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에 몇개의 이불 작품을 본 나의 작가에 대한 인상은 '불편하다, 기괴하다, 생경하다' 정도였다. 이번에 리움에서 이불작가로 기획전을 하는데 소올찍히 작가에 대한 기대보다 리움기획에 대한 믿음이 컸다.
그런데 다 보고나선 '내가 그동안 이불작가를 띄엄띄엄 봤구나, 내가 몰랐던 광활하고 깊은 세계관이 있구나'같은 자성과 감동이 왔다.
그녀는 현재 전세계적 미술 트렌드에 가장 근접한 대한민국 대표작가가 맞다.
이불: 1998년 이후
2025. 9.4 ~ 2026. 1.4
리움미술관
입구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형 우주선
타이틀의 모호함은 이 작품이 1930년대 미국 뉴저지 상공에서 폭발해 36명이 사망한 제플린 비행기를 본떠 만들었으며 인간이 '열망'하는 기술 진보는 '멸망'을 품고 있다는 양면성을 형상화했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Long Tail Halo'라는 타이틀을 갖은, 내눈엔 루브르의 '니케(Nike)', 승리의 여신을 새롭게 해석해 낸 것 처럼 보이는 작품을 지나,
1층 블랙박스 구역으로 올라가면 맨 앞에 <오바드 (Aubade)>라는 타이틀의 설치작품이 나타난다(상단). 구슬전구로 lettering을 구현한 작품은 지하1층 전시장에 다른 여러 버전으로 전시되 있었다 (하단 2개의 작품).
우주선기지를 닮기도 전신주들을 닮기도 한 작품은 판문점 초소의 폐자재를 활용해 만들었다 한다.
리움 멤버십을 가지고 있어 n차 관람을 했는데 처음엔 아니더니 현재는 블랙박스의 작품들은 사진촬영이 금지되 있었다. (멤버십 프리뷰때 찍은 것)
강렬하게 빛을 반사나는 거울재질 위에 전구까지 한껏 켜놨으니 열로 빛으로 공간은 화려해졌다. 그 위에 에일리언을 닮기도 열에 반사된 아지랭이 같기도 한 설치물들 때문에 공간은 화려함 이상의 기괴함과 독특한 아우라를 뿜었다.
외형은 메마른 땅에 거대한 생물체 처럼 건조한 기운을 내뿜고 있고 내부는 조각난 거울들이 사방으로 서로를 비추는 독특한 공간이 펼쳐지는 작품.
<수트레인>과 비슷한 맥락의 공간작품인 <비아 네가티바>도 가볍게는 재밌는 체험작품이지만 공간이 주는 묵직함과 아우라는 내가 잡아내지 못한 미지의 감성을 깨어나게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무엇이 있다.
반사되는 재질이 아니라면 반타블랙처럼 빛을 흡수할 듯한 블랙의 <벙커>라는 작품.
우주와 심해를 연상케 했다.
같은 맥락의 블랙의 <천지>는 반사는 시킬지언정 투과는 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닌 작품처럼 깊디 깊은 심연같다.
작가가 사랑하는 블랙과 형태와 재질들이 총망라되 이 작품들 하나하나가 은유하고 상징하는 그 난해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접하고 느끼고 감각하는 것만으로 충만한 기분이 든다.
이불의 조각작품, 설치작품들 외에 많은 회화작품들이 있었는데 그녀의 코어는 명백하고 이를 구현해 내는 양식이 다양했다.
바위 위로 눈물이 흐르는 듯한 작품과
후배가 눈물을 흘렸다는 작품.
나중에 알고 보니 세월호를 표현한 것이었다.
헐떡이는 혀가(숨이) 고작 가벼운 천에 막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답답함이 보였다.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각종 소재도 가슴을 턱 막히게 한다.
자개를 회화로 활용해서 이색적이고 아름답다 느껴버렸는데 이 작품이 이런걸 느끼라고 만든 것은 아닐꺼라.. 무엇일까.. 두려웠다.
<스케일 오브 텅>과 <무제 (취약할 의향)> 그리고 이 <티탄> 작품은 지상층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주위에 나란히 배치되 있었다. 머리에 둔탁하고 길쭉한 무언가가 관통한 타이탄은 신화속 거인의 모습이 아닌 왜소한 아이의 모습이라 세월호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인 양 마음이 아린다.
이불의 전시는 무언가 끊임없이 사고를 해야한다. 그래서 의미있다. 그냥 봐도 미학적으로 톡특한 지점에 서있기도 하다.
리움은 가까우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다시금 찾아 찬찬히 작품의 맥락을 살펴야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