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이자 마지막 편입니다.
순방향으로 시대를 지나가는 중이라 이제 거의 다 되었습니다.
이번 편은 주로 미국 위주의 현대미술인데, 잭슨폴록과 웰렘드쿠닝, 마크로스코와 자스퍼 존슨,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리고 마티스를 이 편에 넣었습니다. 마티스는 The Red Studio전으로 별도 관이 MoMA에 배정되 있어서 이와 연결해 함께 포스팅 하느라 #3편으로 배치했습니다.
바로 들어갑니다.
잭슨폴록은 미국현대 미술을 논할 때 가장 앞에 이름이 있는 것에 어색함이 없다. 호불호와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액션페인팅이라는 새로운 표현기법을 만들어 낸 것은 인정해야 될 듯하다. 아래는 그의 액션페인팅 스타일이 정립되기 전의 작품으로 보인다.
붓질이 있고 형태가 있다.
제목이 <Stenographic Figure>인 걸로 봐서 빠르게 대상을 표현한 작품 쯤 될 것이다.
*Stenographic: 속기술의
잭슨폴록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One: Number 31, 1950>이다. 그 방으로 들어가는데 이미 사람이 많다. 좀 빠지면 올까 했는데 계속 많다.
별수 없다, 그냥 낑겨 봐야지.
위 두 작품의 차이가 뭘까?
얼핏보면 그게 그거인데.
그래서 질문을 바꿔 봤다.
위 두 작품 중 하나의 작품을 갖을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갖을래?
<One: Number 31, 1950>을 선택할 것 같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두 작품을 두고 봤을 때 더 치밀하고 더 속도감이 있으며 완성도도 더 높아 보인다.
폴록의 작품을 자세히 보면 이런 모습이다.
그가 어떻게 붓으로 물감을 떨어뜨리며 지나가는지 상상이 되는가?
볼 때는 폴록의 작품에 가려 얼레벌레 봤는데, 나중에 내가 그의 아내의 작품도 찍어 놨더라 (기특하다 ㅎㅎ)
Lee Krasner, 폴록의 아내로 왜 폴록의 작품 옆에 함께 이 작품이 있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폴록의 사고뭉치 기질 (누군가는 자기파괴적 성향이라고 표현하던데... 맞네, 그의 행동을 생각하면 심히 자기파괴적이지...)과 알콜중독과 그 많은 사건사고를 함께 겪어낸 아내다.
남편과 미술적으로도 교류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잭슨폴록과 친구로 경쟁자로 함께 했던 윌렘드쿠닝 (Willem De Kooning)
네덜란드 출생이나 미국으로 건너와 미술작품을 하면서 폴록과 많은 교감을 했다. 친구이나 끊임없이 쿠닝을 의식했던 폴록과 달리 폴록을 인간적으로 포용하고 이해했던 사람이 쿠닝이다. 전시도 폴록이 있으면 늘 쿠닝이 옆에 있고, 쿠닝이 있으면 폴록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의 가장 대표 작품인 <여인 I>이 MoMA에 있었다.
멀고도 먼 추상표현의 세계...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그의 유명한 색면추상 전의 작품들인데 이런 풍의 그림도 했었구나, 생각한다.
그는 본인의 작품을 가장 잘 감상하려면 작품과 관객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고 그래서 작품을 크게 그린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림에 빨려들 듯이 감상을 하는 사람들이 그 앞엔 유독 많고 그런 사람이 있을 때 그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도 유독 적다.
다들 알고 그러는 건가?
대단한데?
그는 그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그런데 작품을 보면서 "울음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는 반응이 가장 많은 작품이 마크 로스코라 한다.
참으로 묘한 지점이다...
남준이가 작년 LA Sofi콘 후 휴스턴의 Rothko Chapel을 찾아간 것을 계기로 마크 로스코는 알게 되었다
하아... 휴스턴이라고...
미국서 석사할 때 살던 휴스턴이라고...
3년이나 있었고만, 찾아보니 내 첫 아파트 바로 앞이더라
그 동네선 학교말고 야구장만 가봤지, 그런 어마무시한 교회가 있는줄 몰랐네...
그 시절 나의 무지에 지금 새삼 진짜 괴롭...
경쾌한 앤디워홀의 캠벨수프로 빨리 넘어가야 겠다ㅠㅠ
소올찍히 앤디워홀 작품의 미적가치는 높지 않다고 본다. 그가 선택하는 대상은 코카콜라, 캠벨수프고 셀럽으로도 마릴린먼로나 엘비스프레슬리며, 표현하는 방식도 실크스크린을 많이 사용한다.
정말로 "대중적" 인 것, "대량적" 인것에 목을 멘다.
그래서 그를 팝아트의 대명사로 칭하는 것이고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인 것이다.
앤디워홀보다 더 어이가 없어지는 사람이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만화를 가지고 뭘 한다는건지...라고 그 시대 사람이 생각했다 (난 아무말도 안했음)
그래도 시대를 이겨 그는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칭송받고, 국내에서도 故이건희 회장이 <행복한 눈물>을 가지고 있어서 흥미를 끌었었다.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에선 고개가 갸우뚱 해지지만 자스퍼 존슨(Jasper Johnson)에 와서는 고개가 끄덕여 진다. 그의 Flag들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 지는 느낌이 있다.
나도 이런데 하물며 미국인들은 어떨까
거칠게 붓질이 되 있어서 어쩐지 남북전쟁 같을 때 기수들이 맨 앞에 달았을 것 같고, 북치는 소년이 들고 선두에 섰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끝으로 마티스(Henri Matisse)다.
그의 <Dance I>이 큰 벽면을 차지하고, 그 앞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어린 아이의 그림 같기도 한 마티스의 춤을 보면 대가와 아이도 또 한끗차이인가 싶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했던 마티스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의 야수파적 작품은 적고 드로잉, 스케치 위주에 색종이 오리기 작품 정도로 꾸렸던 전시였다. 색채의 향연을 기대하고 갔다가 살짝 실망했었다. 그 때 설명지를 통해 MoMA엔 방 전체를 이 종이오리기로 수영장 처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이 정도면 볼만 하겠다...' 생각했었다.
그것이 바로 바로 이 작품!
오 예!
이 정도면 인정하지
(마티스작가님께 하는 말이 아니구요, 예전한테 하는 말.. 예전의 큐레이팅은 늘 실망스러우므로...)
이 정도가 되니까 모마가 마티스의 이 수영장 작품을 이 큰 공간에 놓고 영구 전시하기로 한 걸 것이다.
그리고 마티스의 <Red Studio>.
독립 전시실로 따로 꾸려져 있다. 마티스가 Red Studio를 그려 놓은 그림과 한 청년 Sailor가 눈에 들어온 곳이다.
비행기 시간을 대야 해 이미 미술관을 나오고 나니 키스해링과 바스키아를 보지 못했다...
흐미...
왜 이제 생각난디야...
또 오라는 소리려니, 생각하자.
봤던 것 또 봐도 새로운게 보일거고 다르게 보일거라 또 올거지만, 안 본 작가도 있으니 더욱 와야지.
출장을 싫어하지만 미술관에 간다.. 생각하고 좋아하려고 노력하자... 한다.
또 보자 M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