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독특함으로 전시가 규정되어 지는 곳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이렇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처음이다. 프란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전을 볼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따뜻한 11월인데, 왜 나는 더 없이 스산하고 서늘한 느낌이 든 거지...
천천히 계동 앞길을 걸어 나오며 드는 결론은
공간이었다.
좁고 길거나, 작고 낮거나, 어둡고 적막한
그 공간들이 주는 옥조여 오는 감각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거기에 책으로 첨 접할 때도 이런 예술 세계가 있네... 기괴해 했던 마크퀸의 두상을 갑자기 현실에서 맞닥뜨려서 인 것 같다.
입구에 있던 백남준의 작품은 맛뵈기였고,
바로 다음에 나온건 인간 통조림.
하아...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불편한 건 맞잖아요...
(작가님께 화내는거 아니예요, 그 불편감이 의도였을 거고 나는 의도대로 느끼는 거고...)
앤디워홀은 작가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내려다 보고 있다. <놀라고 있는 앤디워홀>이 타이틀인데, 사진 아니고 그림이다. 워홀의 눈동자나 한올한올 섬세한 머리카락까지 작품으로는 대단한데 나도 놀래기는 마찬가지...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서 더 놀래버렸던...
내가 이렇게 새가슴이던가... 내가 놀랜 거에 놀랜 그 분께 죄송;;
워홀 뒤로는 냉장고를 활용한 작품인데 아래 쥐들 정도는 애교. 디테일에 방점을 두지 않은 작가 덕(?)에 이건 놀래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이 컨셉이라 이곳에 놓인 사진 초상들이 공간의 힘을 받아 이질적이면서 독특해 졌다.
사람을 널어놓은 이 작품은 좁은 공간에 딱 한 작품이 놓여 있어, 그 방 안에 들어가 작품을 마주하는 동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나무에 널어 까마귀들이 먹도록 한다는 어느 나라의 장례 풍습이 실제로 이런 모습일 것 같아 숭고해 지는 마음도 같이 들었고.
미국 경찰들이 사격연습을 할 때 과녁판으로 사용하는 젊은 범죄자들의 사진을 이용했다는 작품. 차마 이 얼굴을 꽃으로라도 못 때릴 것 같은데 총을 쏘는 훈련을 해야 되는 잔인함이라니...
여자와 여러 동물들이 보기 불편한 자세들로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관람객도 느끼겠지...
미술가 뿐만 아니라 인류의 조상이기도 한 이 분들은 왜 이곳에선 무섭다고 느껴지는 거지...
그러다 갑자기 키스해링이 나타나서 깜짝 놀랬다.
뉴욕 모마에서 키스해링을 못 보고 나와 내내 아쉬웠는데 아라리오에 그의 인터뷰도 있고, 그의 회화작품, 조각작품 들이 여러점 있었다. 보통의 전시관이었다면 카우스의 작품을 보는 것 처럼 뽀둥하고 보송보송한 느낌이 들 것인데,
오늘은 내가 쫌 그래..
이해해 줘...
여기까지 오면서 그냥 초큼 심장이 콩콩 거리다, 갑자기 마크퀸이 나타나서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이게 여기 있다고?
헉...
그의 유명한 <Self> 작품이다.
마크퀸은 정기적으로 본인의 피를 뽑아 본인의 두상을 만든다. 일종의 자소상이다.
얼마나 정직한가
자소상을 만들면서 찰흙도 청동도 나무도 아닌 본인의 피를 소재로 쓴다는 게
내 피가 곧 나이고, 내 얼굴이 또 나인 것
피와 얼굴..
나 그 차체다
심장이 내려 앉은건 내려 앉은 것이고 좀 더 작품을 잘 보기 위해 최대한 몸을 가까이 했다. 갑자기 눈이라도 뜰까 무서운데, 또 눈 크게 뜨고 이 순간의 감각을 잘 기억해야지 용기도 냈다.
영하 18도의 온도에
살아있는 자의 피로 만든
그 자의 자소상
쩐다...
심장은 배 밖으로 튀어 나와 있는데, 발걸음은 계속 아래로 아래로 향하다 마주한 조각상.
사랑하는 이들의 키스 장면으로 여성의 비율은 어딘지 안 맞고 팔은 사라졌다.
이것도 마크퀸의 작품으로 육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을 하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조각해 현실에서는 장애인과 거리를 두면서도 조각상들의 손상된 육체는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을 지적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니 안 맞다고 생각한 비율과 팔 없음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인 것.
한 방 맞았다.
아리리오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이 사슴을 보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어디선가 이 이쁜 사슴을 보고, 이 작품이 아라리오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날을 별러 오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사슴조차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크리스탈 사슴이 아니라 이 안에 박제된 사슴이 있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하아...
쉽게 놔주질 않는구나
사체를 덮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각양각색의 크리스탈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 인가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의 코헤이 나와 버전인 것
이 외에도 훨씬 많은 작품이 있다. 각각 보면 또 그렇게 기괴하지도 않을 것인데, 이 공간 안에 이런 작품들이 모여 있다 보니 대단히 기괴하고, 독특하며, 어떤 면에선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내 무섭다 했지만 다른 전시작품으로 바뀌면 다시 온다, 꼭!!!
이 느낌, 이 정서, 이 감정
아라리오가 아니면 느끼지 못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