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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넘어져도 행보칸 환자

치료는 학습이 아니야

by 미리나



낡은 세탁기처럼 달달거리며 병원을 찾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을 털어놓았으니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그때마다 와닿지 않지만 또 그만한 약도 없는 것 같다.


평소 의사 선생님은 진료 중 뭔가를 작성하고 계시지만 이번에는 내가 진료실로 들어오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셨다.


"아휴~ 오늘 이렇게 예쁘게 하고 어디 다녀오셨어요?"

"누군지 못 알아봤네."


"그냥 안 아파 보이려고 화장해서 그래요."


옆에서 선생님이 한마디 덧붙인다.

"어머 공주네, 공주!! 너무 예뻐요."

"네?"


나의 긴장을 풀어주며 웃게 만들려는 의료진들의 노력에 못 이기는 척 눈을 반쯤 감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 보였다.



삶이란 그런 건가 보다.

문제도, 해결책도, 위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나 스스로 '지금의 나'를 미워하며 불행한 사람이라고 규정했지만 그들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함은 그렇게 마음속 깊이 감쳐둔 것들까지 끄집어낸다.

위로를 주면서도 모든 걸 허물어뜨리는 힘.




불안은 있는데 없습니다


"아까 저쪽으로 걸어가시는 걸 봤는데 지난번보다 좀 더 편하게 걷는 것 같아서 좋네요.

지금 가장 힘든 것이 어떤 거예요?

고관절, 목 통증이 1부터 10까지 점수로 표현해 본다면 몇 점 정도 될까요?"


“둘 다 6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애매한 경우는 보통 6~7 왔다 갔다 한다고 답했던 것 같다.)


"어젯밤에는 잘 주무셨나요?”

“두 번 잠에서 깼어요.”


"아이고... 무릎에 피가 나네요.

또 넘어지셨어요? 무릎 보호대를 하셔야겠어요."

"네 "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살펴보시더니 곧바로 간호사 선생님을 보며 지시하신다.

"이따가 주사 치료 끝나면 드레싱 해 주세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질문들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최근에는 몇 번 주저앉고 몇 번이나 넘어지셨죠?”

“5번 주저앉고 2번 넘어졌어요.”


“어쩌다가요?”

“산책하다가요.”


“어디에서요?”

“수성못 공원에서요.”


“어떻게 하다가 넘어지셨어요?

“돌에 걸려서요.”


"몇 시쯤에요"

“저녁 7시쯤이요."


"저도 요즘 수성못 자주 가는데 넘어지는 걸 왜 못 봤을까요?"

"네?" ^^


What did you say??

sticker sticker




"지금 통증으로 감정이 가라앉거나 불안한 마음이 있나요?"

"불안한 마음은 있는데 없어요."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끌려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눌러도 눌러도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까.


불안은 물속에서 솟구치는 거품처럼 끊임없이 올라왔지만 나는 차가운 얼음처럼 굳어 그것을 꼭꼭 숨겼다.


사건을 복기하듯, 불안의 원인, 넘어졌던 상황, 신경학적 문제나 다른 요인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감정 상태까지 그 디테일한 질문에 나는 늘 놀란다.


고통이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그럼 의사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테고 환자 입장에서도 느끼는 고통을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다, 과중한 업무나 감정적 소진에 더 취약해질 수도 있으니 의사는 그만큼 피곤할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걸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많은 의사들의 태도는 정말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면담이 끝나고 주사 치료를 받기 위해 일어나서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또 힘이 빠지면서 꽈당 넘어졌다.

부축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이 가볍게 어깨를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웃음으로 넘기려 했지만 "괜찮다"라는 그 말이 무너져도 괜찮다는 허락 같아서 엉엉 울어버렸다.


"나 왜 이러는 걸까?"


오작동하는 기계를 뜯어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내 몸속에 직접 들어가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




치료는 시험이 아니니까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나를 신경 써 주시는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 주셔도 나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무능한 학생이 된 기분이다.


치료는 학습이 아니고 정해진 시간 안에 반드시 따라잡아야 할 것도 아닌데 의사 선생님의 노력이 헛수고인 것만 같다.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는데도 회복 속도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더 빨리 좋아지고 싶다는 푸념만 늘어놓는다.


서로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의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회복이 더뎌질수록 답답하다.

의사 선생님은 오죽 답답하실까.


의사는 환자의 몸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치료는 외적인 것만을 목표로 하지도 않을 것이고 각 개인의 몸은 서로 다를뿐더러 회복 속도도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환자의 참여와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치료법이 있어도 환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종합병원 환자(?)로서 몸소 체득하게 됐다.


그래서 차마 크게 내색할 수도 없다.

그만큼 나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빛 한 줄기처럼 언제나 응원해 주는 의료진들과 가족, 주변인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애절한 마음은 커져만 가지만 그 소망이 닿지 않는 듯한 그리움만 쌓여간다.




넘어져도 행복한 행보칸 환자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의 주치의를 만나 뵙다 보니 때로는 그분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엿보이기도 한다.


의사라는 직분을 벗어던지며 결코 아는 척을 하지 않으시고 함께 머리를 맞대어 상의하는 자세를 보여 주신다.


"이 정도 치료를 했을 때 ~이만큼 개선되어야 하는데 왜 그럴까?"라며 고개를 갸우뚱하실 때면

불안감보다는 "걱정 마세요, 이겨낼 테니."라는 확신이 더욱 강하게 든다.


왜냐면, 나처럼 스펙이 화려한 특이한 환자는 의사에게도 처음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 당혹감을

백 번, 천 번 이해할 수 있다.


신뢰감이 쌓였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나 같은 환자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다.


시간이 나를 몰아가듯 모든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지만 그 길은 자꾸만 벽으로 변해갔다.


매일 걸어가는 곳마다 부딪히고 넘어져서 세상에서 가장 급한 사람은 나고 바쁜 사람도 나였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위태롭게 수백 번 주저앉거나 넘어져도 일어나야만 했고 걸어가야만 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헤치며 다시 바다로 나아가야만 하는 항해자처럼 말이다.


반복된 충돌에 슬프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밝은 날도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했다.


감사를 어떻게든 찾아내보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고통과 반복된 시련 속에서 무너지거나 그 모든 것을 견딜 힘을 잃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의지를 떠먹여 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의사를 만났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지.




아프면 아픈 대로 불안하고 통증이 심해지면 더 심해질까 걱정된다.

좋아지면 다시 아플까 두렵고 또 아프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그 고통이 오래갈까 불안해진다.


내 아픔은 복잡하다.

얽힌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내가 그 실타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넌지시 한 번 여쭤본다.


원장님, 저 좋아질 수 있겠죠?


"그럼요! 좋아지고 있잖아요."


"나는 당신을 믿고 있어요.

꾸준히 치료 잘 받아서 저 꼭 나을게요." 지금처럼 도와주신다면


두 눈에 힘을 주며 눈빛으로 몇 번이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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