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끝나야 할 것은 "생각"과 "감정"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여기가 아파요.”라고 말하면 마치 게임에서 중요한 퀘스트가 시작된 것처럼 모든 걸 멈추고 귀 기울여 들으신다. 그리고 상황을 하나하나 분석하듯 그에 맞는 전략을 차근차근 제시해 주신다.
그분만의 화법은 때로는 스킬처럼 꽂히지만 그 말들은 마법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겉으로 들으면 잔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잔소리 대마왕’이라 불러도 될지 모른다.
그분의 말투와 태도는 게임 속 보스 캐릭터처럼 반항할 여지조차 없는 방어막을 친 던전 같고 쉽게 돌파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얻어야 할 보상이 있다.
성장의 아이템을 건네주는 퀘스트처럼 나를 한 단계 위로 올려놓는다. 치료는 힘들지만 옛날부터 이 병원에 오면 행복했다. 정말이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두 번이나 갈 정도로 정말 죽을 만큼 힘든 어느 날이었다. 구구절절 아픔을 이야기하자 원장님은 평소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고통을 외면하거나 밀어내지 마세요. 병아리들이 외치는 감정에 끌려가지 마세요”
........??

앞전에도 사실 나는 그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 고통에 대해 이렇게 답하시는 원장님은 이전과 너무 달라 보였다. 새로운 부위에서 낯선 통증이 찾아와 아프다고 말해도 여전히 같은 말씀을 하셨다.
“모든 감정은 구름처럼 흘러갑니다. 잠잠하게 바라보세요. 다 지나갑니다. 저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요? 한 번 연습해 보는 거죠.”
“원장님!! 아파 죽겠는데 구름은 무슨 구름이에요. 목이 아파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고 저 지금 죽을 만큼 아프다구요ㅠㅠ 정말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신 걸까요? 사람이 아프면 당연히 감정에 끌려가는 게 아닌가요? 원장님이 지금 안 아프셔서 그런 말씀이 쉽게 나오는 거 아닐까요?
곧바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삼키고는 “네네” 하고 대답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평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으셨던 걸까. 그 말의 의미를 당장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계셨던 걸까.
전래동화를 들려주듯 한두 마디씩 툭 던져주시는 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감정은 일시적이고 변화한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사라진다
치료가 4개월쯤 되었을 때, 작년 1월쯤 나는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살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중독적이고 괴로움 속에서 나를 잠시 건져주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져 그 고통조차도 덜 괴롭다. 상태가 좋을 땐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재에 집중하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러나 기분이 처질 때 죽음을 떠올리게 되며 그 생각은 끝없이 이어져 침체된다.
한 번 그런 생각의 회로가 형성되면 작은 일에도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전엔 여러 단계를 거쳐 생각의 끝에 다다랐다면 이제는 훨씬 빠르게 결론에 도달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일면 바로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죽음은 거의 안정제처럼 작용한다. 나는 살고 싶다!! 우울과 불안을 벗겨내면 그 속에서 꿈이 많은 내가 보인다. 그건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어쩌면 통증은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통증 덕분에 나는 아프다고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두 발로 병원에 갈 수 있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무서운 병이어도 나는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자발적 고립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대인기피증이라고 부른다.
보시고는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다. 점점 더 본질에 다가가고 있네요. 정작 끝나야 할 것은 미리나님의 몸이 아닙니다. 끝나야 할 것은 미리나님의 "생각"과 "감정"입니다.
그것은 잠시 있다가 바람 따라가는 구름입니다. 구름 뒤에 있는 파아란 하늘이 '참 나'입니다. 변함없는 그 배경을 발견하기를. 응원합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통증이 없으면 감정이 좋을까요? 행복한 날도 아프니까 감정에 끌려다녀요. 부정하지 않을게요. 본질에 다가가고 있다는 말씀에 안도감이 들었어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아 평온하고 안정돼요. 많은 사람들은 너그러움 안에서 성장했죠. 그 어떤 평가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치료한 지 벌써 몇 달인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돌이켜보면, 고통을 외면해 상처를 덜 받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는 개똥철학이다. 저 날, 다시는 못돼 먹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고통이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통증이 좀 줄었을 때 원장님이 추천하신 대로 맨발 걷기를 해보았다.처음에는 그냥 기분 전환이 될 거라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해보고 나니 소화도 잘 되고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밤에도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전에도 맨발 걷기를 한 적이 있었지만 통증이 심할 때라 한두 번밖에 못했다.
어느 날 맨발 걷기를 해보았냐고 물으셔서 자랑했더니 "너무 좋죠?"라며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그 웃음이 왜 그렇게 기쁜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추천해 주신 것들은 다 해본 것 같다. 듣는 입장에서 중요한 건 막연한 위로나 공감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방법이다. 위로나 공감은 순간적인 위안은 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건 구체적인 행동과 실질적인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사람이 진짜 도움을 주고 싶다면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함께 찾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면서 용기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힘들겠다", "나도 이해해" 같은 말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나는 큰 위로는 안되었다. 위로는 그만큼 어렵고 진짜 필요한 건 다음 단계로 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불안과 생각의 혼란
불안할 때는 좋은 것도 의심부터 하게 된다. 마음이 최악의 가능성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증과 경험이 만든 부정적 필터에 내가 얼마나 속았는지 모른다. 불안과 두려움은 머릿속에서 끝없는 상상을 만들어 낸다.
“좀 더 몸에 신경을 써야 했나? 식습관을 바꿨어야 했나? 내 자세와 움직임이 문제인가? 생활 방식이 잘못됐나? 이 통증이 계속된다면?”
생각은 끊이지 않고 번져간다. 불안이 쌓이면 몸은 굳어버리고 마음까지 얼어붙는다.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불안은 더 크게 찾아오지만 통증이 없어진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불안은 통증과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들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생각이 시작되면 새로운 생각들이 그 범위를 계속 확장시켜 머릿속이 복잡한 우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불안이나 인지 왜곡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을 잠시 멈추고 깊게 숨을 쉬며 현재 순간에 집중.
부정적인 생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습.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 보며 몸과 마음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
23년 12월 중순부터 발열이 시작된 것으로 기억했지만
11월부터 발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이때가 첫 발열이었나 보다.
상처가 아물려 할 때 또 넘어져서 짜증 나고 속상했지만 무릎은 생각보다 튼튼하게 잘 버텨주었다. 가시밭길을 걷고 넘어지고 실수하면서도 점점 더 버틸 힘이 생겼고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며 앞으로 나아갈 힘도 길러졌다. 반복은 나를 몹시 시험했지만 나 자신을 더 신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처음부터 감사가 나온 건 아니지만 이날의 감사거리는 있었다. 한여름이 아니라는 것, 운동신경이 나름 좋아 다른 부위는 다치지 않은 것, 고통이 있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 것(그때는 억지스럽게 느껴졌지만)까지.
그날 원장님의 카톡 메시지는 뒤집어진 내 마음을 진정시키는 생명줄 같았다. 집이든 지하철이든 사무실이든 화장실이든 1분만 멈춰서 이곳까지 나를 싣고 온 몸과 그 몸을 어떻게든 조종하며 비척이며 애쓰는 애처로운 그 생각을 따스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하셨다. 길거리에서 넘어진 사람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걱정할 뿐이며,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일은 언젠가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보살필 계기가 된다고.
내가 누군가를 부축해 일으킬 때 그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길 바라듯 ‘경험자아’와 ‘기억자아’의 겉모습도 넉넉히 보살피라고, 그리고 “네 몸을 네 이웃과 같이 보살펴주라”고.
지금의 나는 구름을 동경한다.
고통 속을 걸어온 시간들이 결국 오늘의 나를 위한 길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우리는 업무와 스마트폰에 많은 시간을 빼앗긴 채 목과 어깨에 피로를 쌓아 둔다. 컴퓨터가 과부하에 느려지듯, 몸과 마음도 스트레스에 눌리면 제 기능을 잃는다.
그러나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시스템을 재부팅하듯 숨이 고르고 마음이 맑아진다. 복잡한 해답을 찾기보다 가장 단순한 방법부터. 길 잃은 자동차가 네비게이션을 다시 맞추듯, 작은 멈춤으로도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구름을 바라보는 시간과 맨발로 걷는 순간은 그렇게 내 삶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시련이라는 강을 만난다. 그때 우리는 가진 자원과 에너지를 모아 자신만의 뗏목을 만들어 건넌다. 부처는 말한다. 뗏목은 우리를 건너게 해 준 고마운 도구지만 강을 건넌 뒤에도 붙들고 있으면 짐이 되니 감사히 내려놓아야 한다고.
쇼펜하우어 또한 말한다. 삶은 본래 고통이며, 고통을 없애려는 욕망이 오히려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고.
그러므로 고통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일 대상이다. 한 번 강을 건넌 사람은 다시 강을 만나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때의 경험과 뗏목을 만들던 기술이 이미 자기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재료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우리는 또 한 번 삶을 건너간다.
이 기록은 오롯이 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인 이야기입니다.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나 혼자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돕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저는 그저 한 명의 환자일 뿐이며 이 글은 광고나 홍보와 무관합니다. 병원과 어떠한 대가도 주고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의사 선생님의 사진 및 대화 내용은 사전 동의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