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연말연초 가장 핫했던 전시가 아닐까 한다. 작년 가을 APEC정상회담 때문에 폭발적으로 인기가 늘어 올 2/28일까지 전시 일정도 늘렸다.
2023년 경주에 방문했다가 구본창의 신라유물로 작업한 대단한 사진전을 본 적이 있는데 - 정말 대단한 사진전이었다! - 이때 두어점 금관이 나왔었다. 이것보다 더 뭐가 나올까 싶어 굳이 경주까지 갈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만 맞춤하게 팀에서 경주, 부산, 통영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고 경주 프로젝트엔 이 <신라금관전>의 도슨트 프로그램이 포함되 있어 경주에 출장을 간김에 도슨트프로그램에 조인했다. 운좋게 걸렸지만 안봤으면 나중에라도 너무 아쉬웠겠다, 싶은 전시
신라금관, 권력과 위신 展
2025. 10. 28 ~ 2026. 2. 28 (연장)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2월 초에 갔으니 전시는 이제 2주정도 남은 터였다. 볼 사람은 다 봤을 전시였어도 사람들은 인산인해. 딱 6점의 신라 금관의 화제성이 대단했다.
입구에 자그마하게 뒤에 있을 위대한 전시들의 맛보기 처럼 전시되 있던 <교동금관>
자그마한 크기때문에 아이가 썼을 것이라 추정된다는데 그래서 인지 왕이나 왕비가 썼을 크고 높고 화려한 금관대비 가장 마음에 남았다.
전시관 중앙에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360도로 볼 수 있게 전시된 <황남대총 북분 금관>
왕관 뒤쪽에 사슴모양, 새모양,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장식이 독특한 미감을 자랑한다. 곱은 옥을 사용해 태아 같기도 완두콩 같기도 한 장식이 표준처럼 여러 금관에 공통으로 보이는데 다산과 번영을 의미했을까.. 생각한다.
3개의 금관이 나란히 벽안쪽에 전시되 있다.
<서봉총>
금관 - 보물, 6세기, 삼국시대(신라), 높이 35.0cm 머리띠 길이 58.1cm 무게 803.3g 순도 19.3K
금허리띠 - 보물, 길이 116cm
<금관총>
금관 - 국보, 5세기, 삼국시대(신라), 높이 27.7cm 머리띠 길이 57cm 무게 692g 순도 20.5K
금허리띠 - 국보, 길이 131.4cm
<금령총>
금관 - 보물, 6세기, 삼국시대(신라), 높이 27.0cm 머리띠 길이 53.7cm 무게 356g 순도 19.9K
금허리띠 - 보물, 길이 74.0cm
순서대로 보물, 국보, 보물이다. 첫번째 <서봉총>의 금관은 전시장 중앙의 <황남대총 북분 금관>과 규모는 작으나 상당히 비슷했고, 두번째 <금관총>이 이 세개의 금관 중 가장 귀한 유물로 국보다. 개인적으로도 수직으로 쭉쭉 뻗은 <금관총>의 형식미가 화려한데 질박하고 단순하면서도 견고해 보여 좋았다. 세번째 <금령총>의 밖으로 살짝 퍼진 모습은 그 나름으로 개성적이고.
세 금관을 연달아 들여다 보니 중앙에 '뫼산(山)'으로도 해석될 수 있으나 '임금왕(王)'임이 더욱 타당할 디자인이 선명했다.
중간에 가이드님이 "신라 금관이 크기나 규모로 보았을 때 살아계실 때의 왕관이 아니라 죽은 후 데스마스크라는 썰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했다. 이 세개의 금관 중 첫번째인 <서봉총> 왕관에서 본 왕관 상단 곡선 띠의 용도가 머리가 왕관의 끝을 넘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 아닐까 추론하여 나는 "왕관"이라 생각한다고, 그 근거로 이 추론을 이야기 하니 "맞다"고 칭찬(?)하셨다. 다른 이유를 더 들어 데스마스크가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었는데 내 눈썰미에 도취해 안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남 ㅎ
이 허리띠는 다른 허리띠 들과 함께 정면벽에 걸려 전시되었는데 전시장 중간 <황남대총 북분 금관>에서 출토되 해당 금관과 세트를 이루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황남대총의 북분에서 발굴된 위위 금허리띠보다 남분에서 출토된 이 허리띠가 훨씬 소박한데도 단정한 원형미가 있었다.
또 다른 하일라이트인 <천마총>의 금관과 금허리띠, 그리고 부대 장식품들
구본창작가의 사진에서 보았던 금제모관(Gold Crown Cap), 금제관식(Gold Crown Ornament)도 실제 이 모든 세트 안에 함께 있으니 그 용도가 어떠했는지 이제야 할 것 같다. 더하여 신라왕실의 권위와 위세도 한눈에 보인다.
왕관과 금허리띠를 하고 모든 장식물을 한몸에 두른 후 백성앞에 나선 모습에서 어찌 한나라 왕과 왕비의 위엄이 살지 않을까...
전시장에선 읽지 못하고 이제 사진 속 글을 읽다보니 왕비는 금관을 왕은 금동관을 쓰기도 했나 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닌데 글에서 이야기 하는 <황남대총> 케이스에선 북분은 왕비의 것, 남분이 왕의 것으로 사료되는데 북분에서 금관이 토출된 것으로 봐선 왕이 신분이 낮았거나 살해당한 왕이어서 금관을 쓰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왕비는 더 화려한 금관을 썼을 수 있다 한다.
설명판을 읽기 전 <황남대총> 금관의 나무가지 모양, 새 모양,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이 남성보다는 여성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곱은옥 장식이 태아나 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담 남성보다는 여성에 좀 더 어울리며 유독 이 왕관에선 여성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곱은옥은 왕와 왕비의 금관 어디에나 보일지라도), 이 무덤이 여왕의 무덤이고 여왕의 금관이어서 였나 보다. 작품 자체에서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즐거움이란 이럴때인가.. 싶어 기분 좋아짐
이리하면 <황남대총 북분금관>은 여왕의 것으로, <천마총 금관>은 왕의 것으로 정리되는 것인가... 다른 무덤의 것들은 주로 왕의 것일 것이나 그 또한 1500년전의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겠다.
이미 본 금관일 것일라 큰 기대 없이 출장지에서 우연히 갔다가 총6점의 신라금관 총망라편을 의미 있게 보고는 아주 마음이 흡족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