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김선욱 피아니스트
왜 베를린필이 세계 최고인지를 증명한 연주
그리고 감동적인 관객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가을 내한 중 3번째, 베를린필의 공연을 보았다. 다음 주에 빈필을 예약해 두어 '단언컨대'라고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왜 베를린필이 베를린필인지, 스스로 증명한 위대한 공연이었다.
키릴 페트렌코 & 베를린 필하모닉
Kirill Petrenko & Berliner Philharmonika
2025. 11.9 (일) 17:00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
슈만 만프레드 서곡
슈만 피아노협주곡 * 피아니스트 김선욱
브람스 교향곡1번
나는 버르토크의 신나는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보다 정통 클래식의 계보를 잇는 슈만과 브람스의 곡을 듣고 싶었고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는 보스톤심포니의 연주로 베를린콘체르트하우스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어 세번째날 공연을 선택했다. 물론 김선욱의 연주를 직접들을 수 있는 것도 포인트다.
<만프레드 서곡>은 스무스하게 흘렀고 두번째 곡인 슈만의 피협을 연주하기 위해 김선욱이 등장했다. 경기필의 지휘자로만 보다 연주를 직접하는 것은 처음 보는데 김선욱은 몸을 크게 쓰는 연주자였다. 그것이 퍼포먼스의 일부로 공연의 흡인력을 끌어 올렸다
김선욱이 오케스트라와 주고 받는 테크닉이 아주 좋았는데 플루트와 오보에가 그랬고, 특히나 클라리넷 주자와의 주고 받음은 더할나위 없어 듣는 내내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특이했던 것은 베를린필 단원들은 피아니스트가 솔로 연주를 할 때 모두가 다 집중해서 연주자를 쳐다보더라
다른 오케스트라도 그랬던가...
이런 모습을 베를린필에서 처음 인지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정말 너무 좋았다.
피아노가 홀로 연주를 하는 순간, 본인들도 연주를 하는 중이고 곧 또 연주에 들어갈 꺼지만 지금 만큼은 이 훌륭한 연주자에 온 마음을 담아 응원과 존경을 보내는 듯 공연장은 그 태도와 마음으로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참.. 좋구나...
김선욱도 자기 연주를 하지 않을 때 고개를 들어 천천히 오랫동안 오케스트라를 바라보았다. 본인이 지휘자여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더 관심이 갈수도, 순수한 즐김과 애정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피아노와 지휘 둘다 가능한 김선욱.
정명훈 이후 이런 독보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많지 않은데, 여기에 베를린필 같은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협연 커리어를 쌓음으로써 한단계 도약한 느낌이다. 앞으로도 그가 갈 긴긴 음악 여정에 함께 해야지...
김선욱의 연주로 슈만의 피협도 이제 마이픽에 넣을 수 있겠다.
올초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정명훈의 지휘로 롯데콘서트홀에서 2번에 걸쳐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는 3번과 4번을 들었었다. 이번엔 키릴페트렌코와 베를린필의 연주로 교향곡 1번이다.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캐치하지 못했던 3악장, 거의 바이올린 독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훌륭했고, 팀파니가 전악장에 걸쳐 시종일관 베이스 리듬을 두텁게 깔아주는 부분이 좋았다. 바순 옆 빨갛고 두겹의 큰 관악기가 신기하고 각 관악기 리드들의 독주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이번에 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베토벤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베토벤 교향곡 9번 이후 그를 계승하기 위한 브람스의 고군분투끝에 나온 베토벤과 브람스의 승리의 노래였다. 그리하여 브람스는 총 4곡의 교향곡을 썼지만 1번부터 완성형이고, 1번이 어떤 면에선 가장 위대한 곡이었다.
베를린필의 이번 레퍼토리도 좋았다. 슈만에서 브람스로 내려오는 그래서 어찌보면 한곡 같은 그 흐름이 유려했다.
슈만과 클라라, 클라라와 브람스, 슈만과 브람스.
이제 이 관계들이 가십처럼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켜켜이 쌓인 신뢰이자 존경이고 사랑이었다.
키릴 페트렌코의 지휘는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다. 특별한 지휘의 패턴이 보이는 것은 아니나 그럼으로 올곳이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의 연주에 집중하게 하는 진정한 지휘자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 더 말을 보탤 것이 없다.
그리고 오늘 가장 감동적이고 가슴이 웅장해진 광경
공연이 끝나고 보통처럼, 아니 보통보다 더욱 길고 강하게 나오는 관객의 박수와 환호에 호응하며 지휘자는 들락달락 거리며 인사를 하고 악장과 리더들과 단원들에 꼼꼼히 박수를 보내고, 이걸 여러번 하고, 또 하고, 더 하고 나서, 정말로 이젠 지휘자가 떠나고 나서, 보통은 관객과 단원이 한꺼번에 일어나 자리를 뜨기 마련인데, 오늘의 공연이 너무나 훌륭했던 관객들이 단원들이 모두 다 나가도록 끊임없이 박수를 치는 거다. 처음엔 좀 박수가 길다 생각했는데, 관객이 다 빠져나가고 마지막 콘트라베이스파트가 나갈 때까지 누군가 어느 관객석에서는 계속 큰 박수소리가 났다.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당신들이 이토록 훌륭한 연주를 해주었으니 관객인 나도 끝에 끝까지 박수로 화답해 주고 싶어
그 마음이 가 닿은 곳이 바로 오늘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