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는 카스파르와 아놀드 뵈클린을 보러 간 것이고 그외 그곳의 상설전까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빈에서 클림트의 작품이 대거 넘어와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내일 빈으로 넘어가 서울로 출발하기 전 이틀동안 오스트리아의 대표 작가인 클림트와 에곤실레를 그들의 홈타운에서 충분히 볼 생각이었는데 베를린 구 국립에 안 왔더라면 빈에 가서 클림트의 여러 대표작들을 못 볼 뻔 했다.
갑자기 가슴 쓸어내려지는 상황;;
입구부터 사람들이 다른 관들과 다르게 복작인다.
좀더 다가가니 입구 정면부터 <유디트>
여러 유디트 중에는 젠틸레쉬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아래)
젠틸레쉬의 유디트는 유디트의 칼이 홀로페르네스 목의 반을 막 관통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 아직 채 숨이 끊기지 않아 배신과 경악과 포기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적의 얼굴과 이 순간을 기다려 절대 실패치 않겠다는 유디트와 그녀의 조력자의 비장감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대단히 집중력 높은 작품이 되었다.
그에 비해 클림트의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어떤 초월적 여신처럼 표현되어 있다.
클림트가 평생을 그려온 금빛의 대형 여성 초상에 잘린 목을 든 것 뿐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클림트의 유디트를 어떻게 봐야 하나 시작에선 난감했다.
오히려 지혜와 전쟁의 신인 아테나를 표현했을 때는 <유디트> 때와 달리 주제와 작품이 서로 잘 붙었다. 전쟁의 잔인함과 강인함이 잘 드러나는 표정과 장치들이 그림에 힘을 불어 넣었다.
유디트나 아테나같이 강한 그 어떤 것보다 클림트는 그로테스크함과 치명적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맞닿을 때 빛이 난다.
이 작품은 <음악>을 표현 한 것인데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인 여인이 타고 있는 음악은 경쾌한 왈츠일 수 없고 무거운 진혼곡 일 듯 하다.
클림트의 클리셰가 보이는 <사랑>이라는 작품
그림 속 남녀는 현재 서로 없으면 죽을 듯이 열렬하지만 그 사랑은 찰라이며 끝이 올 것이고 이는 그림 위 아이와 여성과 악마들을 통해 말해준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멀리서 보면 상당히 고혹적이고 우아한 여성인데, 가까이 보면 흐릿하게 뭉겐 표현기법과 압도적으로 독특한 눈동자 때문인지 어딘지 우울하고 무섭기 까지 하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여성
순백의 아름다운 여인과
클림트 특유의 패턴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지나
하얀색 퍼프소매에 큰 모자를 쓰고 싱그러운 잎사귀를 뒤로 하고 화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성
매력적이다.
클림트의 여성들은 정적이고 고상하며 지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클림트 특유의 패턴들이 자연에서 부터 서서히 발전하였겠구나, 추측할 수 있는 그림
다음은 Stuck이라는 초면 작가의 작품
클림트가 빈 분리파의 대표주자 였듯이, Stuck이라는 작가는 뮌헨 분리파를 만들었다.
이 그림은 클림트와 같은 전쟁의 신 아테나를 그린 것인데 클림트의 아테나보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보편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려냈다.
클림트의 아테나와 같이 전시되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정형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아테나를 그린 Stuck을 보고 비교적 평범한 스타일의 작가구나.. 생각했는데
이 두 점을 보고는 '어라?'했다.
클림트 기획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들에 Stuck의 위 두 작품도 빠질 수 없다. 두 작품 모두 그로테스크하고 어떤 면에선 악마적이며, 치명적이고 뇌쇄적인 인물 표현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두번째 작품인 <Tilla Durieux as Circe, ca.>은 칼데론 극장에서 오스트리아 여배우 틸라 뒤리우스가 마법의 서커스 역할을 하는 사진 (아래, Mary von Stuck의 작품)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을 먼저보고 나중에 사진을 알게 되었는데,
그림과 사진, 무엇이 낫다, 좋다, 고 할 수 없을 만큼 같으면서 다른 방식으로 끌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