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전신첩>> <<긍재전신첩>>의 늦은 후기
작년 대구 간송개관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면에서 김홍도에 치여있는 신윤복의 화첩을 거의 완본 형태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혜원의 전신첩 외에 해학 넘치는 긍재화첩까지 한점 한점도 귀한데 한권을 모두 들여다 보게 되니 어찌 귀하지 아니할까
<<혜원전신첩>>은 화원가문 출신의 신윤복이 한량들의 주막풍경, 양반들의 풍류놀이, 남녀의 밀회와 여인들의 생활풍속들을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서 기록해둔 화첩이다. 혜원은 단순 기록을 넘어 인물간의 관계와 상황설정, 스토리 전달에 능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을 읽게 한다.
아마 이번 개관전에서 미인도 다음으로 가장 긴 줄을 섰던 곳이 <<혜원전신첩>> 앞이었던 것 같다. 네 다섯 줄을 지그재그로 돌아 겨우 도착했다.
<주유청강> - 맑은 강에서 뱃놀이 하다.
<문종심사> - 종소리를 들으며 절을 찾아가다.
<단오풍정> - 단오날의 풍속 정경
<계변가화> - 시냇가의 아름다운 이야기
<쌍륙삼매> - 쌍륙놀이에 빠지다
<삼추가연> - 가을에 맞은 아름다운 인연
<월하정인> - 달 아래 정 깊은 사람들
<야금모행> - 야간 통행금지를 무릎쓰고 가다
<<혜원전신첩>>의 한편한편이 영화나 드라마의 한씬을 묘사해 둔 듯 생동감있다.
특히 <주유청강>은 혜원화첩중 가장 좋았던 그림. 인물들의 구성, 역할, 세세한 표정과 색감까지 완벽했다. AI로 살려내면 바로 영화처럼 움직일 법한 그림이다. 음악소리, 물소리도 들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도 귀가에 맴돈다.
교과서나 미술책에서 많이 보았던 <단오풍정> <문종심사> <월하정인> <야금모행>등을 직접 본 것은 역시 감동포인트.
<삼추가연> 속에 국화를 소복히 그려놓은 혜원의 마음이 무엇일까도 생각해 보고...
200여년전 그림이 마치 어제인 양 잘 보존되 이리 내려오는 것도 감사하고, 그 시대의 사람사는 모습이 우리와 그닥 다르지 않은 것도 재밌고, 전반적인 색감과 구도가 조화롭고 생기있어 즐겁다.
이번엔 <<긍재전신첩>> (보물)
조선 3대 풍속화가로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김득신은 특히 시민의 삶을 따뜻하고 해학적 시선으로 잘 풀어낸다. 바로 전에 화려하기로 또 조선 최고인 혜원의 화첩을 보고 와서 색감이나 톤에선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다만 그림 안의 개성과 순간포착성은 긍재가 한 수 위다.
<성하직구> 한여름의 짚신삼기
<야장단련> - 대장장이의 쇠메질
<주중가효> - 배 안의 좋은 안주
<야묘도추>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
<송하기승> 소나우 아래에서 장기두는 승려
<밀희투전> 몰래 투전을 즐기다
<야묘도추> 정말 최고의 그림이다.
굶주린 들고양이가 병아리 한마리를 물고 달아나니 주인은 엎어지는 것을 마다않고 곰방대를 든 손을 길게 뻗어 고양이를 쫓으려하나 이미 사정권을 벗어난 고양이의 여유로운 얼굴은 이미 이 게임의 승자가 고양이임을 알려주고 있고, 이에 덩달아 놀란 안사람과 정작 새끼를 잃게 생긴 어미닭의 파닥임이 카메라로 순간포착을 한 양 생생하다.
어쩜 저렇게 순간묘사가 뛰어날까, 감탄하게 되는 그림
<성하직구>에선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와 강아지까지 정겨운 가족의 모습인데 그 중 심통이 난 듯한 표정과 발가락에 한껏 힘을 주고 짚신을 꼬고 있는 가장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주중가효> 그치, 배에서 바로 잡은 고기 만큼 최고의 안주가 없지
<밀희투전> 속 인물의 벌건 얼굴은 그가 이 판에서 돈을 잃고는 냅다 술을 마셔버렸나 보다, 생각하게 한다.
<<혜원전신첩>>과 <<긍재전신첩>> 두 첩 모두를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해 온 간송에 새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