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달의 문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리새 Apr 18. 2023

매우 초록

우종영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처음 달의 주제를 정할 때 이 즈음이면 산이며 들이며 온통 푸를 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가 많습니다. 그런데 또 올해 벚꽃은 1922년 이후 가장 일찍 개화했다고 하죠. 예년보다 빨리 핀 벚꽃을 찍으러 설레는 맘으로 집 뒷동산에 올라 여러번 셔터를 눌러봤지만 뷰파인더에 담기는 세상은 아직 저채도(低彩度)더라고요. 봄이 오긴 온 건가 내심 실망감도 들었는데 그럼에도 봄은 제 주기대로 춘분을 지나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급하게 얼굴을 내민 봄꽃들도 제 할일을 다하고선 초록잎들에 바톤을 넘깁니다. 주말마다 내린 비가 가져다 준 비거스렁이에 아직 바람은 차 겨울 외투를 완전히 집어 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틈사이 햇볕의 따뜻함이 간간이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어쨌든 봄이 오긴 했나 봐요.



지난 3년 간 우리는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세상이 왔지만 아직도 마스크 벗은 얼굴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여러분은 삶에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저는 각종 ‘멍’이 늘었습니다. 불멍, 물멍처럼 무언가 를 응시하며 멍하게 있는 행위요. 제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50년이 넘은 오래된 양옥집이라서 마당도 있고 온실도 있어 유독 식물이 많습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저 역시도 쉽지 않은 시기였어서 마음의 균형이 필요할 때마다 식물을 눈 앞에 두곤 별 생각 없이 멍하게 앉아 있곤 했습니다. SNS를 둘러보니 이런 걸 두고 ‘식멍’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이나 보고 앉아 있었는데 ‘이짓’도 오래 하다보니 문득 조금씩 식물들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고,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종영 작가는 30년간 아픈 나무들을 돌봐 온 나무의사입니다. 나무의사라니 좀 생소하죠? 전국을 다니며 오래된 보호수와 병든 조경수를 돌보고 고치는, 글자 그대로 나무의사입니다. 그렇게 나무를 돌보며 나무로부터 얻은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나누고자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펴냈습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뤄 사는 모습에서, 오래된 주목나무에서, 나무의 가시에서도 저자는 나무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찾습니다.


"나무는 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명체다. 움직일 수 없는 탓에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생존하려면 주변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재빨리 대응해야 한다. 말 그대로 나무의 삶은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해를 향해 뻗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우듬지의 끝은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선원과 같다. 항해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발견하면 그 즉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우듬지의 끝은 가지에 이르는 햇볕의 상태를 일분일초 예의 주시하다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낌새가 감지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꾼다. 그 선택에 주저함은 없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양 곧바로 선택을 단행한다. 가만히 보면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하긴 결과를 예측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미래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데 말이다.

                                                                          - 우종영 ,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中

그러고 보면 나무는 언제나 우리에게 계절의 변화를 가장 쉽게 알아채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뒷동산에 있던 그 앙상한 나무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순이 맺혀 있고, 잠깐 일상에 바빴다가 몇 주가 지나 문득 돌아보면 그 자리는 어느새 초록이 무성하고요, 또 그러다 시나브로 붉게 물이 들어가면 아, 가을이구나 하며 바뀐 계절을 실감하니까요. 헤르만 헤세도 오랜 시간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사랑했던 작가였죠. 그의 책 『나무들』에도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나무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절실한 설교자였다. 나무들이 숲이나 산에서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고 서 있을 때, 나는 그들을 숭배한다. 하지만 나무들이 각자 떨어져 오직 한 그루로 서 있을 때, 나는 그들을 더욱 숭배한다. 그럴 때 그들은 고독한 사람과 같다. 어떤 약점 때문에 몰래 도망쳐 온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한 단독자인 그런 고독의 인물 말이다. 나무의 높은 우듬지에는 세계가 술렁이고, 뿌리는 영원 안에서 고요하다. 하지만 나무들은 그러면서도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온 기운을 다해서 한 가지를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의 법칙을 이룩하기, 자신의 원래 모습을 구축하기,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을 나타내기. 한 그루의 아름답고 강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더 이상적인 것은 없다. 톱에 잘린 나무가 죽음의 상처를 입은 맨살을 햇빛 아래 드러낼 때, 절단된 몸통이 보여주는 환한 내부는 마치 묘비명처럼 나무의 모든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나무의 나이테와 울퉁불퉁한 옹이는 나무의 투쟁, 나무의 고통, 나무의 질병과 행운 그리고 성장을 솔직하게 말한다. 간신히 버티면서 살아남은 좁다란 해와 무성하게 우거졌던 넓직한 해, 혹독한 공격과 폭풍우를 견디어 낸 해가 거기에 있다.”

                                                                                                   - 헤르만 헤세 , 『나무들』 中


풀이나 나무 줄기 한가운데에 있는 연한 심을 ‘고갱이’라고 하죠. 어제는 어떤 분께 “살면서 꼭 이것만은 가지고 가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아서 ‘평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마 제 삶의 고갱이는 평온인가 봅니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고 가끔은 꺾여도 제 안의 평온을 찾고자 잠깐이라도 바깥에 앉아 초록 식물들을 멍하게 바라 봅니다. 여러분도 잠깐 한숨 돌리면서 삶의 고갱이를 들여다 보는 봄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미 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