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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새 Feb 17. 2023

취미 예찬

김욱, 『취미로 직업을 삼다』

“취미가 뭐예요?”

저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어릴 때는 음악감상, 독서 같은 걸 대충 적어서 제출하고는 했는데, 요새는 굳이 적어 낼 일은 별로 없습니다만 누가 물어올 때면 자신 있게 “제 취미는 ㅇㅇ이에요.” 라고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책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어쩐지 주변에 독서를 취미로 두고 있는 분들을 보고 있으면 난 그리 다독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음악도 취미라고 당당히 말할 만큼은 아닌 것 같고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취미도, 그것에 시간이나 애를 쏟는 정도도 다를 것입니다. 보통 한 가지 취미에 깊게 빠져 있는 사람을 ‘덕후’라고도 하지요. 저는 약간 이 ‘덕후’라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좀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는 편이에요. 책도 읽고, 악기도 이것저것 똥땅거리기도 하고요, 산도 오르고, 식물도 키우고, 캠핑도 가요. 적어두고 보니까 정말 산만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제 경우엔 이렇게 관심사가 많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인생에서 여러 기회들이 생기는 것도 같습니다.



 이번 주제는 [취미예찬]입니다. 몇 가지 책을 두고 좀 고민을 깊게 했어요. 좋아하는 것에 깊게 몰입하다 일을 벌이게 된 사람의 책이 좋을까(『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서필훈), 다양한 취미생활을 이야기하는 책이 좋을까(『취미 있는 인생』, 마루야마 겐지), 취미로 삶의 위안을 얻은 사람의 글이 좋을까(『조금 괴

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임이랑), 그러다 번역가 겸 작가인 김욱 님의 『취미로 직업을 삼다』를

이번 달의 문장의 책으로 골랐습니다. 고르고 나서 보니 취미 '예찬’과는 거리가 있네요.


 이 책은 작가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생존분투기에 가깝습니다. 일흔의 나이에 그야말로 쫄딱 망해서 수중에 돈 200만 원뿐이던 어떤 노인이 자신의 평생 취미였던 독서를 밑천 삼아 번역일을 하게 되는 내용의 책인데요, 읽다 보면 어딘지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 오다가도 여든이 넘은 나이까지(아마 지금은 아흔 살)도 활기차게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희망이 샘솟습니다. 작가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간 이후 도서관을 오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중 번역을 하기 시작했고, 일흔이 넘어 아흔이 된 지금까지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습니다. 수년 전 인기를 끌었던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도 김욱 작가가 번역한 대표작입니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합니다. 꼭 전문적으로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까 앞으로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즐기고 좋아하는 감정, 그것으로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안정감,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내 생활에 생기는 윤택함. 이렇게 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아마 남은 인생을 분투하면서도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게 되지 않을까요.


“청춘(靑春)이 푸른 봄날이었다면 적추(赤萩)는 붉은 가을이다. 춘하추동 사계절에서 봄과 가을은 대칭이다. 만개할 여름을 준비하는 봄이 청춘이었다면 다시금 땅으로 돌아갈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가 가을, 곧 적추다. 겨울이 남아 있으니 아직 끝은 아니고, 게다가 결실도 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단풍은 덤이다. 가을바람이 스산하고 애잔하기는 해도 화사했던 봄날과 뜨거웠던 한여름을 지나왔으니 좋게 보면 이 또한 휴식이 될 수 있다. (중략)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에 대한 복기다. 필요하다면 부모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사건과 추억들이 쌓여 있다. 내가 잘못했던 과거도 있고, 잘했던 일들도 있다. 그것들이 합쳐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 김욱, 『취미로 직업을 삼다』 中



 직업이거나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즐길 수 있는 무언가에 애정을 쏟을 줄 알고, 취향을 바탕으로

나만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하루를 완성하는 것, 그것이 나만의 적추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한 예찬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하찮고 작은 것처럼 보일지언정 그것에 몰입하는 과정을 지나

고 나면 아마 나도 모르게 내 삶이 풍부하게 채워져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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