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그림에 대한 책들을 보다 보면 우리 작품의 원형처럼 자주 거론되는 작품들의 소재가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인 경우가 많다. 왜 북경이 아니고 대만의 미술관이 더 많이 거론될까 생각해 보면, 여러 이유와 맥락이 있겠지만 우선 떠오른 것은 북경은 분서갱유의 사건을 겪으면서 오래된 책과 미술품이 상당량 불에 타 없어졌겠다, 싶었다.
무수한 해외 도시들을 출장으로 여행으로 다니면서 유독 연이 없던 대만을 이 미술관 하나 때문에 선택했다. 게다가 세계5대 박물관이라고도 하는 것 같고.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https://www.npm.gov.tw/index.aspx?l=5
고궁박물원은 잘 정비된 타이페이 도시 끝자락에 위치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될 정도로 대중교통이 수월하고 내부에는 70만여점에 이르는 중국본토에서 가져온 유물들과 대만자체의 유물들이 조화롭게 전시되 있었다.
소장품이 많아 총 3편에 걸쳐 포스팅을 할 예정인데 (회화 편, 도자기 편, 공예품 편) 원래 목적이 회화였던 만큼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 전에, 작품들의 메인 설명판이 한자이고 영어는 보조수단인데, 영어설명이 작품 원래의 타이틀과 내용을 담기에 한계가 있어 한자들을 찾아가며 포스팅 하는 것에 꽤 시간이 걸렸다 (물론 Gemini의 도움을 받았다;;). 거기에 한자 자체가 읽는 법과 쓰는 법이 달라 이를 어느 한쪽으로 매칭하느라 또 애를 먹었고. 이런 수고를 감내했어도 한국어나 영어처럼 정확하게 텍스트들을 옮겨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죽계곡의 여름을 그린 그림으로 작품이 선명하고 웅장하여 좋다.
융(1744-1790)이라고 건륭제의 여섯째 아들의 작품인데 , 원명원의 비통선원에 살아서 '비통서원왕자'라는 별칭을 얻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시, 서예, 그림에 모두 능했다 하는데 이 그림만 보면 그림에 능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원근을 무시하고 모든 사물이 똑같은 무게감으로 그림 전면에 펼쳐져 이 세상같지 않은 묘연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중국의 화가들을 잘 알지 못해도 이름을 들었을 법한 마원의 작품
마원(1190- 1224)은 남송 시절 황실 시종 화가로 그의 산수화는 종종 그림의 한 구석에만 집중되 '마일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설명이 달려있는 그림으로 <선암좌월>이란 '선암의 달 위에 앉아있다'는 뜻이라 한다.
동양화는 산수화를 메인으로 자연이 주인공이라 인간은 작게 그리기 마련인데 조선에도 인간을 중히 여기는 사상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인간을 크게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강희안의 <고사관수도>가 나온 1400여년 즈음. 그런데 이 그림은 1200여년 즈음이다. 역시 우리보다 빠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이 신선이어서, 인간이 아니어서, 1200여년도에 이리 크게 그린 것은 아닐까.. 다른 가설도 생각해 본다.
미술책에서 본 적이 있는 이 그림의 원본을 여기서 마주했다. 미술책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명확하고 표정이 재미나 오래동안 들여다 본 기억이다.
겁에 질린 환자와 이런 환자가 익숙한 무심한 의사와 조수, 그 뒤로 두눈으로는 못보겠어서 한눈 질끈 감은 아내와 이 모든 상황이 두려워 아예 어른 뒤로 몸을 숨기나 호기심은 참을 수 없어 빼꼼히 고개를 내민 아이까지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역할과 캐릭터를 부여한 화가의 솜씨가 빼어나다.
꽃, 풀, 곤충, 나비의 4폭 병풍그림
꽃과 풀들이 아름다운데 그 아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괴석들은 더 좋았다.
이번엔 꽃과 과일의 4폭 병풍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그림 전체가 안정감있고 포근하다. 조선의 그림들과 차이가 없으니 우리 그림의 수준이 어떠했는지 실로 짐작이 갔다.
단오절에 행해지는 물놀이 풍습을 그린 그림인데 용모양 배를 타고 화려한 수상 유희를 즐겼다고 한다. 그림의 디테일이 놀라워 크게 확대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의 거북선과 중국 용선의 외양이 참으로 비슷하다.
이 그림도 단오절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화첩 중 일부라고 하며 '단양'은 '단오'를 의미한다고 한다. 현대의 단오는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데 우리 조상도 그러했듯 중국에서도 단오를 큰 명절로 삼은 듯하다.
우리 이상직선생의 <송하보월도>를 닮아 한참을 멈춰 감상했다. 최근 국중박에서 조선전기의 그림을 모아 <<새나라 새미술>>전을 했을때 <송하보월도>가 나왔는데 소나무의 기상이 너무나 웅비하여 두번을 가서 보고 또 봤었다.
우리보다 300년정도 앞선 그림이니 이들이 원형일 것이고 원형같은 이 그림의 힘이 너무 좋아 이번에도 보고 또 보았다.
300년이나 앞선 그림인데 우리보다 보존상태가 좋고 그림속 인물들, 머리끝이 잘려나간 소나무, 그림 앞쪽의 해와 뒤쪽의 해를 닮은 붉은 달까지 모두 모두 한눈에 잘 담았다.
설경 속 인물들의 사적을 담은 그림으로 고종(= 청 건륭제)이 직접 제사를 지었다는 그림이라 한다.
소위 설중매, 눈속의 매화를 그린 그림이다.
우리 그림중에도 이와 거의 유사한 그림이 있는데...
'동림 정원'이라는 이 그림을 오른쪽 부터 왼쪽으로 쭉 훑으니 그림이 하고자 하는 따사로운 이야기와 그림의 부드러운 무드가 나를 휘감았다.
마원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곽희'의 작품
'관산의 봄 눈'이란 뜻으로 관산은 대만의 산맥 이름이라고 한다.
'대만에 이리도 험준하고 웅혼한 산이 있었구나'
가도가도 끝이 없고 올라도 올라도 닿지 않을 빽빽한 공간감이 일품인 작품이다.
대만 고궁박물원에 가려고 했을 때, 마음속에 담은 단 하나의 작품이 곽희의 <조춘도>였다. 미술책을 보다가 이 작품을 보고, 실제로 보고 싶다.. 생각한 것이 대만까지 가게 한 원동력이었으니까... 지하1층부터 4층까지 거대한 미술관을 다 보고 <조춘도>에 대한 대형 실감영상까지 보고도 혹시나 원화는 어딘가 깊은 내실에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1000년전 그림이 혹시나 너무도 수월하게 현재의 대중들에 노출되었더라면 (그래준다면 고맙다만) 나라도 우리 문화재라면 반대할 것을 다른 나라의 문화재에 놓고는 다른 잣대를 들이댔나 보다.
아쉽지만 그림의 사이사이 새로운 해석들과 상황들을 창조해 놓은 긴 영상으로 대리만족을 했다. 길지만 오래도록 보았고 이틀 동안 이곳을 방문하며 발 닿을 때마다 보았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그림, 따뜻함과 메마름이 조화로운 그림, 그림의 기운이 그림 밖까지 뚫고 나오는 그림.
곽희의 <조춘도>는 오래도록 두고두고 볼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