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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Nov 09. 2023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동양화를 좋아해서 기회가 되면 늘 보려고 노력하는데,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어느 한 수집가의 컬렉션을 전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말에 엄마한테 가는 길에 가볍게 보려고 들렀는데, 가볍게 보고 흘릴 수 없는 훌륭한 작품들이 너무 많아 3편에 걸쳐 포스팅하려 한다.


동녘에서 거닐다 :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23.5.18 ~ 24.2.1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동양화는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이상범, 변관식 선생 정도를 보다가 이번에 이용우, 노수현선생을 알게 됐다.


그들이 풍미했던 시대의 컬렉션을 동산 박주환선생이 해내었다.


노수현 <추경> 1974 / 종이에 먹, 색

처음 보는 이름의 작가인데 이번 전시의 포문을 열었다.


처음 보더라도 그의 작품이 생기있고 단정하며 부드럽게 화폭을 수놓고 있는 것은 보인다.


추경이라는 타이들이 아니었으면 춘경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기운이 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리게 하는 바위와 구름 안개가 왼쪽 면을 수놓고 오른쪽엔 연두빛 머금은 초록의 생명들이 물길을 열어두고 흐드러져있다. 적절한 여백과 먹의 농담과 맞춤하게 들어 앉은 색채가 완벽하다.


보고 있으면 따뜻한 마음이 차오르게 하는 그림이다.


세검정인가...


전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히 그럴법한 그림


이용우 <산수> 1930년대 / 비단에 먹

따뜻한 그림을 보고 났더니 상대적으로 을씨년 스럽고 고독한 그림이 등장했다. 최근 너무 재밌게 본 드라마 악귀의 향이 그림이 떠올라서도 그런가 보다.  


그림은 비단에 그려져 바탕색이 갈색으로 꽉 들어차 이미 그림의 정서가 거기서 다 나왔는데, 안에 들어앉은 잎마른 나뭇길 사이로, 뗄감을 한가득 실은 나뭇꾼과 그의 길잡이를 하고 있는 총총한 강아지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시선을 빼았는다.


동양화들은 산수를 많이 그리는데 그 안에 이렇게 한명씩, 두명씩 등장하는 사람들을 들여다 보는 것이 백미다.


이번에 마음에 각인된 이용우 작가의 작품


노수현 <설경> 1950년대 / 종이에 먹, 색

이번엔 겨울경치 속으로 두 사람이 등장했다. 한사람은 긴 지팡이를 지고 길을 가고 있고, 다른 한사람은 정자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다.


지팡이를 지고 가는 저 선비의 종착지가 정자에서 그를 기다리는 친우일까...


정자 속 인물은 청록의 저고리 차림으로 보이는데, 동양화에서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적으니 이번에도 남자겠거니 한다.


이 전시의 첫작품을 장식했던 노수현의 작품이다. 첫작품보다 24년이나 전에 그린 작품이다. 설경인데도 따뜻한 느낌이 나는데 20여년이 지난 <추경>에서도 그런 따뜻함이 나오는 걸로 봐선 그는 이런 따뜻한 관점과 화풍을 평생 지닌 분인가보다 생각한다.


이분도 마음에 담았다.    


이상범 <귀로> 1940년대 / 비단에 먹, 색

그 유명한 청전 이상범 선생의 작품


동산선생은 이상범의 작품도 가지고 계셨네  


이상범 선생의 충분히 많은 작품을 본 건 아니지만 기존에 봐오던 작품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이런 그림도 그리셨구나...


변관식 <연하강산> 1940 / 비단에 먹

이상범선생옆에 언제나 있는 소정 변관식선생


연하강산은 '안개와 노을진 강과 산'이란 의미이다.


아스라하니 좋은 그림이다.  


이상범 <초동(初冬)> 1926 / 종이에 먹, 색

이런 그림이 이상범선생이지.. 생각한다.


오늘 본 노수현작가도 이런 풍인 것인데 내가 이런 풍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취향발견


부드러운 곡선과 적절한 여백, 그림에서 여실히 느껴지는 원근


<초동(初冬)>에는 점을 여러번 찍어 형태를 표현하는 미점준이라는 방법이 사용됐다 한다.  


서양기법인 원근과 점묘가 잘 살아난 동양화


이 작품은 이런 기법들을 망라한 그가 <사경산수화> 양식과 기법을 확립하던 초기 작품의 경향을 잘 보여줌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 있다 한다. 1977년 재정난을 겪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동산 박주환 선생이 기증한 것이라 하고  


변관식 <추경산수> 1923 / 종이에 먹, 색

청전선생과 늘 나란히 전시됨으로 자주 비교가 되는 소정 변관식선생의 작품


청전이 여성적이라면 소정은 남성적이다.

붓의 놀림, 먹의 농담에서 청전과 소정은 구별이 된다.


둘의 그림에 우위가 있을 수 없는데, 둘이 같이 걸릴 때 청전이 거의 앞에 오는데 2살 형아여서 그런 것도 있나... 생각한다.  


박승무 <연해풍경> 1953 / 종이에 먹, 색

그림이 정말 너무 좋지 않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쭉 그은 사선기준으로 왼쪽은 산과 바위와 나무들로 꽉 채우고, 그 오른쪽은 바다로 유유히 비워두었는데 그 바다 위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양반님네 화려한 뱃놀이 모습은 아니나 그렇다고 바삐 생계를 위해 바다를 건너는 모습도 아니라 그 모습이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어져 그림 전체가 여유롭고 호젓하니 행복하다.


우리가 요즘에도 저리 그리는 바닷 갈매기도 미소를 짓게 했다.


이용우 <기명절지> 1950 / 종이에 먹, 색
이용우 <물고기와 게> 1940년대 / 종이에 먹, 색

이용우의 정물화들


<기명절지화>는 구리로 만든 그릇이나 도자기에 꽃과 과일, 채소등을 배치해 그린 일종의 정물화로 20세기 초 근대 화단에서 크게 유행했다 한다.


동양화에서 정물화는 많이 접하지 못했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에서 정물들과 함께한 비파부는 김홍도의 모습 정도에서 본 듯


[참고자료]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서양이 정물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함의가 있듯, 우리의 정물화에도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선택된 하나하나의 오브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오주석작가가 그렇게 여러번 설명을 한 책들을 읽어 놓고도...)


이상범 김기창 정종여 <송하인물> 1949 / 종이에 먹, 색
정종여의 소나무, 김기창의 인물
청전 이상범의 화제

이 그림은 이상범 김기창 정종여 세 작가가 함께 그린 그림이다.


보통 제자가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스승이 화제를 쓰는 경우는 많이 봤는데 그림도 합작인 경우는 실물로 처음 접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도 김홍도가 호랑이를, 스승 강세황이 소나무를 그렸다고 하니 이런 전통은 유구했던 것


[참고자료] 김홍도 <송하맹호도>

이 작품에선 정종여는 소나무, 김기창은 인물, 이상범은 마지막에 그림과 부합하는 화제를 썼다 한다.


정종여와 김기창이 막역한 친구이고, 정종여가 이상범의 문하생이었으니 제자와 그 친구가 그림을 그린 것에 스승이 화제를 붙여 준 전통 그대로의 작품이다.


장우성 <야매> 1970년대 후반


전체 작품도 아름다운데 매화끝에 걸린 달 부분은 특히 아름답다.


달을 채움으로 표현하지 않고 비움으로 완성한... 파란 구름이 달을 중심으로 삥 둘러 호위함으로 빼꼼히 들어난 달의 자태가 기가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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