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로 미술여행을 떠나야 겠다고 생각하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헤이그, 델프트를 염두에 두고는 조금의 여력을 만들어 브뤼셀에 다녀오고 싶었다. 학생 때 배낭여행하며 보았던 오줌싸게 동상은 더이상 내게 매력포인트가 되지 않지만 자크루이 다비드의 작품이라면 다른 얘기다.
서울에서 부터 암스테르담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중간에 1박 2일 일정으로 브뤼셀을 다녀올 계획을 세웠는데 이동시간을 빼니 순수하게 1.5일 정도의 시간이 났고 자크루이 다비드의 작품이 있는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함께 붙어있는 르네 마그리트 전시관을 방문 목록에 넣었다. 자크루이 다비드만 생각하고 왕립미술관에 갔는데 루벤스의 그림으로 한 관을 털어 놓은 방에서 루벤스의 역동적 예술세계를 제대로 처음 겪었고 피터르 브뤼헐 하면 떠오를 법한 대단한 작품을 그곳에서 마주하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벨기에 왕립미술관]
https://maps.app.goo.gl/d3G82WQa1asAu4o58
이번편은 브뤼셀 여행의 목적인 자크루이 다비드편.
단 2개의 작품이다.
정치적으로 뛰어난 판단과 동물적 감각을 지닌 자코뱅파 자크루이 다비드가 공포정치로 유명한 로베스 피에르와 같은 진영인 장 폴 마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역동의 시기에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역사적 선인지 그 한가운데에선 알수 없을 수 있는데 최소한 이 당시 다비드는 자코뱅파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그의 천재적인 예술적, 정치적 재능을 활용했다.
그 정치적 의도가 어떻건 이 그림만 똑 떼서 보면 한 인물의 죽음을 대하는 화가의 방식이 대단히 숭고하고 성스럽기까지 하다. 피부염 때문에 욕조목욕을 해야하는 정치인이 목욕을 하는 중에도 시민의 편지를 밤늦게까지 보며 공적인 삶을 살던 순간도 잘 드러났고 반대편 당원의 공격에 비극적으로 생을 달리했음에도 죽음에 대한 거부 의지가 없는 순수한 얼굴로 내 죽음 이후의 승리를 위해 내 목숨을 기꺼이 내주는 순교자의 이미지까지 만들어냈다
선전 선동에 예술이 쓰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내 진영이 아니라 반대편에 이런 예술가가 있다면 간담이 서늘해 질 법한 할 만한 재능이다.
마라의 이름 아래 본인의 이름을 남겨둠으로 죽은 지도자의 위상 옆에 그도 서고 싶었음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비너스에 의해 무장해제되 버린 전쟁의 신 마르스
자크루이 다비드가 73세에 그리기 시작해 3년 여에 걸쳐 완성한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화려하고 우여곡절 많았던 삶과 작품 세계를 생각하건데 상대적으로 인간적이며 보편적 감수성을 지닌 그림으로 보인다.
그림의 완성도는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인가 싶게 견고했고 작품의 크기가 압도적이라 마르스와 비너스의 아름다움에 푹 파묻힌 느낌이 든다.
<마라의 죽음>과 이 그림은 방 하나를 털어 왼쪽 끝과 오른쪽 끝 벽에 마주보고 걸러있어 자크루이 다비드의 작품을 온전히 느끼기에 좋은 환경이었다.관람객도 많지 않아 더더욱.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가장 사랑한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