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이틀동안 게티센터 (Getty Center)에 왔을 때는 정원이 이뻤다. 코로나 이후 첫번째 오프콘이었던 방탄의 퍼투댄 LA Sofi 공연을 직관하고는 남준이가 좋아하는 게티센터에 간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지 미술관의 미술품들은 그저 관광객 수준으로 훑어 보았다. 그림은 거들뿐, 모던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책도 읽고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미술관 담벼락에서 긴 기럭지를 무심하게 뽐낸 남준이의 사진을 떠올리며 '우리 남준이 여기서 좋았겠네...' 했다.
이후 미술에 관심이 생기고는 내가 그 때 정원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낼 일이 아니었네... 게티에 모네의 건초더미가 있었네... 현타가 왔는데, 올초 라스베거스 출장에서 돌아올 때 경유지를 일부러 LA로 선택함으로 다시 게티에 올 수 있었다. 이번엔 정원은 거들 뿐, 순전히 모네가 그리고 RM이가 홍보한 건초더미를 보기 위해서였다.
모네가 제1의 목적이었지만, 유명작품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 그것들 위주로 보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보고싶은 관을 선택하고는 그 관 안에선 순서대로 보는 루틴은 지켰다. 하여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관은 1800년대 이후가 모여있다고 표시되 있는 West Wing. 이후로 시간도 충분해 4관을 다 보았다.
웨스트윙 2층에 발을 들이자 마자 보고 싶은 작품들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왔다.
게다가 "바로 있다! <건초더미>!"
모네가 시간과 계절에 따른 빛의 변화가 사물의 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탐구하며 25작품이나 그렸다는 <건초더미>. 계절이 겨울인 것은 명확한데 그림자로 봐선 아침이거나 늦은 오후. 그 중 언제일까 조금 더 생각을 좁혀보니 이 그림이 만약 오후를 표현 한 것이면 모네는 빛을 다루던 화가라 빛과 함께 한 노을색을 날이 아무리 흐렸더라도 어느 정도 표현해 넣었을 것. 그런데 노을스러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하여 아침.
그림자의 길이로 보건데 아주 이른 아침.
맞았다!!
제목이 <Wheatstacks, Snow Effect, Morning>
그리곤 바로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새벽부터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야외로 화구를 챙겨왔을 모네. 겨울새벽이 프랑스라곤 안 추울까... 장시간 빛에 반사된 흰눈을 보면서 작품을 했을 모네. 말년의 백내장과도 다 연결되는 작품이그구나...
그리고 바로 옆에 루앙성당이 있다. 루앙성당도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이후로 두번째로 만났다.
MET의 루앙은 정확하게 정오라고 느껴졌는데, 이번엔 정오는 아닌데 언제인지 묘연하다. 생각을 채 마치지 못했는데 발길이 설명판으로 향해 가지고 설라믄 제목을 봐 버렸다.
<The Portrait of Rouen Cathedral in Morning Light>
아침시간의 루앙이구나...
정오의 루앙보다 훨씬 선명하다.
이 옆에 모네의 <포플라 나무> 까지 있었다면
그가 빛의 변화를 실험하기 위해 연작으로 그렸던 세 시리즈가 모두 게티에 있는 것인데...
그럼 대단한 Fine Line이 되는 건데...
게티재단,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의 <Sunrise>
이게 바로 모네의 인상주의이자 모두의 인상주의의 포문을 연 그 해돋이 작품이구나... 싶어 심히 흥분하가 혹시나 하여 찾아봤더니 그 작품은 아니다.
그 해돋이와 심히 비슷하니 혼동 할 만하다고 스스로 위안.
얼겅설겅 넘어갔더라면 <인상, 해돋이> 작품이 게티에 있다!! 고 믿고 있을 뻔 ㅎㅎ
밀레의 작품을 드디어 봤다. 게다가 내가 본 첫 밀레의 작품이 이 <쟁기질 하는 농부>인 것이 좋았다.
어떻게 사람의 표정을 저렇게 표현하지...
구부정한 자세와, 고단한 얼굴과, 노동에 찌든 때 묻은 옷까지도...
이러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밀레인데 가난한 화가라고 오해받지. 그 자신은 농부화가라고 늘 말했지만 가난해 본 적은 없는 밀레인데, 평생을 농민과 노동을 이렇게 기가막히게 표현해 내다 그런 오해를 샀다.
아래의 우유를 들고 가는 여인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
무거운 우유를 들수 없어 등에 이고 가는 여인은 걸으면서 조는 것 같다. 이 두 사람은 10년의 시간을 넘어 각각 밀레가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인데 150년쯤 지나 이레 한 공간에 있다 보니 서로 알 것도 같고 부부일 것도 같고 부녀일 것도 같다.
삶은 고단했을 지라도 이젠 이곳에서 서로 위안이 되길...
2년전 게티 방문때도 이 그림은 찍어 두었다.
작가가 눈에 익진 않았지만 그림만으로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다. 글을 쓰려고 작가 이름 (Theodore Gericault)을 쳐 넣었더니, 테오도르 제리코라고 나온다...
아이고오, Gericault가 제리코구나
너무 유명한 작가잖아
예전 대학원 수업 때 원서를 읽는데 미셀 푸코는 알았는데 Foucault는 몰라서 푸콜트라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새로운 사람인 줄 알고 전혀 연결 못지어 헤매며 읽다가 나중에 이 이름이 푸코인걸 알고는 어뜩케 저게 푸코로 읽히냐고 썽을 냈던 기억이.... 그만... 되살아 났다.....
잠시 딴길로 샜는데,
나의 작품 보는 안목이 계속 좋아지는건가.. 잠시 기쁘다.
설명판을 들여다 봤는데 작가에 대한 설명보다 모델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모델의 이름은 Joseph, 아이티 출신으로 원래 아크로뱃을 직업으로 하던 사람으로, 제리코를 통해 모델로 발탁되고는 승승장구하여 에콜데보자르의 주요 모델이 되었단다.
역시
우수에 찬 눈동자가 범상치 않다니...
사람의 얼굴에 대한 연구를 하던 제리코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모델을 제대로 발탁해 이렇게 대단한 작품으로 박제한 것이고
이젠 이런 얼굴의 흑인 초상화가 등장하면 작가도 보겠지만 모델 이름도 살펴 볼 것 같다. 그 Joseph인가...하면서...
왠지 익숙하고 편안한 드가의 초상
드가는 일평생 많은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알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만큼은 아니겠지?
어딘지 의뭉스럽지만 순박하기도 한 그의 얼굴이다.
오늘도 만난 윌리엄 터너의 작품
터너의 작품 범위로 보건데 상당히 구상적이다. 그랬더니 이리 선명하고 반짝반짝한 그림이 되어 오랜만에 작품을 있는 그대로 봤다.
어떤 장면을 묘사한 건지 스스륵 봐서는 알 수 없어 진중하게 살펴봐야 실마리를 잡게 되는...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그런 천재적인 작가 윌리엄 터너.
나는 반고흐의 해바라기보다 붓꽃을 더 좋아한다.
노란색을 잘 썼고, 그래서 해바라기의 작가라고 불릴 정도로 해바라기가 대표적으로 회자되지만 생레미 정신병원의 정원에 피어있었던 이 아이리스를 그린작품에 더 마음이 간다.
이동의 자유가 없었기에 그나마 병원의 배려로 정원 정도는 나갈 수 있었다던데 고흐에게 허락된 일상자유의 끝단이 아이리스인 것이라 그런 것 같다
뭔가 마음이 가진 않은데, 왠지 내가 못 느끼는 무엇인가 있을 거 같아 그의 그림들이 걸려 있으면 그냥 지나친 적 없이 한참을 들여다 보는 작가 에두아르 마네.
오늘도 마네그림이구나, 바로 알아 채고는 어느 면을 이해해야 마네를 이해하게 될지 또 하염없이 들여다 봤다
이번엔 일단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것이 좋았고, 색감이 cool톤이라 정돈된 느낌이어서 좋았는데, 설명판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말한다.
"이 그림은 마네의 그림 중 가장 매력적이고 생기 넘치는 그림으로 1882년 살롱전에 전시되 많은 찬사를 받았다"
2년전 게티에 왔을 땐,
작품의 자세가 재밌어서 나도 바로 옆에서 차렷 자세를 하고 눈길은 10도 위를 향하게 해 사진을 찍었었다. 자코메티 작품인지 그 땐 몰랐고, 이번엔 입구에 들어오면서 부터, 이리 비싼 자코메티를 게티는 로비에 세워둔거였어!! 라며 감탄했다.
이번엔 감히 그렇게 사진을 못 찍고 앞에서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고 언젠간 남준이와 동시간에도 같이 서 있고픈 나란 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