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선생님이 나를 방생시켜 주었다

자연으로 돌아간 행보칸 환자

by 미리나



아무리 단단한 말도 어떤 날에는 얇은 종이처럼 구겨진다. 지붕 위로 끌려가던 암탉처럼 온몸이 달아올라 열이 매일 오르던 시간에는 그 말들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치료가 끝난 날,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말한 대로 살아내주어 고맙습니다.”


웃어 보였지만, 경직된 입꼬리는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뭔가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먼저 달아났다. 나는 아직도 자주 무너지고 감정에 잠겨 허우적대는 사람인데.




저 말이 정말 나를 가리킨 걸까. 과분했다. 아니, 겁이 났다. 원장님은 한 번도 강요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가 아니라 “당신은 그렇게 살아낼 사람입니다.”라고 하셨다. 아직 나도 모르는 나를 먼저 불러주셨다. 그 믿음은 등 뒤에 가만히 얹힌 손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을 따른 게 아니라 그 온도를 따라 걸었다.




믿음은 늘 뜨겁지 않다.
어떤 날은 미지근하다.
그래도 완전히 식지는 않는다.

말은 공기처럼 흩어지지 않고, 시간을 지나 몸이 되는 것 같다.





김정훈 원장님 어록 ☺️


고통은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다.


지금 이대로 좋은 줄 알면, 여기가 천국이다.


지금 이대로 안전하고 온전하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의견인지 구별하라. (나의 말을 구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든 감정은 구름 같아서 붙잡지 말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힘들 때 판단하지 말기. 그럴 때는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니라 연결된 지구별 여행자들이다.


아픈 순간일수록, 특히 만성통증을 겪고 있다면 부드러운 언어를 써야 한다.





별것 아닌 말이라며, 뻔한 이야기라며 가볍게 넘겼던 말들이 결국 내 삶을 바꾸었다. 작은 습관 하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


정지해 있던 것을 처음 움직이는 일은 무엇보다 버거웠다.
하지만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다음부터는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매일 1%씩. 복리의 마법처럼 보이지 않던 시간이 쌓여 어느 날, 전혀 다른 내가 되어 돌아왔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나는 병원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2023년 9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길게도, 짧게도 느껴진 시간이었다. 챕터가 하나 끝날 때마다, 일이 잠시 멈출 때마다 조금은 놀고 싶었다. 어떤 날은 치료에 지쳐 쉬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원장님은 기꺼이 쉬어가도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 다시 그 문을 열 수 있었다.


"많이 아프면 오세요. 그리고 이제, 이 지구별 여행을 마음껏 가볍게 날아오르시기를..."


치료의 끝에서 원장님은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는 마음껏 날아오르라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등 뒤로 받으며 문을 나섰고, 미루어둔 것들은 제자리를 찾았다. 몸은 회복의 증거처럼 살이 찐 탓에 조금 무거워졌으나, 마음은 훨훨 날고 있다.


진료실을 나서며 알게 되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통증의 소멸이 아니라 남아 있던 텅 빈 나의 정체성이었다는 것을.




그 빈자리는 곧 새로운 숨으로 채워졌다. 세상의 공기는 더 이상 칼날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축복하는 세례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통증의 잔상을 확인하려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때 나는 스스로를 ‘비정상’이라 규정하며 이해받고 싶어 했다. 아픈 나와 남들과 다른 나를 세상의 잣대로 재단하며 무너지기도 했다. 그때 원장님이 말했다.


“환자는 없습니다. ‘정상’이라는 표준을 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에요.”


그 한마디로 나는 ‘나’로 살아갈 온전한 권리를 되찾았다.





어떤 만남은 몸의 방향을 바꾼다.

나는 이제 그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


‘김정훈’이라는 사람을 알기 전의 나로는.


나는 고쳐야 할 존재가 아니었으며

다만 다른 방향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고통을 미워했지만
그것 없이는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퇴로를 찾지 못한 건, 이 통증이 고집스럽고 배타적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치료가 끝났다는 말이 떨어질 때마다 통증은 되살아나 신경 위에 낙인을 남겼다. ‘이제 재발은 없겠지’라는 말은 번번이 빗나갔고, 내 몸은 판정을 부정하듯 달아올랐다.


나는 작열을 미워하면서도, 그것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앞에서도 안도하지 못했다. 고통 없는 삶이라는 가정은 낯설고 어색했다. 그렇게 쉽게 물러날 리 없다는 생각에 그런 오만을 품은 나 자신이 야속했다.




환부가 다시 달아올랐다. 경고인지 재회인지 모른 채, 나는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섰다. 누구도 모르는 감각을 증명하듯, 나는 스스로 세운 제단 앞에 섰다.



이번에도 나는 그것을 밀어내지 않았다.



나만의 ‘자가 처방전’을 기록했다. 증상을 활자로 묶는 일은 치료의 연장이자, 동시에 나를 이해하려는 애도의 방식이었다.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통증이 사라지면 그 시간을 통째로 지워버릴까 봐.


불안은 나를 불면으로 밀어 넣고, 나 자신을 의심하게 했다.
과장하는 건 아닐지, 심각한 병의 전조는 아닐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불안은 밤새 잠들지 못하는 고용되지 않은 경비원이었다. 월급도 교대도 없이 서서, 아주 작은 통증의 기척에도 '나를 지키라'며 경보를 울려대던 충직하고도 애달픈 존재. 유난스럽고 옹졸해 보였지만 덕분에 몇 번이나 나라는 미궁을 더듬어 들어갈 수 있었다. 발을 헛디딜 때 붙잡아 끌어올린 것도, 결국 그 비명이었다.


“이것도 남겨 두자. 언젠가 증거가 될지 몰라.”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겠지’ 하고 덮어두려 했던 나의 서사를 다시 읽게 했다. 시끄럽고 과잉이었지만 끝내 도망치지 않았고, 나를 혼자 두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섰다. 통증은 옅어졌지만, 기록은 마치 화석처럼 남았다. 불안이 남긴 각주이자,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때의 나는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 덜 아프게, 더 단단한 질감으로 나를 품고 살아간다. 내쫓고 싶던 감정은 끝까지 내 편이었고, 나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오래 나를 바라보고, 조금은 연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나를 보듬어 준 감정을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주치의 선생님은 지구별 여행길을 걷는 여행자였다. 열이 오르고, 이가 시릴 만큼 아파도 우리는 고장 난 존재가 아니라 파도 위를 건너는 배다. 아픈 사람도, 살리려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금니를 깨문다.


치료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


“지구별 여행은 안전합니다.”


험한 물결이 몰아쳐도 배는 생각보다 튼튼하니까.








가끔 생각한다.
그날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사장님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회사가 바쁘다며 치료를 미뤘더라면.
내가 치료를 외면했더라면.

잘 다니던 대기업을 떠나, 서른두 살에 의과대학에 발을 디딘 그 길을 지지하고 지켜주신 사모님이 없었다면.

초진 날, 대구 지하철 현수막 속 원장님의 얼굴을 그냥 지나쳤더라면. 그날 내가 택시를 탔더라면, 지금의 나는 여기 없었을 것이다.

모든 우연과 선택, 트라우마조차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 하마터면 나는, 지금의 나로 서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결과는 자신의 공으로, 불행은 우연의 탓으로 돌리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타인의 선택과 배려, 설명되지 않는 우연, 그리고 그 순간의 작은 결단이 겹쳐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가의 지지와 사랑, 또 다른 누군가의 선택이 오늘의 나를 떠받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도 고립되어 일어나지 않으며 우연처럼 보이는 순간조차 보이지 않는 연결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고통으로 연결된 별이다.





E p i l o g u e



‘진짜 삶’의 시작,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를 만나다.


김정훈 원장님을 알기 전의 제 삶은 이제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 시작된 제 ‘진짜 삶’은 기쁘게,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끊어주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보아졌습니다. 사라지지 않았고, 평가받지 않았으며, 존재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었습니다.


환자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행복의 가능성을 일깨워주신 덕분에, 저는 오늘도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로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아픔이라는 가느다란 빛으로 이어진, 별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서로의 빛을 느끼며 잠시 흔들리더라도 결국 함께 빛나는 존재들. 아픔은 불청객처럼 찾아오지만, 떠날 때는 가장 귀한 선물을 남깁니다. 그간 단단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을 두드렸을까요. 상처 없는 삶도 좋지만, 돌아보면 아픔은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우리가 맺은 수많은 관계를 ‘소중함’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어 줍니다. 저는 엄마가 아프지 않으셨다면 몰랐을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통보다 먼저 “요즘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라고 물어주신 주치의 선생님의 다정한 안부처럼요.



무너질 때 사람의 진심을 또렷하게 보게 됩니다.
아픔은 나를 낮추었고 그 낮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눈높이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상처는 도려내야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새로운 시력이 되기도 합니다.
흉터는 기억이 되고 감각이 되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하는 또 하나의 시력이 됩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스스로를 ‘행복한 의사’라고 소개하셨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행복한 환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제 기록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지금껏 살면서, 내 삶에 영향을 준 분 한 분쯤은 계시겠지요?


저에게는 김정훈 원장님이셨습니다. “지금을 살라”던 그분의 말은 이제 제 몸 안에서 또박또박 숨 쉽니다.



그것은 연결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에도 제 심장도 뛰었어요.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 요동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 다독여주신 그 말을 이제 제가 전합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어져 있습니다."


고통은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보게 하는 창문 같아요. 제가 어린 시절, 전라도 땅끝마을 할머니 댁의 짙은 밤색 마루와 세 개의 방, 가운데 방의 둥근 쇠손잡이가 달린 창호지 문이 떠오릅니다. 소를 키웠는데,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문에서 나던 삐걱 소리와 팔려갈 소의 슬픈 눈빛은 어린 마음에 작은 틈을 남겼고 그 틈으로 타인의 슬픔이 스며들었습니다. 위로란 결국 “나도 그곳이 아팠다”는 고백이 아닐까요.


고통을 거부하면 지옥이 되지만 받아들이면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날개가 됩니다. 병원에서 마주친 수많은 뒷모습이 주치의 선생님의 손길 아래 조금씩 펴지는 것을 보며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받은 이 온기를, 누군가의 추운 겨울을 데우는 데 쓰기로요.






2025년 5월,
저는 다시 환자가 되었습니다.



끝난 줄 알았던 몸의 이야기가 또다시 시작된 것이지요.


지금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의미란 살아남은 뒤에야 지난 시간을 조금은 예쁘게 감싸 주는 소품이 될 테니까요.


몸이 쉽게 낫지 않는다고 절망을 서둘러 꺼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치료를 ‘소비’처럼 계산합니다. 오늘 몇 회차, 이번 달은 몇 번. 그런데 왜 아직 이 모양이냐고 묻지요. 그러나 회복은 값을 치르면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저는 돌아서야 알았습니다.




한 번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국을 센 불에 올렸다가 넘치고 인덕션 바닥을 태운 적이 있습니다. 그 바닥을 보며 제 몸이 떠올랐습니다. 조급한 시간들이 겹쳐 보였지만, 재활은 식어버린 국을 다시 데우는 일과 닮았더군요. 불을 세게 올린다고 깊어지지 않으며 조급함은 맛을 더하는 대신 바닥만 태울뿐입니다. 억지로 봉오리를 벌리면 꽃잎이 상하듯, 재활은 방향의 문제입니다. 몸은 밀어붙인다고 따라오지 않습니다. 기다려 주는 온도에서야 다시 살아납니다.


어제보다 한 걸음 덜 아프게, 오늘 단 한 번 더 일어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아도요.




잘 걷지 못할 만큼 힘들던 날에도, 주치의 선생님은 반드시 좋아질 거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늘 물으셨지요. 오늘은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얼마나 주저앉았는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넘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저는 회복의 속도에는 믿음이 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대부분이 믿음일지도 모릅니다. 몸은 더딜지라도, 누군가 먼저 좋아질 거라 믿어주면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견딜 힘을 얻지요.




그래서 감히 바랍니다. 잠시 멈추거나 뒷걸음질 치더라도, 너무 빨리 실망하지 마세요. 재활은 결과를 재촉하는 경기가 아니에요. 매일 출석 도장을 찍는 삶이니까요. 믿음을 붙들고 그 믿음을 하루치씩 살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몇십 년 후면 모두 떠나요. 그러니 원망과 증오는 내려놓아도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몹시 밉고 서운할 때, 그 사람이 말 못 할 아픔을 안고 있거나 오늘이 삶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성장해 왔고, 이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살아 있잖아요.




글이 길었던 만큼, 어둠의 밀도는 빽빽했습니다. 뼛속까지 시린 날들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배움과 희열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이력과 철학을 지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김정훈 원장님의 영향으로 저 역시 그 곁에서 참 많이 행복한 환자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 건, 전적으로 주치의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도 방법이 없어 좌절하던 순간마다 제 병증을 읽어주시고, 고통을 삶의 경이로움으로 돌려주신 원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를 환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아주셔서, 저의 말을 꺼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복의 시간을 지나, 이제 저는 지구에서 ‘지금 행복한 의사와 나' 연재를 마칩니다.


반복표현과 어색함, 오타가 많았지만 그 서툰 문장들 속에는 그때의 망설임과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유려한 문장으로 쓰인 훌륭한 책들 사이에서 제 글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 기록이 저를 많은 것들과 연결해주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AI가 그린 멋진 그림과 고화질 영상이 넘쳐나지만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여전히 투박한 손글씨와 지지직거리는 레코드판 같은 인간적인 온기일지도 모릅니다. 이 서툰 기록이 길 위의 외로운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를 나누는 ‘동행’이 된다면, 그것으로 저는 넘치게 행복하겠습니다.




글을 쓴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네요.

들어주는 이가 있었다는 경험 덕분에 이제는 저도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고 싶어 졌어요.


초상권과 저작권 사용을 허락해 주신 원장님과, 긴 고백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고맙습니다.


덕분에 고통의 시간을 다시 지나면서도, 저는 외롭지 않았고 행복했습니다. ❤️



너무 늦지 않게 다시 뵙겠습니다.






https://brunch.co.kr/@nothing8/3



https://brunch.co.kr/@nothing8/6


✔️본 글은 한 환자의 개인적인 기록이며, 병원과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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