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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선물이다2

나의 진짜 행복

by 미리나

의사의 말은 환자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불안이나 위축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다른 분은 치료 후 많이 좋아졌어요.
규칙적으로 치료를 받았고 운동도 열심히 했고 당신은 관리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겁니다."

"자세도 지금 안 좋고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했다. (알면 내가 병원에 왔겠냐고요.)

요즘은 의료 서비스가 더 많이 개선되었지만
통증 치료를 위해 1년에 서너 번, 많게는 여섯일곱 번 병원을 다녔고 그중엔 탓하는 곳도 있었다.

수년 전 통증이 심해 목을 움직이지 못할 때 운동치료를 강행하라는 말을 잊을 수 없다.
울면서 운동을 해야 했고 고문처럼 느껴졌다.

"원래 이런 거겠지" 하며 참아왔지만 점점 더 안 좋아지는 상황을 겪고 나서야 엉망인 리뷰를 보고 관뒀다.

그 후, 내가 만난 병원은 이름값을 하는 행복한 병원이었다.
지난해 11월 말, 치료는 마침내 끝이 났다.

의학적인 치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선생님은 내가 정말 괜찮아질 때까지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 주셨고 선택권을 주셨다.

2023년 9월, 몇 달 만에 방문한 나에게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대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머님은 잘 지내세요?"라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신 기억이 생생하다.

내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은 뒷전이었고 대신 편안한 상태로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임을 알았다.

불편한 점을 문진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많이 힘드셨겠다며 요즘 감정은 어떤지 물어보셨다.
누군가 내 감정에 대해 묻는 경험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다닌 정신과에서도 감정에 대해선 물어본 적이 없었고 약이 어땠는지 같은 피상적인 것들만 물었고 눈앞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태도뿐이었다.


아무리 약으로 증상을 눌러도 내 안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겠구나 혼란스러워졌던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처음 방문할 때도 감정을 치료의 중요한 축으로 삼으셨는데 그 당시엔 크게 아프지 않아서
감정을 살필 일이 없었는데 요즘 감정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무리 의사가 좋아도 100% 만족한 건 아니다.
치료를 받으면 바로 좋아졌는데, 발열이 계속되는 역반응이 일어나 실망했던 적도 있었고, 이게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은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함이었고 지금의 회복을 위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몸에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데 그동안 '치료 효과를 즉각 누렸던 것'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는지 배우게 되었다.

재발할 때마다 속상해하던 내게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는 말 대신, 본인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한없는 지지에 치료의 의지는 더 강해졌다.


"모든 통증은 마음부터 치료해야 한다"라는 철학을 가지신 원장님께 나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를 느낀다.

자율 신경 실조증, 이 질환이 정신적인 문제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을 깊이 이해하며 끊임없이 소통해 주셨다.
지금도 그분에게 받은 사랑과 지지를 잊지 않으며 그 경험을 통해 내 삶의 태도가 변화했다.

유튜브에서 나처럼 통증으로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게 되었다.
왜 그동안 다른 이들의 고통이 잘 보이지 않았을까.

내가 도움받은 만큼, 이제는 그걸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아픈 가족들의 간병을 틈틈이 해 본 경험이 있다.

나의 엄마…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미안함이 생겼다.
내가 못 잘만큼 아파 보니까 당신의 심정을 이제야 알겠기에.

내가 겪지 않은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서 미안한 마음이 내 마음을 채웠다.

삶의 의지가 없어 고통을 헤매는 누군가의 댓글에 위로의 말을 남기며, 나는 어느새 주변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웃으며 축복을 공유했다.

한때 나의 삶이 지옥이라 여겼던 그곳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었고 그 자리에서 나는 본래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비워야 할 것도, 채워야 할 것도 없는 지금... 참 좋다. 이 순간 있는 그대로 평온하고 자유롭다.

조건 없이 지속되는 행복이 뭔지를 몰랐지만 몰랐으니 알게 된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몰라도 다 괜찮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알면 나누면 된다.
고통은 나를 해하지 못했다.
그 안에서 찾아낸 평온이 요즘 나의 진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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