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으로 나라가 떠들썩 하다.
처음에 1000명이 모여있는 한 오픈채팅방에서 이 소식을 영문으로 보고 놀래서 '이게 맞는 거야?' 싶어 국내 뉴스를 찾았더니 속보가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맞구나,
그렇구나,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그런 아주 일차원적인 감정들이 떠오로고 나선 봉준호감독이 오스카트로피를 올리며 환호하는 순간, 우리 탄이들이 빌보드, AMA를 거머쥐고 감격하는 순간이 겹쳤다.
대한민국의 문화수준이 문학에 까지 이르렀구나
그것도 한글날이 딱 하루 지난 10월 10일에 전해진 뉴스라 한국어로 쓴 소설로 노벨상을 타는 시대가 온 것이 새삼 더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훌륭한 소설이라는 어떤 평을 어떤 루트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보고선 무슨 소재인지 모르고 사서는 그해 여름휴가를 보낼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부터 읽었다.
그리고 머엉.....
이런 내용이구나....
그렇구나...
내 휴가는 망하겠구나...
그랬다.
난 그해 여름 휴가를 망했다.
청량하고 아름다운 시칠리아에서 바다수영을 하고 화산탐험을 하고 바디감 좋은 와인을 마시며 쉬엄쉬엄 읽으려던 얇은 책에 무방비로 노출된 나는 몸은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있는데 마음이 무겁고 먹먹하고 괴로워서 힘이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장한장 꼼꼼히 읽고 힘들면 내려 놓고 심호흡을 했다가 이내 또 다시 집어들고 눈을 부릅뜨고 읽었다. 나는 눈을 부릅뜬다고 떴는데 자꾸만 눈이 흐려져서는 시칠리 바닷가 선베드에 앉아 지는 석양을 눈앞에 두고 있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지게 꺼억꺼억 여러번 울었다.
책을 다 읽고 카타르시스같은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며 해결되지 않은 역사이고 가해자는 결국 한마디 사과없이 죽어버렸다.
가해자가 생의 마지막을 살고 있을 즈음 연희동 골목에서 목격된 모습이라며 한장의 사진이 올라왔는데 사진 속 그는 기세당당했던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오간데 없이 그저 죽음의 그림자만 남아 허우적 허우적 걷고 있는 한 망령에 불과한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본지 얼마후 그는 죽어버렸고 그의 시신은 국립현충원에 뭍히지도 못한채 어딘가에 임시로 머물고 있다.
문학은 힘이 세다
모든 문화영역 중 가장 힘이 세다
텍스트로 저장되는 문학은 영화나 음악, 미술보다도 더욱 오래도록 어쩌면 거의 영원에 근접할 정도로 남을 것이다.
노벨상을 탄 작가의 대표작이 <소년이 온다>여서 그리고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작별하지 않는다>여서 이 사건의 가해자들은 앞으로 법이 단죄를 하던 안하던 역사가 영원히 기억하고 경고하고 감시할 것이다.
한강의 작품으로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10위가 채워졌다고 한다. 1위는 단연 <소년이 온다>이고 2위가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출판사들은 재고가 소진되 당장 팔 책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런 폭풍같은 관심으로 <서울의 봄> 영화가 그러했듯이 교육이, 정치가 해내지 못한 일을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해낼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 책들을 사람들은 시간의 문제이지 일생에 한번은 찾아 볼 것이고 그러면 알게 될 것이이다. 그리고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기억할 것이고 필요할 때 우뢰와 같은 힘으로 행동할 것이다.
한강이 그린 광주는 안 읽었다면 모를까 읽고나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것이 소설일 뿐이라며 외면할 수 만은 없는 정교함과 슬프도록 찬란한 서정미가 있다.
게다가 한강작가에겐 소위 안티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고 내일처럼 기뻐한다. 그의 평소의 소신과 행동의 결과다.
5.18과 4.3을 소재로 삼은 작가라 어렵지 않게(?)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녀는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는 통상적으로 받는 대통령(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축전을 받지 못하자 오히려 좋다고 당당히 말했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분인가!!
이제 우리도 불멸의 문학작품을 갖게 되었다.
세익스피어나 톨스토이의 고전처럼 우리도 한강이라는 작가를 통해 몇백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그런 작품을 갖았다.
자랑스러운데 아프고
경이로운데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