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이 겸재정선展을 대규모로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역대급일 줄 몰랐다. 세기의 전시다. 전시작품도 165점으로 역대급인데 그 면면을 봐도 최고중의 최고를 모두 전시해두었다.
이런 전시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도 작품들이 화려하고 대단해 감히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 뭐라고 말을 얹기에도 어려워 본 작품을 아카이빙 한다는 마음을 먹은 후에야 랩탑앞에 앉았다.
겸재정선 展
2025.4.2 ~6.29
호암미술관
김홍도가 조선후기 미술을 휘어잡을 때까지 조선회화에서 겸재의 이름은 나에게 원탑이긴 했다. 그럼에도 걸출한 후기 화가들에 밀려있기도 하고 화풍도 좀 보수적이다 보니 매력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겸재정선展을 보고는 함부로 그렇게 누구와 비교선상에 놓을 수 없는 분이구나, 생각했다.
진경산수화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18세기 초 대표 화가
겸재라고 하면 막 떠오르는 4가지.
그 4가지 중 작품이 2가지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그 두 점이 모두 이번 전시에 나왔다.
인왕제색도는 몇 년 전 이건희기증전을 할 때 이미 보았지만, 2027년부터는 해외투어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 전에 이렇게 한번 더 보게 되서 기쁘고, 금강전도가 무엇보다도 가장 기대된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두 작품은 전시 입구에 가장 하일라이트 되는 방식으로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인왕제색도>는 다시 봐도 명품이다. 그래도 소재가 서울시내 한복판 매일매일도 볼 수 있는 인왕산 자락이라면,
아, <금강전도>
내가 직접 어느날 <금강전도>가 표현한 이 금강산을 볼 수 있을까..
저리도 험악한데 이리도 곱고 부드러운 금강산을...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는 금강산의 바위는 사실적으로, 구도와 구성은 볼록렌즈 대고 금강산을 본 듯 동그랗게 표현했다. 기본 구도가 원형이니 그 안의 바위들이 아무리 뾰족하다 한들 작품은 아주 부드럽고 섬세해졌다. 구도안의 솔산과 바위산도 1:2의 비율로 나뉘어 지루함이 없고 다채롭다.
원안의 금강산 봉우리들이 선명하다면 원밖의 봉우리들은 구름을 두른 듯 희미하다. 희미한 채로 봉우리의 형채가 무한해 보이니 금강산의 위용이 끝이 없다.
겸재는 조선의 천재 화가가 맞다. 이 두작품만으로 그가 천재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다음은 금강산과 동해의 이모저모를 그린 그림들
금강산 <정양사>나 <보덕굴>은 그 모양이 어떨까 새삼 궁금해지고 동해에 걸쳐서 우리도 지금 볼 수 있는 <총석정>은 그 자태가 빼어나기가 그지없다.
<단발령망금강산>은 글자 그대로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일 터인데 단발령과 금강산 봉우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여백으로 남겨둔 겸재의 탁월한 미감에 감탄했다.
<해산정>에서 바라보는 저 멀리 금강산 봉우리들이 꿈속인듯 현실인듯 아스라하다.
<금강내산총도>와 <금강내산>
비슷한 듯 다른 두 그림은 하나는 신묘년(1711년)에 다른 하나는 1712년에 그렸는데 1712년에 그린 그림은 사라지고 1747년 노년의 겸재가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그린 그림(해악전신첩 內)이라고 한다.
1711년 그림은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1747년의 그림은 호방하고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
젊을 때 그린 그림이 호방하고 노년의 화풍은 부드러울 듯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니 말년의 겸재가 어떠한 예술적 성향을 가졌을지 예측해 봄직 했다.
그림들을 보면 겸재는 아주 정직하게 그림의 장소를 써놓았다. 아주 단정한 글씨체라 알아보기도 쉽다.
<백천동> <만폭동> <장안사>, 세 그림은 족자로 나란히 걸려있어 시리즈인 듯 한꺼번에 감상하기 좋았고,
<장안사> <금강대> <비로봉>은 각각으로 또 아름답다.
정선의 그림들로 그 시대 사람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도 조선의 산천을 즐길 수 있었을까, 그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을까...
전자이기를...
#<<관동명승첩>>부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