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유럽 최고의 보석같은 개인 미술관
네덜란드에 미술여행을 계획했을 때 머리속엔 '페르메이르'밖에 없었고 페르메이르를 보고 다른 작품이나 미술관은 발 닿는대로 알게 되는대로 가자 했다. 열흘동안 11개의 미술관을 다녀오고 머리속에 가장 크게 남아 다음에 네덜란드에 다시 오게 될 때 꼭 다시 올 미술관으로 2개를 꼽았는데 모두 아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인 라익스뮤지엄과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는 보를린덴(포를린던)을 꼽았다.
포를린던은 네덜란드에 도착하기 전엔 몰랐고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내일은 어느 미술관을 가지?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와중에 헤이그 근교 바세나르 지역에 2016년 오픈한 개인 미술관이 있는데 당시 가고시안 갤러리 대표가 오픈전에 다녀가선
안목과 자원, 두 가지가 이렇게 잘 조합되기는 흔치 않은 경우이고
모든 방면으로 심사숙고했음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
Mark Francis
Director of the London Gagosian Gallery
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곤 주저함 없이 선택한 곳이다. 현재 전세계 여러 갤러리들 중 글로벌 파워가 탑급이면서 그 취향과 안목이 가장 나와 잘 맞아 믿보의 마음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으며 이번에 본 모든 미술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관으로 '보를린덴만으로 네덜란드에 갈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Museum Voorlinden의 홈페이지]
위치는 헤이그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15분여 이동해 또 20여분 걸었는데, 조용한 대도시 외곽마을을 지나며 미술관에 닿는 여정이 살살부는 봄바람 같고 좋았다. (본편은 내용이 많아 다음편에서 주변경관 포스팅 예정)
도착한 미술관에서는 안젤름 키퍼 기획전 (별도 포스팅 예정)과 상설전(이 글 포함 총2편 예정)이 있었는데 초입의 안젤름 키퍼 기획전을 지나고 나면서 부터 본게임이 시작되는 듯 했다.
(안젤름 키퍼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못 잊는다. 다만 이번엔 구면의 키퍼보다 보를린덴의 다양한 새로운 작품들에 관심이 더 갔을 뿐이다)
작품을 눈앞에 두면 미술관 밖까지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사진으로 보면 사람을 지독하게도 똑같이 재현한 설치작품이라고 보이는데, 론 뮤엑의 이 작품의 특이성은 크기에서 나온다. 천고가 높게 올라간 크기도 큰 전시실에 거대하게 꽉 들어찬 작품은 규모감으로 압도한다.
거대한데 내용은 사이좋은 노부부고, 들여다 볼수록 실제 사람과 너무 닮아 - 사실은 미화된 노인의 모습이겠지만 (실제 노부부가 저렇게 잡티없이 백옥같은 피부에 저만큼의 잔주름만 있지 않다) -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의 AI가 창조해낸 인간처럼 사람과 너무 똑같아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인간과 너무 닮은 가상인물에 공포감과 거부감을 느낀다는데 이 작품은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친밀감에 부부 사이에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담백한 사랑이 느껴져 은은하고 따뜻한 정서가 차오른다.
무념무상한 듯한 남편의 표정과 이를 지긋이 내려다 보는 아내, 그런 아내의 팔을 꼭 잡고 있는 남편. 이런 도드라지지 않은 은근한 관계성이 인생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미술관이 내세우는 작품은 이것인 양 포스터에도 홈피에도 이 작품이 메인으로 걸려있다. 실제 수영장은 아닌데 수영장 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관객이 물 아래로 내려가 아래에서 물 위를 바라볼 수도 있다.
물을 사이에 두고 물 위의 사람들과 물 아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바뀌면서 어느 순간도 같은 작품일 수 없는 관객 참여적인 작품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는데 가족들이 함께 와서는 누구는 위에 있고 누구는 아래로 내려가 서로 사진을 찍으면 까르르 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1976년생 비교적 젊은 작가의 작품인데 몬드리안의 비례를 입체로 옮겨온 듯하면서 색 조화도 심플하고 모던해 시선을 확 끌었다.
비슷한 채도라 마음이 편해지는 회화가 아닌 흙으로 만든 부조 같은 작품도 있고
독특한 색감과 어찌보면 괴기스럽기도 한 회화작품이 있는가 하면
도널드 저드가 상자를 사용하기도 했나보다.. 했는데 전혀 초면의 작가 작품이라 재미있었다.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의 상자들을 활용해 크기, 비례, 균형등을 정교하게 계산하여 배치했다.
zonder titel이 또 나왔는데 Untitled같은 의미구나... 깨달아지고 (찾아보니 맞고)
Jose의 작품 앞으로 한잎 베어문 사과가 잔뜩.
물론 사과를 닮은 모형이고 작품이다.
왜 굳이 '한 입 베어문' 사과일까
누군가 치지 않더라도 주위에 누가 지나만 가도 그 진동에, 그 기운에 와르르 무너질 것같은 바스켓. 하필이면 안에 들어있는 것은 계란(을 닮은 공)이다. 지극히 불안정하고 깨지기 쉬운 대상과 상황에 작품을 인위적으로 배치한 위트가 재밌다.
<Eiereimer auf Stuhl mit Pappsockel> 제목을 번역기에 돌려보니 <판지 베이스가 있는 의자 위의 계란 양동이> 라고 한다.
제목만 알아봤으면 설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네
뒤의 마티스의 종이접기 작품같은 그림은 앤디워홀의 <위장>이라는 작품이고 앞의 마씨모의 작품은 이번엔 이탈리아어 번역기를 돌리니 <최하부>라고 번역되 나온다.
앤디워홀의 작품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팝아트풍이 아닌 이례적 모습이라 기억에 담았고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은 지구 저 안쪽을 끄집어 낸 듯 태고같고 원시같고 그런 느낌이다. 현무암같은 것을 태워(태울 수 있나?) 재가 되면 저런 모습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쇠라 이후의 모노크롬이라고? 내가 아는 점묘법의 쇠라?
무수한 색색의 점이 캔버스가 아닌 망막에서 섞여 색을 표현한 쇠라
초록도 파랑과 노랑이 섞여서 이뤄진다면 다양한 파랑과 노랑의 조합으로 이렇게 다양한 초록을 만든건가?가까이 가 보면 채색이 아니라 촘촘한 무수한 파랑과 노랑점이 있을까?
다시 가서 확인하고 싶을 뿐이고;;
데미안 허스트의 색색의 알약 작품이 떠오르는 하나도 같지 않은 무수한 담배꽁초.
같은 종류의 담배꽁초인데 피고 난 후의 모습이 각양각색인 것은 꽁초 수 만큼의 다양한 사람이 피웠기 때문일 것이다. 담배를 피우고 끄는대도 각자의 개성이 있어서 이렇게 모두 다르다.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포를린던은 긴 텍스트의 설명판이 없고 딱 작가(생몰), 타이틀, 연도만 표시되 있다)
우고의 색상환 같은 작품이 있고
제임스 터렐 스타일의 빛과 공기를 다뤄 지상에 없을 듯한 공간을 창조해낸 작품도 있으며
리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기획전에서 이미 마주한 초미니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도 만났다.
멀리서 부터 눈길을 끌던 작품
파랑과 골드의 색 대비도 그렇고 생명력을 거세한 사람의 형상때문에도 그랬다.
아트바젤에도 나오고 그러는 작가이자 작품이던데 눈여겨 두었다.
기본을 갖추듯 르네 마그리트의 평범한 작품이 눈에 들어오고
또 기본을 갖추듯 그리스신화 소재의 그림
에로스의 사랑의 화살 맞은 아폴론이 처음 본 다프네를 사랑하게 되 쫓아오고 에로스의 또 다른 증오의 화살에 맞은 다프네는 아폴론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가는 아이러니 속에 더이상 도망 갈 곳이 없는 다프네가 아버지에게 요청하여 월계수로 변한다는 신화를 담은 모습
몇년전 선풍적 인기를 입은 넷플 시리즈 브리저튼의 여주이름이 다프네인 것은 이 신화로 부터 가져왔을 것이다
너의 눈을 들으라
너의 눈을 믿으라
너의 안목에 귀 기울이라
아주 마음에 드는 시적 문구
올라퍼 엘리아슨의 <Lake Fades>
호수가 사라지는 모습이라면 물이 줄어들며 색이 변하는 모습일까
물이 줄어드는 그 자체일까
호수가 사라지는 여러 상황 중에 보여지는 빛의 모습일까
설명판이 따로 없어 오히려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게 해준 포를린던의 큐레이션이 마음에 듬
두 벽에 기대 한다리로 서있는 의자인줄 알았더니 테이블인 작품
그러고 보니 어느 한면을 보면 테이블 네 귀퉁이 어느 한 모서리인 것은 확실하네
사물을 내가 서있는 시점과 위치가 아니라 360도로 유연하게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
독특한 소재의 앤틱한 목거리려니 했는데 소재가 머리카락이다.
이 목거리는 실제 착용을 목표로 하지 않은 아트작품이다만 고대 이집트 어딘가, 중세 어느 영주의 마을에서는 가능하기도 했겠다 싶은 악세사리
작품을 보고 지금 내 감정에 좋건 나쁘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중요하다. 이 작품을 보고 기분이 좋아질리 없지만 새로운 감각세계가 열리는 듯하니 그런 작품들은 늘 의미있다.
독일어로 번역기를 돌려보니 딱떨어지진 않지만 <오목거울>을 뜻하는 듯한 작품 제목
그러니 더 이해가 된다. 오목거울은 특성상 상이 거꾸로 맺히고, 볼록거울은 상이 제대로 맺힌다.
위 작품의 거울들은 시각적으로도 오목거울이라 상이 거꾸로 맺혔다. 호옥시 오목거울 뒤 뭔가 수학적, 과학적 장치를 하여 오목한데 상이 바로 맺힌다면 좀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에셔 미술관에서 본 구에 상이 바로 맺히게 한 에셔의 천재적 작품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게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을건데...
다시 보니 가운데를 중심으로 맺히는 상의 밀도가 크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적어지는데 상단은 인물의 머리쪽이 서서히 사라지고 하단은 다리쪽이 사라지며 좌측은 인물들 왼쪽으로 이동하다 사라지고 우측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다 사라진다.
거울의 각도를 조금씩 달리하여 상이 중심을 기준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표현한건가...
이거야 말로 인물들의 Fade out 이다 (쬬 위에 올라퍼의 <Lake Fades>를 끌어오자면)
거울은 가로 세로 11 X 11 이었는데 처음엔 10 X 10같은 완전수가 아니라 왜 11같은 뜬금없는 숫자였을까... 의문만 짧게 스치고 지나갔는데 11같은 숫자여야 정중앙에 중심을 두는 하나의 거울이 생긴다. 위 작품 기준으론 6 X 6의 위치에 오는 거울이다.
그런 중심성을 기준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무언가, 시간의 흐름없이 동타임에 대상이 이동하지 않고 사라지는 것 (또는 그 반대로 등장하는 것)
그것인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