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숨은 진주같은 미술관
샌프란엔 이제 당분간 출장갈 일이 없을 듯하다. 하여 일이 끝나고 하루의 휴가를 붙여 작년에 왔던 좋았던 미술관들에 들렀다. 작년엔 시간이 많지 않고 일행도 있어 온전히 작품에 집중을 못했던 터라 이번엔 혼자 들러 조금 더 원하는 만큼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Legjon of Honor와 샌프란현대미술관을 갈 예정인데 우선 Legion of Honor 뮤지엄 먼저.
https://maps.app.goo.gl/mgNeMoYpDZoyjvyt9
우리에게 덜 알려진 Legion of Honor 뮤지엄은 샌프란 골든게이트에서 서쪽으로 약 10여분 차로 가면 되서 골든게이트와 엮어 다녀오기 좋다. 작품 컬렉션도 막 유명~ 그런 건 아닌데 꼼꼼히 들여다 보면 이 사람들의 취향에 스며들 것같은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본진같은 작품들은 작년 블로그에서 거의 다뤘고 (글 끝의 지난 블로그 참고), 지난 방문엔 지나쳤는데 이번에 새로 들여다 봤거나 1년만이니 교체 전시되어 초면인 작품들도 있을 것이라 그러한 작품 위주로 포스팅을 한다.
Attributed to Hans Cranach / Portrait of a Lady of the Saxon Court as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 ca. 1537
홀로페르네스의 유디트는 소재에서 여러 다른 작가들이 다루었는데 작가는 생소하나 인물묘사에 시대적 특성이 담겨 눈길이 갔다.
El Greco / Saint Francis Venerating the Crucifix / 1595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성인을 그린 엘 그레코의 작품. 귀족에서 가난한 자를 돕는 성인으로 거듭난 삶이 엘 그레코 특유의 색톤으로 잘 표현되었다. 십자가의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앙상하게 마른 성인은 그 얼굴색 마저 의복과 마찬가지의 회색빛으로 표현되 그가 걸어온 고행의 한 면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Peter Paul Rubens / The Tribute Money / 1610 - 1615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세금에 대해 물으며 시비를 걸자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응답하신 성경의 스토리를 그린 것이다.
루벤스의 작품으로 환한 빛이 나는 예수와 예수를 시험하며 듣기를 원하는 바리새인들이 화면 한가운데 예수의 손 부근에 소실점을 만들며 몰린 구성이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에 힘을 불어 넣었다.
대가의 힘
Pieter de Hooch / Woman with Children in an Interior / 1658-1660
실내와 창문과 빛과 등장인물을 보건데 플랑드르 화가의 작품일 것이 확실하다.
피터르 데 호흐 (Pieter de Hooch)
작품으로는 처음 접한 호흐의 명성은 책에서 자주 읽었는데 페르메이르가 구사한 회화풍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구나
찾아보니 호흐가 페르메이르보다 3살 많고 좀 더 오래 살았으니 시기적으로는 정확히 겹친다고 봐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 화풍은 페르메이르가 유일무이하게 구사한 것은 아닌거구나, 작은 발견을 하게 됨
Frans Hals / Portrait of a Gentleman in White / 1637
아주 유쾌한 인물초상의 화가 프란스 할스의 작품
비스듬히 몸을 튼 자세와 시선, 눈길을 빼앗는 콧수염 표현, 밝은 옷색과 배경색에서 할스의 스타일이 보이다 보니 초상화의 주인공이 웃고 있지 않는데도 전반적인 그림의 정서는 가볍고 경쾌하다.
William-Adolphe Bouguereau / The Broken Pitcher / 1891
전시된 방 전체를 밝은 느낌으로 꽉 채운 소녀의 초상화
정작 소녀는 웃음기 없는 무덤한 표정에 치장한 것 없이 소박한데 소녀의 앳되고 싱그러운 에너지가 자연스레 캔버스를 뚫고 나와버린 느낌이다.
파란 치마에 붉은 상의, 그 옆에 놓인 초록의 물동이가 빛의 삼원을 구성하다 보니 머리속에서 시각적으로 섞여 밝은 빛을 만들어 버린건가... 생각했다. 저 멀리 공기원근인 듯 아스라해진 마을의 흐린 파랑도 한몫했다.
Konstantin Makovsky / The Russian Bride's Attire / 1889
가끔씩 이런 화려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비유럽권 (중동에서 많이 보였고 여기서는 러시안 회화) 그림을 보면 그림 보다 그림을 그려내는 기술 자체에 눈이 간다. 어떤 물감을 어떤 배합으로 만들되 다른 무엇을 섞어 그려 이리도 시간 앞에 반짝거리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화려한 결혼식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두듯 참여한 사람들, 그들의 표정, 의복, 장신구, 풍습 등이 잘 보여 기록화로서의 의미도 클 듯하다.
Jean-Leon Gerome / The Bath / 1880 - 1885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을 보는 듯 신비롭고 은밀한 그림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백인여성의 피부는 신화에서 튀어나온 여신의 몸처럼 비현실적이고 이를 강조하듯 시중을 들고 있는 사람은 부러 흑인여성이다.
주인공 여성은 피부가 그 자체로 궁극의 미라 그 어떠한 의복도 장신구도 걸치지 않았는데 이와 대비되는 흑인여성은 검은 피부에 각종 의복과 장신구로 그녀만 따로 떼어내면 그녀도 한 아름다움 할지언정 이 그림에서는 주인공 여성을 빛나게 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게다가 부끄러운 듯한 주인공 여성의 자태와 그림의 톤을 한껏 밝게 잡아주는 터키색 배경이 더해져 은밀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림이 탄생되었다.
프랑스 작가인 Jean-Leon Gerome은 오스만제국을 여행하던 중 이국적인 문화인 목욕과 목욕탕 타일의 색감 등에 매료되 그가 직접 관찰한 씬이 아니나 이렇게 그림을 그렸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 오히려 있을 법하지 않은 몽환적이고 에로틱한 그림이 탄생했는데 이 그림이 나의 '오늘의 픽'.
Giacomo Favretto / Girl in the Window / 1880
그림에서 가장 밝은 창문부분의 유리에 일본 우키요에 그림이 붙어있어 시선이 갔던 자코모 파브레토의 그림. 환한 색채감과 빛이 만들어내는 두드러진 명암표현이 그림에 입체감을 살려서 좋았다.
James Tissot / Winter or Mavourneen Portrait of Kathleen Newton / 1877
James Tissot / Self-Portrait / 1865
James Tissot / The Impresario / 1878
제임스 티소의 그림이 유독 많이 보였다. 본인의 초상화를 포함해 어디 하나가 거슬리지 않는 균형잡히고 조화로운 그림이었다. 티소의 작품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건데 이번에 눈에 띄면서 그의 스타일을 좀 더 기억하기로 했다.
Edgar Degas / Musicians in the Orchrestra / 1870
드가가 툭툭 스케치 하듯 그린 그림
드가는 발레 시리즈나 목욕하는 여인 시리즈에서 보듯 동작이 있는 인물들을 생동감있게 표현하는데 탁월하다. 그림 배경에 무심하게 붓으로 쓱싹쓱싹 그어둔 선들이 음표인지 관중인지 알수 없는데 어인 일인지 이런 것들을 통해 그림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Gustave Caillebotte / Sunflowers along the Seine / 1885 - 1886
카유보트의 해바라기
소재에서 떠오르는 고흐와 스타일에서 떠오르는 모네를 뒤로하고 이 작품의 주인은 카유보트다.
Paul Cezanne / Forest Interior / 1898 - 1899
앞뒤로 굴러도 세잔
세잔의 위대함은 언제 깨달아질까...
마네와 마찬가지로 나의 숙제다.
Legion of Honor 뮤지엄은 주위가 거대한 정원이자 숲이다. 그림을 보고 나서 이 야외 정원을 한바뀌 도는 것만으로 30분쯤, 어쩌면 더 걸릴 수 있을 정도로 광활하다. 정원 어느 꼭대기에 서면 샌프란 시내가 발 아래다.
대중적 탑픽의 작품들보다 숨어있는 원석같은 작품들이 그득한 이 미술관은 "OO과 OO이 유명하대" 를 찾아 발길 바쁜 미술관이 아니다 보니 내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고 어떤 그림에서 발길이 멈춰지는지 스스로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미술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