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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라리오 뮤지엄

공간의 독특함으로 전시가 규정되어 지는 곳

by 미술관옆산책로

[22.11.11 발행]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이렇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처음이다. 프란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전을 볼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따뜻한 11월인데, 왜 나는 더 없이 스산하고 서늘한 느낌이 든 거지...


천천히 계동 앞길을 걸어 나오며 드는 결론은


공간이었다.


좁고 길거나, 작고 낮거나, 어둡고 적막한

그 공간들이 주는 옥조여 오는 감각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거기에 책으로 첨 접할 때도 이런 예술 세계가 있네... 기괴해 했던 마크퀸의 두상을 갑자기 현실에서 맞닥뜨려서 인 것 같다.




입구에 있던 백남준의 작품은 맛뵈기였고,

바로 다음에 나온건 인간 통조림.


하아...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불편한 건 맞잖아요...


(작가님께 화내는거 아니예요, 그 불편감이 의도였을 거고 나는 의도대로 느끼는 거고...)


SE-31927af3-635b-4c1c-885d-d97ea2e9b1a0.jpg?type=w1 이동욱 <세일러> 2004


앤디워홀은 작가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내려다 보고 있다. <놀라고 있는 앤디워홀>이 타이틀인데, 사진 아니고 그림이다. 워홀의 눈동자나 한올한올 섬세한 머리카락까지 작품으로는 대단한데 나도 놀래기는 마찬가지...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서 더 놀래버렸던...


내가 이렇게 새가슴이던가... 내가 놀랜 거에 놀랜 그 분께 죄송;;


20221106_121225.jpg?type=w1 왼쪽벽은 강형구 <놀라고 있는 앤디워홀> 2010


워홀 뒤로는 냉장고를 활용한 작품인데 아래 쥐들 정도는 애교. 디테일에 방점을 두지 않은 작가 덕(?)에 이건 놀래지 않았다.


20221106_121207.jpg?type=w1 씨 킴 <무제> 2013, <꿈> 2016, 쥐> 2018



오래된 건물이 컨셉이라 이곳에 놓인 사진 초상들이 공간의 힘을 받아 이질적이면서 독특해 졌다.


20221106_121609.jpg?type=w1 신디 셔먼 <무제> 2000


사람을 널어놓은 이 작품은 좁은 공간에 딱 한 작품이 놓여 있어, 그 방 안에 들어가 작품을 마주하는 동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나무에 널어 까마귀들이 먹도록 한다는 어느 나라의 장례 풍습이 실제로 이런 모습일 것 같아 숭고해 지는 마음도 같이 들었고.


20221106_121835.jpg?type=w1 류 인 <밤_혼 Night_Soul> 1990
20221106_121855.jpg?type=w1 류인 <밤 - 혼 Night-Soul> 1990



미국 경찰들이 사격연습을 할 때 과녁판으로 사용하는 젊은 범죄자들의 사진을 이용했다는 작품. 차마 이 얼굴을 꽃으로라도 못 때릴 것 같은데 총을 쏘는 훈련을 해야 되는 잔인함이라니...


20221106_122555.jpg?type=w1 소피 칼 <과녁의 중심/타켓> 2003



여자와 여러 동물들이 보기 불편한 자세들로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관람객도 느끼겠지...


SE-e9cb59e5-9b0c-4054-9c04-8333374bce82.jpg?type=w1 키키 스미스 <여자와 곰, 여자와 개, 여자와 사자, 여자와 늑대, 여자와 뱀, 여자와 뱀> 2003



미술가 뿐만 아니라 인류의 조상이기도 한 이 분들은 왜 이곳에선 무섭다고 느껴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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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_124404.jpg?type=w1
20221106_124235.jpg?type=w1 요르그 임멘도르프 <미술가의 조상> 시리즈 2002



그러다 갑자기 키스해링이 나타나서 깜짝 놀랬다.


뉴욕 모마에서 키스해링을 못 보고 나와 내내 아쉬웠는데 아라리오에 그의 인터뷰도 있고, 그의 회화작품, 조각작품 들이 여러점 있었다. 보통의 전시관이었다면 카우스의 작품을 보는 것 처럼 뽀둥하고 보송보송한 느낌이 들 것인데,


오늘은 내가 쫌 그래..

이해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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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_122951.jpg?type=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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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_123117.jpg?type=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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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면서 그냥 초큼 심장이 콩콩 거리다, 갑자기 마크퀸이 나타나서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이게 여기 있다고?


헉...


그의 유명한 <Self> 작품이다.


마크퀸은 정기적으로 본인의 피를 뽑아 본인의 두상을 만든다. 일종의 자소상이다.


얼마나 정직한가

자소상을 만들면서 찰흙도 청동도 나무도 아닌 본인의 피를 소재로 쓴다는 게


내 피가 곧 나이고, 내 얼굴이 또 나인 것

피와 얼굴..

나 그 차체다


심장이 내려 앉은건 내려 앉은 것이고 좀 더 작품을 잘 보기 위해 최대한 몸을 가까이 했다. 갑자기 눈이라도 뜰까 무서운데, 또 눈 크게 뜨고 이 순간의 감각을 잘 기억해야지 용기도 냈다.


영하 18도의 온도에

살아있는 자의 피로 만든

그 자의 자소상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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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5fb4d1f3-5d23-4969-977f-f0e407750cda.jpg?type=w1



심장은 배 밖으로 튀어 나와 있는데, 발걸음은 계속 아래로 아래로 향하다 마주한 조각상.


사랑하는 이들의 키스 장면으로 여성의 비율은 어딘지 안 맞고 팔은 사라졌다.


이것도 마크퀸의 작품으로 육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을 하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조각해 현실에서는 장애인과 거리를 두면서도 조각상들의 손상된 육체는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을 지적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니 안 맞다고 생각한 비율과 팔 없음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인 것.


한 방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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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리오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이 사슴을 보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어디선가 이 이쁜 사슴을 보고, 이 작품이 아라리오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날을 별러 오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사슴조차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크리스탈 사슴이 아니라 이 안에 박제된 사슴이 있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하아...

쉽게 놔주질 않는구나


사체를 덮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각양각색의 크리스탈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 인가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의 코헤이 나와 버전인 것


SE-ffe6f462-a176-4707-b5a7-ce551182da91.jpg?type=w1 코헤이 나와 <픽셀 - 더블 디어 #7> 2013


이 외에도 훨씬 많은 작품이 있다. 각각 보면 또 그렇게 기괴하지도 않을 것인데, 이 공간 안에 이런 작품들이 모여 있다 보니 대단히 기괴하고, 독특하며, 어떤 면에선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내 무섭다 했지만 다른 전시작품으로 바뀌면 다시 온다, 꼭!!!


이 느낌, 이 정서, 이 감정

아라리오가 아니면 느끼지 못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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