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출장에서 돌아오는 경유지를 빈으로 정하고 빈미술사 박물관에서 오로지 보고 싶었던 작품은 요하네르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빈 미술사 박물관이 수백년간 유럽대륙을 호령했던 대단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컬렉션이라 작품수 뿐만 아니라 컬렉션의 수준도 전세계 탑급임은 알지만 미지의 컬렉션들은 그곳에 가서 보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딱 한점, 페르메이르만이 빈 일정의 목적이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또는 얀 베르메르 (Jan Vermeer)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갔고 그 안에서 또 적은 작품만을 남겨 전세계에 진품으로 알려진 작품은 고작 33~36점
그의 고국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4점,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3점이 있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5점, 전세계 최고 수준 딱지가 붙거나 그의 작품을 보유한 것만으로 유명 미술관이 되버리는 미술관들에 1~2점씩만 있다 보니 그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영접 수준이다.
(아래 위키피디아에 있는 작품 목록 외에 <천문학자> <지리학자>등 그의 진품은 더 있다)
[페르메이르 그림 목록 및 보유 미술관]
그런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드디어 나도 눈으로 보는 것이다.
<회화의 기술>은 빈미술사 박물관 1층의 XII번 방에 있다. 박물관의 구조가 쉽고 리플렛에도 주요 작품으로 마킹이 되 있어 금방 찾을 수 있다.
화가는 스스로가 그림 속에 등장하여 역사의 뮤즈인 Clio 포즈의 모델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그의 익숙한 구도인 타일 패턴 바닥과 왼쪽에서 빛이 들어오는 실내다. 벽에는 그가 주로 사용하는 그림과 지도 중 이번엔 17개의 프로방스로 나뉜 네덜란드 지도를 선택했다.
그가 자주 쓰는 색인 블루와 옐로우는 모델의 옷과 월계관, 책, 커튼과 샹들리에에서 이번에도 빛이 난다.
페르메이르가 그린 그림 중 가장 큰 그림에 속해 작아서 고개를 쑥 빼지 않고 그림의 두 배 만큼의 거리에서 봐도 충분히 잘 보인다.
이 그림이 나는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희귀해서?
맞다
색감과 구도가 완벽하고 그림의 구성과 디테일이 정교해서?
맞다
모든 것을 종합해 회화적 완성도가 뛰어나서?
맞다
작가의 매력도는?
나쁘지 않다. 아이를 여럿 낳아 생계형 화가였고, 아내의 덕을 보긴 했지만 가장으로도 열심이었으며, 짧은 생을 살아 안타까움도 있다
그러면 그 안의 상징은 이해가 되나?
그건 아닌 듯하다.
음악의 여신인 클리오 스토리나, 화가가 자주 메시지의 도구로 사용하는 지도의 의미, 월계수의 의미, 그리고 그 앞에 놓인 가면의 의도를 잘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보니 중앙의 지도 외에 지도를 감싸고 있는 좌우 테두리 그림에도 눈이 갔는데 이는 특정 앵글에서 지속적으로 비슷한 곳을 그린 도시이자 건물들이었다. 그 건물과 도시가 어디를 가르키는지, 왜 화가는 그렇게 집요하게 그 도시(들)를 그려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에 대한 글들을 책으로, 블로그로 꽤 여러편 읽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없었다. 이런 디테일들과 상징과 은유들을 모두 눈으로 담고 머리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 그림이 좋았다.
바로 오른쪽으로 5미터만 가면 렘브란트의 청년기 자화상과 카라바조의 어마무시한 작품들이 줄줄이 있었는데, 이방의 주인공은 그럼에도 단연 <회화의 기술>
<회화의 기술> 앞 정면 소파엔 사람들이 붐비진 않아도 끊이지 않게 앉아 이 그림을 꽤나 오랫동안 감상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오래 감상하는 그림들이 좋다. 그림과 화가와 내가 수백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 이순간 서로 공명하게 하는 그림
<회화의 기술>이 그렇다.
첫날 빈 미술사 박물관에 도착해 페르메이르가 너무 보고 싶어 미술관 안으로 바로 직행해 미술관 전경 사진 한장 없었는데, 다음날 비행기가 2시간 딜레이가 되는 바람에 재빨리 한번 더 미술관으로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합스부르크의 대단한 왕들을 뒤로하고 빈미술사박물관의 마당엔 역시나 위대한 마리아 테레지아 군주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들여다 보니 'V'를 하고 계신건가.. 눈을 의심했는데, 클로즈업 해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손가락 포즈;;
입구를 들어가면 정면에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대리석이 가장 흔한 재료였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화려하고 정교하며 장엄하고 고급스런 미술관 입구.
아마도 전세계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입구일 듯하다.
계단 끝에 다다르면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조각품이 있고, 조각품 위 벽과 천장엔 이것이 돌에 그린 프레스코화인지 캔버스에 그린 회화인지 헤깔리는 벽화와 천정화가 있다. 그 벽화와 천장화 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클림트, 미켈란젤로,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홀바인 등의 작품이다.
회화 외에 미술관 건물 자체가 예술이고 극강의 아름다움이라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미 미술관 입구의 위용에 놀랬는데, 한참을 미술품을 보다가 출출하기도 하고 커피가 생각나기도 하여 들어간 카페는 또 압권
전세계 모든 미술관을 보지 못했지만 (누구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지만) 전세계 미술관 카페 중 가장 아름다울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에 의심이 없다.
카페는 쿠폴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구도에 장방형으로 뻗어나가는 아름다운 패턴의 바닥, 미술관 천정까지 통으로 열린 돔형 공간에 밖으로 부터 들어오는 빛이 실내를 온화하게 감싸고 돔을 받치고 있는 각 기둥엔 아름다운 조각들이 즐비하다.
건물은 디자인으로도 대리석을 포함한 고급스런 재료로도 완벽 그 이상이었다.
비행기 딜레이로 기쁘게 두번을 오게된 미술관에서 볼거리가 너무 많아 시간을 쪼개는 와중에 카페 만큼은 이틀 모두 와 이 아름다움을 한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