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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Oct 22. 2023

LA 게티센터 #2_웃는 렘브란트 때문에 나도 웃는다

[23.2.13 발행]




게티센터에서 모네의 건초더미와 함께 방문객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Lembrandt Laughing>  


입구에 들어서면서 너무 쬐간해서 놀랜 액자를 뚫고 저 멀리 해사시 하게 웃는 렘브란트를 보고 나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렘브란트의 22살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 엄중하고 진지하며 관객과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의 자화상들 사이에서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듯한 이 웃는 렘브란트는 단연 최고다.


렘브란트 <Rembrandt Launghing> 1628년경


렘브란트가 그린 다른 초상화


본인은 세상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놓고 다른 사람은 이렇게 (위엄있게) 그려놨네 ㅎㅎㅎ


이 작품은 날카로운 코선을 중심으로 빛을 받는 부분과 그림자 부분을 명확히 구분지음으로서 인물초상임에도 구도에 집중한 느낌이고, 앙다문 입술과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미간에 힘을 잔뜩 준 모습을 포착해 그가 상당히 강단있고 진중하며 원칙에 충실한 인물일 것임을 드러낸다.


모델의 특성과 발주자의 의도가 잘 보이는 작품이다.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줄지어 있는 한 벽면. 정말로 쬐깐해서는 젤로 눈에 확 띄는 <웃는 렘브란트>  



고대/중세 시기 미술의 많은 소재는 종교와 신화에서 오는데, 이런 소재가 나와 연관성이 적기도 하고 시대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어 손과 눈이 확 가지지 않는다. 그래도 찬찬히 하나씩 알아가는 중인데 렘브란트가 나오면 루벤스가 거의 같이 전시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활동 시기가 비슷한 것도 있을 것인데 이 둘의 관계는 차차 알아 가고 (있다면), 아래는 그래서 루벤스의 그림이다.


루벤스는 빛을 잘 썼다고 알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최대한 빛과 색을 활용해 강조하는 방식.


이 그림에선 무덤에 갖히신 예수의 몸이 그 주인공이다. 붉은 옷과 파란 옷 사이 거의 백색에 가까운 예수의 몸에 관람객의 시선이 대부분 가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야 각 인물들의 침통한 표정이 보인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걱정하며, 누군가는 원망하는 듯한 표정들이 그림에 생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색만 잘쓴 것이 아니라 디테일 묘사에 능했던 작가구나..  


피터 폴 루벤스 <The Entombment> 1612년경



사랑을 다루는데 현재까지 프라고나르 같은 작가를 본 적이 없다. 사랑의 한복판에서 서로에게 달뜬 연인들을 이렇게 잘 표현하는 작가라니...


현재까지 직접 본 작품들로는 금지된 사랑, 부도덕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으므로, 결과론적으론 사랑에 회의론적인 작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일단 작품속 연인들은 세상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들만의 사랑의 행위에 집중한다. 로코코식 회화 표현이라 더욱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정서가 화면에 가득하다.


프라고나르 <The Fountain of Love> 1785년경



최근 본 합스부르크 600년전의 메인 포스터의 그 꼬맹이 공주님처럼, 게티 제작물의 메인 이미지도 이 꼬마 숙녀님이다.


회화란 그저 아름다움이 단하나의 존재이유일 것임을 잘 보여주는 작품.


합스부르크의 그 꼬맹이 공주님처럼 대대손손 대단한 왕가의 손귀한 공주님도 아니고 작가도 벨라스케스도 아닌데 그저 너무 아름다워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파스텔 작품이라는 사실.


파스텔은 색채의 밀도가 낮고 스케치를 하거나 배경처리를 할 때 쓰일 것 같은 선입견을 말끔히 깨뜨린 작품. 파스텔 작품인데도 번듯한 유화 작품처럼 색감, 입체감, 디테일 표현력, 내구성 등이 뛰어나다.


게티의 메인 모델, 메인 작품인 것, 이해되었다.


장 에티엔 리오타드 <Portrait of Maria Frederike van Reede-Athlone at Seven Years of Age> 1755-56



나는 언제쯤 카라바조의 작품을 실제로 볼까


명암표현이 혹시나 카라바조인가, 눈을 크게 뜨고 다가갔는데 아니어서 실망했다가 설명판에 "작가는 카라바조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고..."라는 부분이 있어 역시나 했다.


카라바조는 아니지만 눈여겨 본 작품


헤라드 반 혼토르스트 (Gerrit van Honthorst) <Christ Crowned with Thorns> 1620년경



수태고지는 근현대 회화작품에선 그리 인기있는 소재가 아니나 이 시기를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그려진 소재 중 하나일 것. 그 동안 이 수태고지 소재에 그닥 흥미가 없어 눈여겨 보지 않다가 최근부터 해외미술관에서 하나 둘씩 관심있게 보고 있다.


게티엔 이 수태고지


뭔가 감정이 절제되 있고, 순응하는 느낌의 수태고지로 기억할 듯하다. 디테일은 왠만한 중세/르네상스 시대 작가가 그러하 듯 입틀막 수준이어서 접사 촬영 한컷 더 했다.


디에릭 보우츠(Dieric Bouts) <The Annunciation> 1450~55년경


위<수태고지> 그림의 마리아 옷 부분을 접사촬영해봤다. 천의 질감이 원래도 잘 표현되어 있을 것인데 세월이 묻어나 더욱 리얼하다.





웃는 렘브란트를 제외하고는 제일 재밌게 본 그림.


처음엔 칼을 들고 난투를 하고 있어 또 예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제자들의 싸움인가.. 했다가 등장인물 들의 표정이 익살스럽고, 그림의 톤이 전반적으로 밝으며 들고있는 소품들이 악기들 이어서 아니구나, 했다.


설명판을 들여다 보니 뮤지션들의 싸움이랜다.


그림 전체를 꽉 채운 등장인물들, 그들 사이에 있는 텐션과 생동감, 최초 시선은 중앙에서 가장 큰 싸움을 하고 있는 두 남자에게 우선 가지만 인물 한명한명 들여다 보면 모두가 주인공급의 연기들을 하고 있어 초반의 <웃는 렘브란트> 만큼이나 경쾌하고 재밌어서 좋다.


조르주 드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The Musicians' Brawl> 1625년경



그리고 Wing과 Wing사이를 지날 때 뻥뚫린 LA시내를 볼 수 있는 테라스 공간


그곳에 설치된 Marino Marini의 Angel of the Citadel작품은 뻥뚫린 야외 공간에 설치된 덕에 두 팔을 쭉 뻗고 그대로 달려나가도 될 듯하다.


Marino Marini <Angel of the Citadel>  디자인 1948, 제작 1950



비오는 날씨여서 청명한 하늘느낌은 없는 날이었지만 오늘도 LA시내를 뻥뚫린 시야로 볼 수 있게 해준 게티센터의 야외 테라스  


게티는 LA올때마다 와도 될 정도로 좋은 곳이다. 날이 좋으면 작품 감상은 살짝 뒤로 하고 야외 정원에서 산책하고 책 읽고 커피 마시기 좋고, 날이 안 좋으면 봤더라도 또 봐도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면 된다.


언제가 될지 모를 4번째 방문엔 또 어떤 작품을 놓쳐서 '내가 그걸 봤어야 했네...' 하며 작게 투덜거릴 내가 이미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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