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서 사람으로
치료실
주사를 맞고 나가려는데 세상이 잠시 기울었다. 형광등 불빛이 아스라이 번지고 발끝에서 힘이 스르르 빠졌다.
“미리나님!! 괜찮으세요? 천천히 하지 그러셨어요. 많이 어지러워요?”
놀란 목소리가 치료실을 가득 채웠다.
“저 괜찮아요! 얼른 진료 보세요.”
“안 괜찮아요. 천천히 한 번 움직여보세요. 많이 힘들면 쉬었다 가세요"
원장님의 눈썹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이어지던 어지러움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혹시 이석증일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원장님은 주사 후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시적 부작용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는데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치료실 안은 고요했다. 잠시 주사실 침대에 누워있으니 심장이 천천히 제 박자를 되찾았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도 조금씩 내려앉았다.
“ 일단 조금만 쉬었다 갈게요.”
누워있는데 창밖으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이 하얗게 번졌다. 몇 분쯤이면 괜찮아질 거라 했다. 늘 그렇듯 ‘금방’ 지나갈 일이라고.
나는 잠깐 어지러웠을 뿐인데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나보다 더 놀랐다. 괜찮다며 웃어 보였지만, 사실은 내가 제일 놀랐다. 몸이 이렇게 쉽게 신호를 보낼 줄은 몰랐으니까.
마음 한쪽이 먹먹해졌다. 아프지 않다는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경고처럼 들렸다. 괜찮다는 말을 너무 오래, 너무 자주 써버린 건 아닐까.
그날의 가장 큰 처방은 주사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라는 어지러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베드에서 떨어져 바닥에 누웠던 그날의 소동은 작은 불씨처럼 시작되었다가, 번질 틈도 없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앗, 차가워!”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20분, 30분쯤이었을까. 서서히 정신을 추스리며 일어났다.
점심시간인지 병원이 조용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일으키자, 온몸을 감싸는 걱정 어린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의사 선생님과 주사실에 계시던 분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외쳤다.
“조심! 천천히!!”
또 넘어질까 봐 모두의 심장이 나 대신 조마조마해지는 듯했다. 도와달라는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반복된 사고 탓에 나는 어느새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괜히 유명해진 기분이었다. 대기실에 길게 늘어선 환자 명단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 선생님께도, 기다리고 있을 환자분들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흘려보낸 시간이 누군가의 차례를 늦추고 있는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내게는 배경음이 생겼다.
조심, 조심, 천천히.
조심, 조심, 천천히.
스스로 돌아봐도 나는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을 ‘특이한 환자’였다. 특이하다기보다는 차라리 ‘트러블 메이커’에 가까웠다. 매일같이 넘어지고, 주저앉고, 힘이 풀렸다. 내 몸은 더 이상 내 마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다리에서 힘이 빠지면 땅이 내 발목을 움켜쥐고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몸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서웠고 무력감은 통증보다 오래 갔고 그 감각은 반복되었다. 이쯤 되면 전국의 통증 재활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이 내 몸을 궁금해하지 않을까.
“모든 의사가 총출동해 협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미스터리한 몸을 연구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몸이 아프면 아이가 된다고 하더니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에 생각까지 퇴행한 것 같았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횡단보도를 건너다 또다시 넘어졌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순간,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손짓으로 차들을 멈춰 세웠다.
“잠깐만요!”
그 짧은 외침이 나를 보호막처럼 감쌌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네는데, 코끝이 시큰해졌다.
차갑기만 하다고 여겼던 세상이 그날은 참 따뜻했다.
자기 시간을 쓰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희망이다. 늦가을 햇살이 유난히 뜨겁게 내리쬐던 그날 저녁, 지금도 소*타 차를 볼 때면 차의 표면까지 반짝였던 그 차주분이 이따금씩 떠오른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정차된 불특정 차들에 대고 소리쳤던 그 모습이.
눈치를 보는 삶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고. 도움을 받는 일에 대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아픈 사람이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그 말은 단순했지만 내 마음은 단순하게 따라주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선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상, 어떻게 완전히 신경을 끌 수 있을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을 인식하되, 거기에 휘둘리지는 말 것, 보되 흔들리지 않는 균형을 찾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남들은 생각보다 네게 관심 없어.”
그 말은 냉정한 사실이라기보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위로였을 것이다. 신경을 조금 덜 쓰고, 조금 더 당당해지라는 다정한 조언. 그러나 그 다정함을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데 내 마음은 다른 감정이 더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병원을 자주 찾아야 한다는 부담. 반복되는 진료 예약. 익숙해질 법도 한 대기실의 공기. 그 모든 것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혹시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보지 않을까 하고.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어딘가 비정상적인 사람.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자.
자율신경실조 환자.
만성 통증 환자.
종합병원 환자.
나는 스스로를 수많은 이름으로 규정해버렸다. 그리고 그 이름들 속에 나를 가두었다.
한국 사회에는 ‘눈치’라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쉽게 눈에 띄고, 눈에 띄는 순간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나는 더 위축되었다.
가장 날 그렇게 바라보고 있던 사람은 타인이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고, 내가 나를 부끄러운 존재로 여겼다. 타인의 시선이라고 믿었던 것의 상당 부분은 내 안에서 자라난 두려움이었다.
“아픈 게 네 죄는 아니잖아?”
한때 화제가 되었던 부부의 세계 속 대사처럼, 그 말은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아픔은 잘못이 아니다. 상처는 죄가 아니다. 도움을 받는 일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해왔다.
이제는 조금씩, 그 판결을 거두어들이려 한다. 눈치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를 깎아내리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으려 한다.
나는 환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아픔을 가진 채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다.
그리고 그 사실을 무엇보다 내가 먼저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살면 삶을
소풍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소풍은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도시락이 거창하지 않아도 되고, 하늘이 완벽하게 맑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함께 걷는 사람, 그리고 그 시간을 누리는 마음이다.
원장님이 나누어 주신 넉넉한 마음은 뒤틀려 있던 나의 감정과 상황을 단숨에 풀어 놓았다. 얼어 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분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참 자유로웠다. 넘어져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나를 ‘환자’라는 이름으로 가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셨기 때문이다. 그 시선 안에서 나는 비로소 안전했고, 그래서 자유로웠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던 시간들, 꿈과 현실을 오가며 감정과 통증이 뒤섞이던 날들 속에서 나는 배웠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 내 감정을 솔직히 꺼내 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주치의 선생님 말씀대로 더 이상 정상도, 비정상도 아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를 수 있고, 지금의 내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원장님은 늘 따뜻했다. 공감으로 먼저 다가오고 작은 말에도 진심으로 반응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 수 있었다. “환자가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병원의 모토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도 꼭 나아서,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건강을 되찾으면 의료진은 더 큰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는 또 다른 환자에게 전해지고, 그 환자의 웃음은 다시 그분에게 돌아가고, 그 따뜻함은 결국 나에게도 닿지 않을까.
치료란 어쩌면 몸을 고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의 에너지가 오가며 선순환을 만드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고통을 말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나는 나를 더 또렷이 알게 되었다.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하나씩 빛을 보자 내 세상도 조금씩 넓어졌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는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다. 병원에서 선생님들과 눈을 마주칠 때면 웃는다. 그곳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진심 어린 교감이 일상이었고,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위로였다.
아이들만 따뜻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에 쌓이는 무게와 복잡해지는 감정들 때문에 더 쉽게 흔들리고, 더 쉽게 약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위로와 안정이 필요하다. 누군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고 함께 나누어 줄 때 삶은 견딜 만해진다.
고통 속에도 따뜻함은 있었다.
감정이 풀려나자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행복만 있었다면 내 이야기는 얇고 단순했을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 도전과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엮여 하나의 서사가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처럼, 갈등이 있어야 깊이가 생기고 흔들림이 있어야 단단해진다.
만약 삶이 행복한 일들로만 채워졌다면 사색도, 내면을 성찰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도, 성장도, 감정의 깊이도 부족했을지 모른다. 고통이 있었기에 삶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반복을 거듭하며 다져지고 정리되어 왔다. 지금 쓰는 이 글처럼, 처음에는 흐트러지고 어긋나고 다시 고치며 다듬어 간다. 반복이 쌓여 비로소 ‘완성’이라는 지점에 닿는다. 그때는 몰랐지만 고통도, 삶도 그렇게 다듬어지는 것이었다.
나의 변화와 성장을 기꺼이 축하해 준 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신기한 일들이 하나씩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삶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이제 나는 조금 안다. 소풍처럼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이 순조로운 상태가 아니라 어떤 날씨 속에서도 함께 걷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임을.
약해진다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시야를 얻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자연스레 한 걸음 물러서게 되지만, 그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전에는 놓쳤던 세상의 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감정과 몸의 상태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그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깨달음도 그런 넓어진 시야에서 얻은 또 하나의 삶의 경험이다. 몸이 아프기 전처럼 버텨주지 않더라도, 그만큼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워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 같고 왜 이 길을 지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지만, 그 터널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희망들이 나를 계속 견딜 수 있게 만든다.
고통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고, 그 이해가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애매한 균형처럼 보이지만, 그게 진짜 삶의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