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마티스의 <모자 쓴 여인>
샌프란 모마는 나에겐 이 곳이 메인이긴 했다.
7층부터 쭉 내려오면서 보는데 아직 <모자 쓴 여인>은 없고, 다소 허탈해 질 무렵, 2층 저 멀리 사람들이 와글와글 한 것이 보였다. 뭐지... 싶어 두어걸음 하자마자 바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멀리서 똭 내 시선을 사로 잡는 <모자 쓴 여인>.
샌프란 모마의 2층엔 $25불짜리 티켓을 사지 않더라도 무료로 볼 수 있는 퍼블릭 전시가 있다. 그리고 왠만큼 유명한 그림은 여기 다 있었다.
신규작품들, 기획전 등은 유료 오픈을 하고, 오래된 유명 작품들은 공공재라 생각하고 대중들이 쉽게 다가 갈수 있게 무료 오픈한 한 샌프란 모마의 철학과 정책방향에 박수!!!!
<모자 쓴 여인>은 2층 입구 초입부터 있다. 입구 너무 가까이 있어 전시에 집중하기 애매할 지경이다!
국내에 마티스전이 자주 열리는데 정작 <삶의 기쁨>이나 이 <모자 쓴 여인> 같은 주요 작품은 못 들어 오고 잔잔바리 (죄송합니다..)들만 가지고 이리저리 타이틀만 바꿔 전시를 하는 것이 내내 못마땅한 와중에 드디어 이 작품을 실물로 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색채의 마술사"
"야수파의 거장"
이런 타이틀은 색종이 아트나, 인물 드로잉 작품으론 알수 없다. 이 작품으로 그의 이런 평가를 설명했을 때야, '아 그러네...' 했는데 실물은 이런 평가들을 실제로 증명해 낸다.
빨간 머리에 초록 얼굴, 정확히 보색 대비인데 불편하지 않고 세련됐다. 게다가 오리에 꽃에 이것저것 다 얹은 모자도 전혀 복잡해보이지 않는다
옷은 또 어떠한가?
실제 저런 옷을 입었다면 정신사납다 했을 의상이 마티스의 그림 안에선 더 없이 조화롭다
모든 색이 강렬하고 다 튀는데도 부산스럽지 않고 아름답다니, 이렇게 모든 밸런스가 완벽한 것이 색채의 마술사, 야수파의 거장에게 붙이는 수식어인 것이다.
바로 옆에 마티스의 <삶의 기쁨 (The Joy of Life)>과 톤앤매너가 비슷한 작품이 있다.
<삶의 기쁨>의 스케치 작품이다.
대작 <삶의 기쁨>을 온전히 캔버스로 꺼내놓기 전 머리속에서 구상하며 가볍게(?) 붓터치 했을 마티스가 상상된다.
아직 생소하긴 한데 관심가는 작가 순위 꽤 상단에 조르주 브라크 (Georges Braque)가 있다.
이 작품은 브라크의 스타일 상에서 추상과 구상이 섞여 오묘한 느낌을 준다. 후기로 갈수록 추상이 강해진 걸로 알고 있는데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구상이 많이 남아 있어, 브라크 초심자로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조지아 오키프 언니
이 언니의 작품은 부지불식간에 마추쳐도 오키프의 향기가 난다. 꽃을 그려도, 동물뼈를 그려도, 빌딩을 그려도 말이다.
이번엔 이렇게 생소한 풍경을 그렸는데도 오키프의 스타일이 단번에 보였다. '왠지 모르겠으나... 오키프...' 같은 강력한 스키마가 작동하는 작가라는 것은 실로 대단하다
두어 달 전 RM의 인스타에서 뭐지, 싶은 사각형들을 봤다. 그저 사각형들의 조합이었는데, 미적으로 정교하지도, 형태나 구도적으로 세련되지도 않아서 의아했지만 일단 남준 Pick이었으므로 기억했던 작가이자 작품 스타일
조세프 알버스 (Josef Albers)
아래 작품들이 남준이의 도형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 들여다 보니 조세프 알버스가 맞다.
늘 나의 예술적 지평을 넓혀주는 남준이
남준이 아님 그 도형들을 기억할 리가 없....
(남준이가 인스타를 밀어버려 조세프 알버스의 작품을 어떻게 올려놨는지 찾지 못한다ㅠㅠ 남준아 왜 그래.. 누가 남준이 건드렸어...)
조지아 오키프도 남준이가 읽고 있던 책이어서 나도 그 책으로 먼저 그녀를 접하고는 그녀도 그녀의 예술세계도 너무 맘에 들었었다.
같은 맥락에서 알버스의 작품을 봤는데 아직 모르겠다만 (색대비, 색융합 등등을 보여준다고 보인다, 그 외 다른 의미들도 있을 것인데...) 책을 좀 찾아봐야지...생각한다.
샌프란 모마가 맘에 들었던 것은 유명작가의 대작은 아니나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제외) 작가의 습작이나 대표작 이전의 어떤 중간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였던 것 같다 (마티스의 <삶의 기쁨> 스케치 처럼)
아래도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이 형태들은 완성되어 후에 그의 대표작들이 될 것이나 그 이전엔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또 이렇게 독립작품으로도 존재했었구나 알 수 있어 좋았다.
언뜻 그냥 지나갔다면 이 작품도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브 탕기(Yves Tanguy)라는 생소한 작가로 초현실주의 작가라는데, 달리에 대한 오마주인가... 상당히 유사하다.
이제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교황 습작 쯤 일 것이고 타이틀은 <Study for Portait (With Two Owls)>이다.
처음 보면 괴기스럽겠다만 여튼 이 정도면 베이컨 작품 중엔 너무 샤방하고 귀여운 수준 ㅎㅎㅎㅎ
오늘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다음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
마크 로스코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 붙는 평가인 종교적이고, 명상적이며 대단히 성찰적이라는 그 지점을 채 경험할 수 없다가 이 작품을 계기로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 일부러 오랜 시간 서있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 작품 앞에선 오래 오래 서 있었다.
그림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고, 내 삶이 그림에 그대로 투영되는 경험이 있었다.
이 작품만큼은 너무 사랑한다.
피카소의 작품같기도, 호안미로의 작품같기도 한 잭슨 폴록의 작품.
색감이 좋고 형태를 알아 볼 수 있으며 구도에 어느 정도의 규칙이 있어 폴록 작품 중에는 상당히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액션페인팅 기법이 발현되기 이전 작품으로 보이고
날이 갈수록, 작품을 볼수록 좋아지는 중인 호안미로.
아이가 그린 그림 같기도 한 이 천진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