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을 내려놓자 통증이 말을 걸었다

망해도 좋다고 말한 날,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by 미리나




우리는 고통을 흔히 사고처럼 취급한다. 운 나쁜 타이밍에 튄 흙탕물이나 잘 나가던 흐름을 끊는 방해물로 여긴다. 그래서 일이 터지면 먼저 분통부터 낸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왜 여기서 멈추냐고.


나 역시 고지가 눈앞 일 때, 나를 몰아붙이고 있을 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그때마다 나는 망했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그것은 가장 정밀한 타이밍에 찾아온 강제정지였다.




가장 먼저 들이킨 독은 ‘조급함’이었다.


왜 아직도 이 모양인지, 언제쯤 예전처럼 굴러갈 수 있는지, 궤도에서 이탈해 영영 뒤처질까 봐 스스로를 심문했다.


통증보다 더 두려웠던 건 일상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몸은 회복을 기다리면 된다면서도, 나는 멈추면 안 된다고 믿었다.


세상은 정상 속도로만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았고
잠깐 속도가 늦어진 나는, 라인에서 밀려나 검은 바구니에 던져지는 상상을 했다.


‘불량’이라고 찍힌 도장 하나가 이마에 찍힐 것만 같았다.
기다리면 낫는다는 말보다 뒤처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 무서웠다.

멈춘 몸보다 멈춘 나를 견디는 일이 더 어려웠다.




열이 나도 노트북을 켰고, 잘 듣지도 않는 진통제를 삼키며 복귀 일정을 계산했다. 회복보다 복귀가 우선이었다.


직장에서 그만큼 배려를 해 주었고, 나도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쉬는 동안에도 마음은 출근해 있었다. 나도 밥벌이를 해야 했으니까.


내 몸은 파업 중이었지만 통장은 정규직이었다. 열은 38도를 넘나들었고, 카드값은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았다.


나는 환자이기 전에 납부자였다. ‘멀쩡한 나’를 흉내 내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당시 내게 “쉬어야 한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고 “당신은 전력에서 이탈했다”는 퇴장 명령 같았다.


아무리 채찍질해도 몸은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몸은 적이 아닌데 도구처럼 부려왔다. 아픈 나를 미워하면서까지 계속 굴러가고 싶어 했다.




성실하게 버티면 보상받는다고 배워왔으니 아픔조차 노력으로 단축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다.


그것은 책임감의 탈을 쓴 강박이었고 성실함을 가장한 셀프 폭력이었다.


몸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조급해질수록 몸은 더 탱탱하게 긴장했고 그 긴장은 통증을 돋보기처럼 확대했다.


내가 싸우고 있던 것은 질병이 아니었다.


‘반드시’라는 단어였다.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당위를 내려놓았다.



몸의 속도를 인정하는 뒤늦은 존중이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망해도 좋다고.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쉬어보겠냐고. 못 쉬었던 것 원 없이 쉬어보자고.

‘빨리’라는 단어를 뇌에서 도려내고, 지금은 멈추겠다고, 나를 찾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숨 쉬는 기분을 알았다. 최고의 휴식은 몸을 눕히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망해도 좋다”라고 말하며 마음에 넉넉한 여유를 주는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부재를 선언하자 삶이 나를 불러냈다. 업체들로부터 연락이 이어졌다.


일이 필요하다고, 꼭 내가 맡아달라고 했다.


나는 담담히 답했다.


지금은 병원 치료 중이라 당장은 어렵다고...




그들은 돌아서지 않았다. 기다리겠다고 했다. 몸부터 추스르고 꼭 돌아와 달라고 했다. 내가 없으면 멈출 줄 알았던 세상에서 내가 빠지자 빈자리가 보였다.


나는 늘 쫓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덧 통제권이 내게로 넘어와 있었다.


조급할 때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헐떡였지만, 내가 멈추자 삶이 속력을 줄여 내 속도에 맞춰 걸음을 늦춰주었다.



채우려고 바득바득 애쓸 때보다
비울 때 더 가벼워지는 거구나



빨리 낫고 싶다는 집착은 흐름을 막는 둑이었고 강한 의지는 긴장을 키우는 독이었다. 나와의 전쟁을 멈추자 회복의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아픔을 몰아내지 못해 그것과 나란히 앉아 있기로 한 태도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일이 잘 풀리는 듯 보일 때마다 혹은 바쁠 때마다 통증은 기막히게 몸을 사렸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화학 전쟁을 전혀 몰랐다. 당장 눈앞의 성과를 위해 '아드레날린'이라는 폭발적인 연료를 들이부었고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코르티솔'이라는 비상용 호르몬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태웠다.




그것은 ‘생존 가불’이었으나 넘치는 긴장감 덕분에 나는 내가 정말 괜찮다고 착각했다. 긴장이 풀리면 몸은 가차 없이 기다렸다는 듯 계산서를 내밀었다.


“이제 갚으셔야죠.”


그 대가로 유예되었던 고통이 고리대금 같은 이자와 연체를 붙여 불어나있었다.


몸은 가장 정확한 채권자였다.


"그동안 미뤄둔 통증, 연체 이자 포함입니다."


몸이 망가져가는데도 자기기만은 끝까지 완주했다.



비로소 이해한다. 아픔은 극복해야 할 적이 아니라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계절 같은 것임을.


나는 달리기만 했다.

문장에 쉼표가 없듯이.



고통을 당장 상쇄시키는 방법은 없지만 나를 덜 다치게 할 수는 있다.

세상이 나만 부당하게 대하는 것 같을 때 원인을 캐묻지 않는 것.

‘왜 나만’이라는 질문을 멈추는 것.

이것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상처가 벌어져 있는데 누가 칼을 들었는지 추궁하는 건 지혈보다 늦다.

지금은 정의도, 설명도 필요 없다.

내게 필요한 건, 나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통증으로 통증을 다스리다.

회복을 위한 생산적 비명에 대하여



통증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소모적 통증’과 다시 서기 위해 치르는 ‘생산적 비명’.


나는 염증이라는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주사라는 철거를 감행했다. 환부를 휘젓는 통증은 낡은 것을 걷어내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몸속에서는 재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낡은 것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새것을 들일 수 없다는 듯, 통증은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치료는 공사였다. 망가진 줄도 몰랐던 곳을 허물고, 금이 간 줄조차 몰랐던 틈을 드러내는 일. 먼지를 뒤집어쓴 채 현장을 지키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더 아플 때도 있다.


파내는 과정이니까.

덮어두었던 고름을 끄집어내는 중이니까.



치료는 마술이 아니었다.



주문한 줄로 단번에 완성되는 세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회복은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직 먼지 자욱한 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이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왜 아직도 어수선하냐고.


아마 그들은 모를 것이다. 회복 중인 사람에게 “왜 아직도”라는 질문이 얼마나 무력한 말인지.


나는 조금 덜 아픈 날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회복이란, 결국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까.




고장 난 기계에 낀 녹을 긁어내는 거친 솔질과도 같았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할 통증의 구간이 있었다. 작은 자극으로 더 큰 고통의 번짐을 막아내는 치료의 시간. 어딘가에서는 세포들이 제자리를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맞부딪히고 있었을 것이다.


찢어질 듯한 부하를 견딘 끝에야 이완이 찾아왔다.


치과에서 마취 주사의 따끔함을 견디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것은 신경치료 같은 더 큰 통증을 잠재우기 위한 예고편 같은 것이었다.


물리치료나 도수치료도 마찬가지였다. 아픔을 참으면서도 “조금만 더 세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던 이유는, 그 고비를 넘어야 몸이 앞으로 나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때로는 더 단단히 쥐어당겨야 하듯, 이 통증은 회복으로 가는 과정의 한 구간이었다.




마음의 병을 다루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내게 트라우마를 꺼내는 일은 환한 곳에 그대로 서 있는 듯한 수치에 가까웠다. 침묵 속에서 버티다 주치의 선생님 앞에서 입을 떼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속에 고여 있던 것을 꺼내면 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잠식하고 있던 것은 그것을 드러내는 통증이 아니라 오래 묻어두며 방치해 둔 상처였다.




두렵고 불안한 치료를 위해 나는 스스로를 두려움 속에 놓아두어야 했다. 노출 치료는 불안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었다. 온몸이 젖고 나서야 공포는 더 이상 나를 가두지 못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것은 내가 아니라 공포였는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마음에는 때로 비가 필요하다.


메마른 땅 위로 쏟아지는 비는 처음엔 흙탕물을 만들고 발을 더 깊이 빠뜨린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야 흙은 숨을 쉬고 그 위로 새로운 기운이 돋아난다.


지금의 통증이 나를 잠식하는 소음인지, 아니면 더 단단해지기 위해 조율되는 과정인지 차분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고통에 머무를 것인지, 방향을 가진 통증으로 견뎌낼 것인지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그러면 나는 환자가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정비하는 사람이 된다.


지금 너무 아프다고 느껴도 멈춘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은 느리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있으며 아픔 속에서도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나의 몸, 나의 가장 외로웠던 동반자에게


평생 너의 주인으로 살았다고 자부했으나 나는 너에게 잔인할 정도로 무심했어. 너는 나를 위해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숨을 쉬어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겼어.


자율신경이니 미주신경이니 하는 단어들은 의학 사전 속,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언어인 줄로만 알았지.

돌이켜보면 “내 컨디션은 내가 잘 알지?” 하며 대체 무엇을 그렇게 다 안다는 듯 거만하고 기세등등하게 살았는지 부끄러움이 앞서.




장기들이 비명을 지르고, 마디마디 굳어버린 근육들이 제발 좀 살려달라고 간절한 신호를 보낼 때도 나는 무시를 했어. 일할 때는 멈추면 안 된다고, 아파도 표정 관리부터 하라고 너를 다그쳤지.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정말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너를 몰아붙였을까. 예를 들면 목이 돌처럼 굳어도 이 정도는 기본값이라며 키보드를 쳤지. 가슴이 두근거려도 오늘 내가 잠을 못 자 예민해서 그렇다며 카페인을 더 부었고, 눈이 감기는데도 의지가 약하다며 나 자신을 혼냈어.




네가 보내는 신호는 경고였는데 나는 핑계로 취급했던 것 같아. 나는 너를 안다고 말하면서 너를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했거든. 통증은 통제 대상, 피로는 극복 대상, 잠은 사치라고 여기면서...그 거만이 병을 더 키운 것이다.


내가 무너질 때까지 왜 너를 보지 못했을까.


내 영혼이 깃든 집이 무너져가는 줄도 모르면서.


있잖아. 앞으로는 너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살리려는 편지로 읽을 것인가. 잘 생각하며 다뤄줄게.




나는 너를 안다고 말했지만 실은 네가 나를 살리고 있었다.



멈추라고.

제발 좀.




비전문가라는 핑계는 이제 구차하다 못해 비겁하게 느껴져. 의사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네가 아프다고 울먹일 때 그게 어디서 온 눈물인지는 알고 있어야 했는데.


너는 내가 거주하는 가장 친밀한 집이자, 내 생의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 함께할 유일한 동반자니까.


주인이 자기 집의 기둥이 어디인지, 지붕이 왜 새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그 집을 온전하게 보살필 수 있었겠니.




나는 가장 소중한 친구인 너를 가장 외로운 곳에 방치해 둔 참 못된 주인이었어. 이제야 네 몸에 붙어있는 이름들을 마치 길 잃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 불러보려고 해.


나의 신경들이 무너진 마음의 평온을 어떻게 간신히 붙들고 있었는지, 굳어있던 근육들이 어떤 고통의 언어로 내게 말을 걸고 있었는지 공부하는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면서도 가슴이 시리다.




상처투성이였던 너와 화해하기 위해 내가 엎드려 비는 참회의 과정이야. 어둠 속에서 헤매다 너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할 지도를 손에 넣은 기분이거든.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들 하잖아.


네 구조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이 모진 세월을 버텨준 나의 장기들에게 미안해서 자꾸만 목이 메어와. 그 가여운 인내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이제라도 너를 지켜주겠다는 뜨거운 책임감이 눈물과 함께 차올라.



무심했던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준 나의 몸아,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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