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은 여기
아래는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마리 앙트와네트의 초상을 그린 엘리자베스 루이스 비제 르비룅, 그녀의 작품이다. 그 당시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귀신같은 재주가 있었던 불세출의 여류화가. 그래서 궁정과 상류귀족층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던 작가다.
프랑스혁명으로 마리 앙트와네트가 처형당하면서 본인 인생도 꼬꾸라 졌지만 그 이전까진 가뭄에 콩나듯 했던 여류화가, 특히 초상화가로선 단연 독보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린 작품을 다시 마주했다.
아래는 그 당시 배우였던 여성을 그린 것인데, 생동감 있고 아름답다. 남성이 보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여성이 보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다른 것이 그림에서도 보인다.
르 비룅은 여성을 그릴 때 실제는 하고 있지 않은 숄을 자주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녀가 여성성을 표현하는데 사랑하는 소품이다. 바람에 날리는 숄의 곡선이 어깨선과 허리선을 더욱 여성적이게 보이게 한다.
얼마전 케티센터에서 <웃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본 후,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이 솟고 있는 렘브란트의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강렬한 한방 보다 뭔가 그 사람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끄집어 내는 것에 능한 느낌이다.
다음은 루벤스의 작품
일반화 하긴 애매하지만 렘브란트보다 좀 더 강렬한 느낌의 초상화를 그린다. 배경을 짙게 하여 인물을 좀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렘브란트와 30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런 스타일은 개인차 일 수도 시대의 차이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루벤스의 다른 작품, 한눈에 봐도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
5년이나 공을 들인 작품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의 부분을 담았다.
"Render therefore unto Caesar the things that ate Caesar's, and un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이번 초상화들 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아, 이렇게 세상을 깔아보는 초상화라니!!
이 인물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됨됨이, 매력도, 배경 모든 것을 차치하고 이 초상화는 그저 단하나의 메시지 "내가 이곳의 주인이다!!" 라고 선포한 듯 하다. 저렇게 온화한 표정을 하고선 아래로 내려보는 고개와 시선 속에 이미 그의 의도는 다 녹아있다.
그리고 그 의도를 극대화 하려면 높이, 아주 높이 달아놔야 한다. 누구라도 이 초상화와 눈을 마주치려면 고개를 들어 우러러 봐야 함으로.
만약 동등한 눈높이로 보려면 멀리서 봐야 한다. 그것도 의도다.
"나와 가까이 있으려면 나를 우러러 볼 것이요, 그리 못한다면 나와 아주 멀리 있을 것이다"
난 분 일세...
안토니 반 다이크의 모자 초상화
루벤스에게 사사 받았다. 그래서인지 색표현이 아주 비슷하다.
투명하고 선명하게 찍히는 물감과 색대비가 그러하다.
오늘 이 작품을 본 것으로 만족한다.
오노레 도미에 (Honore Daumier)의 삼등칸 (Third-Class Carriage)
프랑스에 기차가 깔리기 시작하던 1800년대 초반, 사람들의 생활반경이 넓어진 것은 맞는데 마치 우리의 설국열차처럼 계급이 나뉘어진 기차의 삼등석엔 삶에 버거운 사람들의 기차 안 단상이 너무나 잘 표현되 있다.
오노레 도미에는 이 그림 말고도 삼등칸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그 중 한점을 실제로 보다니...
밀레의 작품을 마주한 것 같은 감동이 있다.
사랑을 다룬 몽글한 작품.
존 로댐 스펜스 스탠호프(John Roddam Spencer Stanhope)라는 초멘의 작가다.
라파엘전파에 해당하는 작가인데 보디첼리의 색감이나 구도가 보이고 후대의 알폰소 무하에게 영향을 주었을 법한 스타일이다.
보고 있으면 긴장이 풀리고 사알짝 달뜨게 만드는 그림
레슬리의 작품
이런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 안에 담긴 스토리나 배경 그런 것은 이역만리 대한민국 사람으로선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어 보인다만 회화 표현상에서 이러한 색감과 그 색을 유지하는 과학적인 노력은 어떻게 한 것인가.. 늘 궁금하다.
보통 사진을 찍으면 실제보다 더 쨍해 보이는게 우리네 카메라 기술의 한계(?? ㅎㅎ)인데 이 그림은 실제로도 이렇게 반짝반짝하고 선명하다. 그래서 인물들이 더 잘 보이고 그 인물들의 관계를 해석하고 싶게 할 만큼 집중도가 있게 만든다.
<Susanna and the Elders>
이번엔 Joan van Noort라는 분의 작품이다.
나체의 젊은 수산나를 2명의 늙은이가 훔쳐보고 있다. 늙은이들은 부끄러움이 없고, 수산나는 이 사실을 어디에 얘기할 수 없는 덫에 빠졌다.
수 많은 작가들이 다룬 스토리인데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
각각 보고 나서 붙여 놓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이 작품
왠지 기세등등한 아내와 쭈그러져 있는 촌부.
사고는 남편이 치고 수습은 아내가 하는 순간인건지 원래부터 아내는 드세고 남편은 무능한건지 모르겠다만
그림으로만 보면 희안하게 따뜻하고 위트가 있어, 집 안 현관 어드매쯤 걸어놓으면 볼 때마다 미소가 떠 오를 법한 그림이다.
인물의 위 아래로 여백없이 꽉 채운 구성이 그림에 타이트한 맛을 주다 보니 가만히 서 있는 인물들 인데도 둘 사이에 에너지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