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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Nov 05. 2023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 #1_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베를린에선 딱 이 작가만 보면 되었다.

그럼 되었다.


베를린 출장이 결정나고 혹시나 하여 내가 보고 싶은 화가 중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한 작가인 페르메이르카스파르(Caspar David Friedrich)가 베를린 어느 미술관에 있지 않을까 무작정 찾아봤는데 우선은 페르메이르는 내일 갈 오스트리아 빈미술사 박물관에 <회화의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카스파르가 더 절실했다


그런데 있다!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


혹시나 독일작가이니 베를린에 한 점쯤 있지 않을까 하여 찾았던 건데...


<바닷가의 수도승>

이 작품이 있다 하니 나는 이 작품 하나를 보러 간다!!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Alte Nationalgalerie)에 도착하고서 윗층부터 한층씩 보면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어느 한방에 들어가니 저 멀리 내가 보려던 <바닷가의 수도승>이 보인다.


직.진.


 <Monk by the Sea, 바닷가의 수도승>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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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캔버스 대부분을 하늘과 바다로 채워놓고 그 앞에 아주 작게 수도승 한명을 넣었다.


캔버스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 그 수도승은 실은 그 모든 화면을 잡아 먹었다.

나는 하늘과 바다에 압도되지만 시선은 그 수도승에게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리 볼 것이라 생각한다.


이 그림을 보는 누구도 그 앞에서 대화하지 않았다.


각자 조용히 그 앞에 서서 그 수도승에게 나를 대입하고 끝을 알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생각이 무언이건 그림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황홀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

그 안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

그 힘이 이 그림에 있다.


교회와 교도소에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종교화들을 걸 게 아니라 <바닷가의 수도승>을 걸어야 될 것 같다.  


 <Abby among Oak Trees> 1809/10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처럼 낮인지 밤인지 그 경계가 오묘한데  

폐허처럼 남아 있는 숲속의 사원엔 스산한 마음이 들게 하는 오래된 묘지들과

검은 사제복을 입은 승려들인가 그저 검은 고목인건가 헤깔리는 검은 것들에  

초승달 하나로 저리  밝을 수 없는 하늘은 땅거미 짙게 내려 앉은 산자락을 더욱 어둡게 침잠 시킨다.  


스산하고 고독하고 어쩐지 삶을 무상하게도 만드는 이 그림은 <바닷가의 수도승>과 나란히 걸려 있다.


이 두점을 나란히 놓고 많은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서 있는다.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곳

시름이 없어지고 나아갈 힘이 생기는 곳

미술이 갖는 힘을 이곳에서 다시 한번 느낀다.


이 두점이 한벽에 걸려 있으니 아마도 이 미술관에서 가장 핫한 스팟이 여기이지 싶다.


<Two Men by the Sea> 1817

바닷가에 두명이 남자가 서 있다.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Coast Scene by Moonlight> 1830

달빛 아래 광활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저 멀리 낚시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한사람인건가.. 두사람인건가...

낚시는 맞는건가...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끼어 대차게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어찌도 저리 여유롭게 있는 것인가...


더 들여다 보니 배는 뒤집혀 있고, 그 앞 바위에 앉아 모닥불을 피고 있다.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은 일...


모닥불이 물 젖은 바위에서 저리 활활 탈 일도 만무하고 (확신의 T형 인간인 나)

저 사람들은 밀물 때 걸어 나가 썰물이 되도록 저리 앉아 있는 건지

걱정도 앞선다.


무엇을 그런건지 사알짝씩 아구가 안 맞지만

저리 달빛이 밝은 밤 이름 모를 바닷가 어딘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고개가 끄덕여질 듯도 하다.


<Deep in the Forest by the Moonlight>1823-30

깊은 산속 달 밝은 밤에 두 사람이 모닥불을 켜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저 불은 빛을 위한 것인지 열을 위한 것인지 달은 휘엉청 밝아 하늘은 푸른 빛이 남았는데

곧게 쭉쭉 뻗은 나무 그늘에 가려 땅 어귀는 어둡다.


카스파르가 사랑하는 오브제들이 보인다.

바다, 달, 나무, 숲, 십자가, 그리고 한두명의 사람...


이 몇 개의 요소가 반복되며 무한한 변주와 오묘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카스파르 구나...


<Oak Tree in the Snow> 1829

<Oak Tree in the Snow, 눈 속의 떡갈나무>

한겨울 폭풍우에, 번개에 가지가 잘리고 머리가 댕강난 늙은 떡갈나무가 처연하다.

댕강난 가지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더욱 아리다


작가는 같은 제목으로 여러 그림을 그린 듯하다.


최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페이스 갤러리에서 매튜데이잭슨이라는 작가가 'CDF(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를 기리며'라는 문구를 달고 카스파르의 그림을 원형으로 두꺼운 물감과 여러 소재를 혼합한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그림의 원전 중 이런 떡갈나무 그림이 있었다.


[참고자료] 매튜데이잭슨의 <나무 (CDF를 기리며)> / 소스: 본인 네이버블로그


<The Solitary Tree> 1822

<눈속의 떡갈나무>와 계절은 바뀌고 양떼가 노닐지라도 고독한 정서는 그대로다.

제목도 <The Solitary Tree, 고독한 나무>


자세히 들여다 보니 한명의 양치기도 있는데

물가 옆 나무 아래 한가로이 양을 치고 있는 목동과 양떼들이라고 보면 외롭다기 보다 평화롭고 목가적이라고 보일 듯도 한데

희안하게도 저 나무의 외로움이 전체를 덮는다.


전시실에서 앞서 봐온 작품들의 정서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으리라...



이제 카스파르의 화풍이 잘 들어난 작품들을 지나서 인물들이 보이는 작품으로 간다.  


<Greifswald Harbor> 1818-20

이 그림은 이 그림 자체 보다 이 그림 이후에 그릴 대작의 습작처럼도 보였다.


멀리도 가까이도 떠 있는 배들

이제 막 출항했거나 이미 오래전에 출항해 멀리 있거나  

또는 오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자기 인생을 시작하는 아기와  

한창 인생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어른과

곧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려는 노인이 있었던  


<인생의 단계>


그 그림의 초기 구상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생의 단계>가 1835년 작품이고 카스파르는 1840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말년에 그릴 이 그림의 초석이 된 작품을 눈으로 보게 되니 그저 감동이다.


[참고자료] <The Stage of Life, 인생의 단계> 1835

이렇게 평화로운 바다의 풍경에서 그는 인생을 본 것이었다.

평생 바다를 품고 바다를 통해 세상을 봤던 그가 인생을 표현하기에 바다만큼 친근한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바다라는 영겁의 대상에 배라는 인간의 창조물을 띄우고 유한의 인생을 표현하고자 한 카스파르


<Woman at a Window> 1822

아, 이 작품이 여기 있구나


그가 그린 몇 안되는 여인 단독 그림 (아예 없나... 못본 것 같기도)



벽과 창과 마루의 겹겹한 사각의 세계에

등을 지고 있는 동그랗게 아름다운 여성


이 여성이 보고 있는 것은 세월일까  


바다로 나가지 못한 여인은 비롯 집안이지만 멀리 볼 수 있는 창가에 서서

내가 지나온 인생 내가 가야할 인생을 생각하는 것일까


다른 화가였으면 연인을 기다리는 건가... 생각했을 법도 한데

카스파르이므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의 그림들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남성들과 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의, 그런 그림일 듯하다


Caroline Bardua <CDF의 초상화> 1810

그의 초상화를 마주했다.


젊은 시절의 카스파르


저 젊은 청년이 어떻게 이렇게 종교적이고 묵상적이며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그림을 그린걸까

예술보다는 법과 정치를 꿈꿀 것 같은 눈빛인데 말이다.


이 그림은 Caroline Bardua의 그림으로 자화상은 아니다.

다른 화가가 본 카스파르는 눈썹에 힘을 주고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야망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George Friedrich Kersting <Caspar David Friedrich in his Studio> 1812


비슷한 시기의 다른 카스파르의 초상

이번엔 다른 화가가 그렸는데 앞의 초상과는 많이 다르다


앞으로 삐죽삐죽하게 빗은 머리와 구렛나루부터 턱수염으로 이어지는 스타일은 비슷하나

그림을 그릴 때의 그는 부드럽고 유연해 보인다


여전히 눈썹 부근에 힘을 주고 있지만 이는 그림에 집중하는 얼굴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이지 야망남 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다.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는 방 하나를 털어 카스파르의 공간으로 꾸몄다.


총 12점의 카스파르의 작품과 카스파르를 그린 2점의 작품이 한 방에 전시되어 카스파르를 충분히, 온전히 느끼고자 하는 관람객에게는 대단히 훌륭한 공간이 되었다.  


다른 작가의 독립 방은 따로 없었기에 이 미술관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할 만했다.


원래는 <바닷가의 수도승>을 보러 간 것인데


기대치 않았던 <Oak tree in the Snow> <Deep in the Forest by Moonlight> <Woman at a Window> <Caspar David Friedrich in his Studio> 등 책에서 보던 작품들과 몰랐던 새로운 작품들을 줄줄이 보게 되 예상치 못한 즐거움에 감동이 배가 되었다.  


그의 가장 대표작인 <안개위의 방랑자>는 함부르크에 있으니 후일을 기약하면 된다.


행복한 시간이다.


이제 이 미술관의 두번째 목적인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보러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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