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6 발행]
RM의 10개 도슨트 작품을 제외하면 배운성의 <가족도>를 보기 위해 LACMA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그림은 그가 몸을 의탁하여 지낸 당시 자본가 백인기의 가족을 그린 그림으로, 백인기의 아들 백명곤이 유학을 떠날 때 배운성을 동행시킬 정도로 백인기의 배운성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는데, 후에 파리에 혼자 남아 백인기의 가족을 회상하여 그린 그림이다.
당시 대가족의 구성과 의복, 거주 형태등이 오롯이 잘 드러나 사료로서도 의미가 크다고 하는데 내가 이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된 건 모두 비슷비슷한 얼굴 속에 조금은 다른 얼굴로 화가 스스로를 가족도 안에 넣어 백인기의 가족이 되길 원했던 것인지 그저 관조자의 위치에서 가족을 들여다 보고 싶어했던 것인지 아리송 한 그 지점 때문이었다.
그림 왼쪽의 두루마기를 입고 서양구두를 신은 자가 배운성 자신이라고 하는데, 처음 누가 이 안에 작가가 있다고 찾아보라 했을 때 왼쪽 상단 사랑 방 안에서 홀로 있는 콧수염을 기른 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림 속의 대부분의 가족은 서로의 관계가 보이거나 기능적으로 엮여 있는데 그 만은 창안에서 창 밖의 가족을 바라보는 관찰자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추리는 보기 좋게 틀린 것이고
배운성은 모든 가족구성원이 정면을 바라보며 관객과 눈을 마주칠 때 그 가족들을 바라봄으로써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함과 동시에 가족원들과 구별 지어 냈다.
그 지점이 대단히 인간적이기도 스스로의 자존감이기도 하여 나는 배운성의 이 <가족도>가 좋았다.
그 다음으로 관심이 간 구본웅
천재시인 이상과 친구였고, 그래서 그 친구를 그린 이 그림에 나는 매료되었다.
이상은 사진으로 봤을 때도 존재감이 있었지만 구본웅이 표현한 친구 이상의 초상화를 보면서 이상을 좀 더 이해한 느낌이다.
본인은 척추 장애인, 일상어로 꼽추였던 구본웅은 부유한 가정이었어서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 시대 그의 이런 핸디캡 때문에 삶에 불편함이 있었을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런 구본웅에게서 툴루즈 로트레크와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다. 신체적으로 핸디캡이 있는 분들은 인물을 이해함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건 아닌가 싶다
로트레크가 그린 <The Bed>라는 작품을 보면 두 남녀가 세상 포근하고 평온한 잠을 자는 일상인데 알고보니 그들은 남녀가 아닌 여성-여성으로 그들의 직업은 성을 파는 여인들이었던 것이 놀람으로 다가왔었다.
그들의 고단한 삶을 깊게 관찰하고 표현해 낸 로트레크의 <The Bed>.
그리고 구본웅 본인도 주체할 수 없는 예술성이 신체적 결함과 편견에 갖혔는데 친구인 이상을 이리 표현해 냄으로써 불세출의 초상화가 탄생했다.
이 작품은 처음엔 배경지식이 전혀 없고 설명판에도 내용설명이 없어 무엇을 표현한 건지 갑자기 미로속에 턱 갇힌 느낌이었다. 그러다 해방 정국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표현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그 틀로 작품이 읽혀졌다.
작품 안의 사람들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라이나 왜설스럽지 않고,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가장 원초적인 그들의 몸으로 표현해 내었다.
중간 누군가는 서로를 뜯어 먹고 있고, 배고픈 아이는 어미에게 보채나 어미는 줄것이 없다. 죽은 아내를 기어이 데리고 가는 남편은 아내가 희망인양 결연하다.
이 시기 사람들의 다양한 목적성과 시대성을 보여준 이 작품은 우하단에서 좌상단으로 길게 올라가는 사선구도로 이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도 질서와 에너지 방향을 보여주는 듯 하다.
검은색으로 형태를 구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 불편감이 적은 분이 박고석 작가였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고.
이번에 LACMA에서 이런 풍의 그림을 마주하고도 불편감이 없다 보니 보자마자 '박고석 선생이신가...' 했다. 비슷하게 강렬한 색감에 검은색 선을 자주 쓰시는 윤중식 작가와는 또 다른 붓터치다. 아마도 소재가 달라 비슷한 화풍이어도 박고석선생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1951년이면 전쟁통인데 그 시절 우리네 동네의 모습일 것인데 부모가 없는 것인지 있는데 일을 나간 것인지 본인도 어려보이는 소녀는 더 어린 동생을 업고 누군가가 오길 기다리 듯 기찻길 옆을 서성인다.
1950년초를 대표하는 정서아닌가...
드뎌 이중섭의 엽서화를 보는구나...
벼르다 벼르다 은지화를 봤을 때의 감동보다 덜하나 그의 다른 회화 형태를 접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은지화 보다 되려 단순한 그림들이 새롭다.
김종영 미술관에서 본 반듯하고 깔끔맞은 대리석 조각작품들 외에 이런 거칠고 둔탁한 작품들도 하셨었구나...
그 대상이 조모여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권진규의 테라코타 인가.. 하고 들여다 보았는데 김종영작가님이라 '어라?' 했던 작품
반듯반듯 반질반질한 청동 작품으로 유명한 최만린 선생이 이런 작품도 했었어서 눈이 번쩍 띄였다.
여인의 몸통을 표현한 토르소인데 한국에서 쭉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7개의 엥포르멜 형식의 작품 중 하나라고 설명판에 씌여있다.
엥포르멜.. 내가 누군가에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을 그리 설명하니 무엇인지 확 느낌이 닿았다.
그외 아래 작품들만 모아도 거뜬히 히트전시를 만들수 있을 작품들을 모아봤다.
LACMA의 한국미술의 근대 <<사이의 공간>>전은 우리 작품들이 해외 주요도시에 소개된 주요한 전시였을 뿐 아니라 세계 미술계의 Guru로 성장한 RM의 도슨트가 관객의 저변을 확장시킨 기념비적 전시다.
LA현지에서도 한국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들보다 여느 미술관 처럼 그 나라 또는 외국인 관람객들이 주로 방문해 한국근대미술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 미술의 수준이 이 정도인지 미처 몰랐다가 남준이가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개척자적 마인드로 뛰고 있는 것을 보고 오히려 내가 우리 미술을 낮게 보았구나.. 반성한다.
우리 미술과 김남준,
우리 온 마음으로 계속 발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