리를 되찾았다. 덕분에 누군가의 평범한 오늘이 기적처럼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상에는 늘 ‘주어’가 빠져 있는 듯 보였다. 그 빈자리에는 언제나 환자들의 고통 섞인 생각과 안부가 빽빽하게 차 있었다.


이토록 아름답고 고요한 빛이, 찬 바람에 시린 환자들의 살결마다 구석구석 닿기를 바란다.


이름을 지운 자리에 생명을 채워 넣은 온기가 더 많은 이들의 내일을 맞이해 주기를.




나는 완벽한 도움과 돌봄을 받았다. 혼자 간직하기엔 너무도 커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려보내게 되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의 건강한 후유증 같다.)


아름다움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전해지는 것이기에, 이 마음은 나만의 행운으로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자신의 이름을 버림으로써 타인의 삶을 밝히는 이 고귀한 지성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구석들까지 온기로 스며들기를.


당신께서 수행해 낸 이름 없는 배역 덕분에 보잘것없어 보였던 무대 위에서도 나는 내일의 대사를 읽어 내려갈 용기를 얻는다.



스스로를 비워 타인의 아픔을 채우고 다른 삶을 받들어 유유히 사라지는 그 뒷모습에서 고귀한 예술이 지나간 자리를 목격한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은 휘발되기 쉬운 산소 같아서 나는 늘 기록하며 놓치지 않으려 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혼자일 수 없다.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동안 잘해왔으니 견딜 수 있다. 지나갈 것이다. 옆에서 늘 돕겠다.'


그 말들은 내 삶 어딘가에 숨겨 둔 비상식량이었고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을 땐 나를 펼쳐 감싸던 에어백이었다.




통증 핑계로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필체였지만 삐뚤빼뚤한 글자들은 내게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괜찮아, 너에겐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이 있잖아!”


그동안 나는 모든 문제를 의지의 부족이나 마음의 문제로 치부하며 나를 단련하려 애썼지만 자율신경은 ‘배선’의 문제였다.


하드웨어가 타버렸는데 긍정이나 명상 같은 고사양 소프트웨어를 깔아봤자 과부하로 멈추는 것은 당연했다.




순서가 틀렸던 것이다. 전선이 끊어졌으면 전선을 이어야지, 전구 앞에서 빛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할 수는 없었다.


맹수가 들락거리는 무너진 담벼락 아래서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배웠다.


첫째는, 몸에서 광기 어린 소음을 내뿜던 비상벨을 압수하는 일이었다.


짐승처럼 곤두서 있던 교감신경의 발작을 잠재우고 의지와 세상의 모든 처방을 긁어모아 나를 끌어당겨 앉히는 비굴하고도 처절한 교정 작업. 죽음의 인력에 순응하려던 근육들을 다독여 다시금 삶이라는 비우호적인 편에 서게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비겁한 생존의 시도였다.


둘째는, 마음의 심지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아무리 견고한 벽을 세운들 낡은 집 내벽에 영혼의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면 치유란 그저 박제된 수사에 불과했다. 방마다 가느다란 온기가 수혈되고 마침내 마음이라는 스위치가 점멸하며 빛을 내뿜었을 때 ‘치유’는 내 몸의 곳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모두가 괴로움을 전부 마음의 탓으로 돌리며 소중한 나를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의 배선이 꼬인 것이라면 그건 의사의 영역이다.


자율신경이 불균형인데 명상부터 하려는 건 물에 빠진 사람에게 수영 이론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일단 건져놓고 숨부터 고르게 한 뒤에 호흡법을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완치’라는 환상에 매달리기보다
‘안정’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주치의 선생님과 내가 함께 지켜낸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