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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1998년 이후 _ 리움

by 미술관옆산책로

그전에 몇개의 이불 작품을 본 나의 작가에 대한 인상은 '불편하다, 기괴하다, 생경하다' 정도였다. 이번에 리움에서 이불작가로 기획전을 하는데 소올찍히 작가에 대한 기대보다 리움기획에 대한 믿음이 컸다.


그런데 다 보고나선 '내가 그동안 이불작가를 띄엄띄엄 봤구나, 내가 몰랐던 광활하고 깊은 세계관이 있구나'같은 자성과 감동이 왔다.


그녀는 현재 전세계적 미술 트렌드에 가장 근접한 대한민국 대표작가가 맞다.


이불: 1998년 이후
2025. 9.4 ~ 2026. 1.4
리움미술관


<취약할 의향 - 메탈라이즈드 벌룬> 2015~2016 / 2020

입구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형 우주선


타이틀의 모호함은 이 작품이 1930년대 미국 뉴저지 상공에서 폭발해 36명이 사망한 제플린 비행기를 본떠 만들었으며 인간이 '열망'하는 기술 진보는 '멸망'을 품고 있다는 양면성을 형상화했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롱 테일 헤일로: CTCS #1> 2024

'Long Tail Halo'라는 타이틀을 갖은, 내눈엔 루브르의 '니케(Nike)', 승리의 여신을 새롭게 해석해 낸 것 처럼 보이는 작품을 지나,


<오바드>
<오바드 V>

1층 블랙박스 구역으로 올라가면 맨 앞에 <오바드 (Aubade)>라는 타이틀의 설치작품이 나타난다(상단). 구슬전구로 lettering을 구현한 작품은 지하1층 전시장에 다른 여러 버전으로 전시되 있었다 (하단 2개의 작품).


우주선기지를 닮기도 전신주들을 닮기도 한 작품은 판문점 초소의 폐자재를 활용해 만들었다 한다.


<태양의 도시 II>

리움 멤버십을 가지고 있어 n차 관람을 했는데 처음엔 아니더니 현재는 블랙박스의 작품들은 사진촬영이 금지되 있었다. (멤버십 프리뷰때 찍은 것)


강렬하게 빛을 반사나는 거울재질 위에 전구까지 한껏 켜놨으니 열로 빛으로 공간은 화려해졌다. 그 위에 에일리언을 닮기도 열에 반사된 아지랭이 같기도 한 설치물들 때문에 공간은 화려함 이상의 기괴함과 독특한 아우라를 뿜었다.


<수트레인>

외형은 메마른 땅에 거대한 생물체 처럼 건조한 기운을 내뿜고 있고 내부는 조각난 거울들이 사방으로 서로를 비추는 독특한 공간이 펼쳐지는 작품.


<비아 네가티바>

<수트레인>과 비슷한 맥락의 공간작품인 <비아 네가티바>도 가볍게는 재밌는 체험작품이지만 공간이 주는 묵직함과 아우라는 내가 잡아내지 못한 미지의 감성을 깨어나게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무엇이 있다.


<벙커 (M. 바흐친)>

반사되는 재질이 아니라면 반타블랙처럼 빛을 흡수할 듯한 블랙의 <벙커>라는 작품.

우주와 심해를 연상케 했다.


<천지 (전시버전)>

같은 맥락의 블랙의 <천지>는 반사는 시킬지언정 투과는 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닌 작품처럼 깊디 깊은 심연같다.


<해빙 <다카키 마사오)>
<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형식적인 감정이 밀려온다)>
<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

작가가 사랑하는 블랙과 형태와 재질들이 총망라되 이 작품들 하나하나가 은유하고 상징하는 그 난해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접하고 느끼고 감각하는 것만으로 충만한 기분이 든다.


<몽그랑레시: 이상의 초상>
<퍼듀> 시리즈

이불의 조각작품, 설치작품들 외에 많은 회화작품들이 있었는데 그녀의 코어는 명백하고 이를 구현해 내는 양식이 다양했다.


<몽그랑레시: 바위에 흐느끼다>

바위 위로 눈물이 흐르는 듯한 작품과


<스케일 오브 텅 ( Scale of Tonque)>

후배가 눈물을 흘렸다는 작품.

나중에 알고 보니 세월호를 표현한 것이었다.


헐떡이는 혀가(숨이) 고작 가벼운 천에 막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답답함이 보였다.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각종 소재도 가슴을 턱 막히게 한다.


<무제: 취약할 의향 - 벨벳 #12)>
<무제 (취약할 의향 - 벨벳 #15)>

자개를 회화로 활용해서 이색적이고 아름답다 느껴버렸는데 이 작품이 이런걸 느끼라고 만든 것은 아닐꺼라.. 무엇일까.. 두려웠다.


<티탄 (Titan)>

<스케일 오브 텅>과 <무제 (취약할 의향)> 그리고 이 <티탄> 작품은 지상층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주위에 나란히 배치되 있었다. 머리에 둔탁하고 길쭉한 무언가가 관통한 타이탄은 신화속 거인의 모습이 아닌 왜소한 아이의 모습이라 세월호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인 양 마음이 아린다.


이불의 전시는 무언가 끊임없이 사고를 해야한다. 그래서 의미있다. 그냥 봐도 미학적으로 톡특한 지점에 서있기도 하다.


리움은 가까우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다시금 찾아 찬찬히 작품의 맥락을 살펴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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