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루이 다비드의 작품을 마음에 품고 이리저리 돌다 도착한 공간
처음엔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의 소품들이 많아 눈높이에 놓고 보기에 좋았고 그가 인물을 어떻게 연구하고 습작해왔는지 따라가며 소소한 시간을 보냈다.
흑인남성의 얼굴을 놓고 이리 저리 연구해본 그림
캔버스에 무표정하기도 웃기도 한 네 옆 얼굴이 한꺼번에 있으니 습작을 넘어 그 자체로 작품이 되었다.
어머나!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도 새롭고 특히 그 인물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롭고 역동적이구나!!
루벤스의 화풍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다.
거의 렘브란트와 비슷비슷하게 연상되면서 초상화를 많이 남긴 화가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벽에는 루벤스의 소품들이 쭈욱 걸려 있는데, 이 작은 작품들 속에도 인물의 표정, 움직임, 구성, 비율들이 완벽해 크게 키워 놔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루벤스가 습작처럼 그려둔 작품들이 모여있는 방을 지나 복도에서 마주친 예쁜 소녀 그림
그래, 이런 스타일의 초상화를 많이 그린 작가지...
그런데 이런 초상화만 그린 작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다.
다시 복도를 지나 하나의 커다란 방에 도착했다.
천고가 시원시원한 방에 대작들이 한꺼번에 쫘악 걸려있는데 들여다 보니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들을 그려놓은 모두 루벤스의 작품들이었다.
(방 양쪽이 뚫려 있으므로 들어오는 입구에 따라 다르겠다만) 방 전면에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이 그려져 있고, 그 좌우로 예수의 태어나심이나 예수를 애도함, 성모승천 등 기독교의 단골 레퍼토리 그림이 걸려있어 예수를 비롯해 동시대 성인의 삶과 행적을 예술적으로 살펴보기에 좋았다.
벨기에가 종교로 통치행위를 하기에 루벤스의 이런 성화는 당시엔 더욱 큰 힘을 발휘 했을 듯하다.
이런 방에 이렇게 큰 그림들이 장엄하게 걸려있으니 현재도 경건한 마음이 절로 드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이 방에 들어왔더라면 더더욱 가슴에 손을 얹거나 머리르 조아리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신께, 왕게 경의와 존중을 표했으리라...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가 태어나시고 발에 키스를 받는 모습도,
성 라비니우스의 순교의 모습도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었다.
죽임을 당하는 성자와, 혀를 뽑히는 개와 공포에 질린 말과 주변의 천사와 군인들까지, 이 한장면이 보여주는 혼돈의 모습은 그림의 잔인성과는 별개로 너무나 뛰어나다.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와 성 프란시스의 중재가 악마의 분노를 억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스토리는 처음 들어봐서 생소하다.
다른 면에도 3점의 종교화가 있었는데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인, 제자, 천사의 모습과
가장 보편적 소재인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성모승천의 모습이 중앙에 자리잡고,
드디어 성모마리아의 대관식이 펼쳐졌다.
각각 예수와 하나님의 모습으로 성모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모습인데 주변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와 아기천사들의 오종종한 모습이 자칫 두렵기도 무겁기도 했던 이 방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1600여년 당시 회화가 종교와 문화에 지대한 역할과 비중을 차지한 시대라 할 지라도 이런 대작을 한편도 아니고 십여점을 일관성있게 기획하고 실행해 낸 수준은 실로 놀랍다. 게다가 대작일수록 디테일이 엉기기 마련인데 가까이 들여다 봐도 붓질 하나 허투루 한 기색 없이 너무나 완벽한 정성과 집중력을 보였다.
더불어 루벤스가 스토리를 구성하고 표현해 내는 방식이 대단히 역동적이고 에너제틱하여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속 장면이 그대로 살아 튀어나올 듯 해 여러편의 비슷비슷한 그림을 감상하는데도 지루한 종교화라기 보다 살아숨쉬는 재미있는 역사화를 보는 듯 했다.
이번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루벤스의 습작들과 종교화를 대거 본후 렘브란트와 비교해 다소 그 위상이 떨어진다 생각했던 나의 판단을 수정했다. 렘브란트가 빛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탁월한 작가군에 속하다 보니 그 명성이 루벤스보다 한발 앞선다 생각했는데, 그림의 역동성과 스토리 전달력에 있어서 루벤스는 렘브란트와 다른 괘에서 인류의 또다른 위대한 유산이었다.
하나 잊지 말고 적어두고 싶은 것은 이 미술관이 루벤스의 종교화들을 전시하는 방식이다. 아래 나무제단같은 것을 둬서 실세 교회에 둔 제단화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고급스런 디테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