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르 브뤼헐 (Pieter Brueghel)을 처음 본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다. 초면 작가의 그림이 어찌나 정겹고 익살스럽던지, 그날 본 그림들 중 원픽이었다.
작년부터 미술을 진심으로 대하고 미술책을 기회되는 대로 읽으면서 내 나름의 깨알같은 안목이라는게 생기기 시작한건지, 유명한지, 대가인지 모르고 작품이 좋아서 기억했는데 나라를 대표했던 영국 국민작가 윌리엄터너를 발견한 것과 유사하게 알고 보니 한 나라의 대표작가였던 분이 네덜란드의 피터르 브뤼헐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언젠가 또 만나기를 기대했던 브뤼헐의 작품이 빈 미술사 박물관의 방하나를 털어 최고의 컬렉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페르메이르만 알고 왔는데 브뤼헐로 더 압도된 빈 미술사박물관. 전세계 모든 미술관 중 브뤼헐로 최고의 컬렉션을 보유한 곳이었다.
요렇게 나머지 사방의 모든 면도 브뤼헐이다. 브뤼헐 아들들의 작품도 두어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거지 이거!
브뤼헐의 감성
풍속화가로서 네덜란드의 전통 놀이를 모두 담으려 한 양 캔버스를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이 모두 신나게 놀고 있다.
말뚝박기, 굴렁쇠 굴리기, 기차놀이, 장대걷기, 공기놀이, 가마타기, 고싸움놀이 등등
이름이 뭔지 기억이 안나는 거지 무슨 놀이인지 왠만한 놀이는 한국인인 나도 대부분 다 알겠는 그런 놀이들의 대 향연이다.
플랑드르 지방의 놀이가 우리랑 엄청 비슷했구나아~!
캔버스가 크다해도 이리 많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리 꼼꼼하게 놀이의 대서사를 완성시킨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
사람들의 얼굴 디테일도 풍부하여 이 사람 하나하나를 얼마나 애정섞어 그렸는지도 알겠다.
위의 <Children's Games> 와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
카니발과 사순절 사이 어디매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과 금식하며 경건히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캔버스에 담았다
상반된 이벤트를 한 화면에 담으니 이래 역동적이고 감정의 폭이 넓은 그림이 되었다.
농부들의 결혼과 춤추는 장면
안에서는 결혼식을 하고 밖에서는 이렇게 춤을 추나보다.. 하고 연결짓는다.
작고 소듕한 네덜란드인들을 보다가 이렇게 큼직하니 시원시원한 그림을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그림 속의 플랑드르 사람들은 흥이 많고 즐거우며 경쾌하다. 그림이 그 옛날부터 내려오는 국민들의 기질도 보여주는 듯하다.
성서의 한 장면인 바벨탑을 쌓는 모습
그림은 그림 중앙 바벨탑과 왼쪽 하단의 바벨탑이 쌓여지고 있는 모습을 시찰하고 있는 일행이 우선 시선을 사로잡는다.허나 브뤼헐의 작품은 눈을 요래요래 뜨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림 구석구석에 성실하게도 묘사해둔 사람과 건물과 사물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된다.
그림을 감상하며 숨은 그림찾기 할 때와 같은 집중력이 요해지는데, 이것이 귀찮고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라 이 그림들을 보는 재미이자 유희이다.
예언자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으로 왕이 된 기브아 왕 사울이 길보아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블레셋군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자살한 장면을 그렸다. <바벨탑>도 그러고 사울의 자살장면을 그린 것도 그렇고 브뤼헐은 상당히 기독교적인 사람이었나 보다.
그건 그렇고 그림의 디테일이 디테일이....그야 말로 끝판왕이다
반지의 제왕 영화의 전투씬 같은 부분이 브뤼헐의 그림을 보고 그래픽 표현방식을 결정한게 아닌가 싶은 구도와 디테일들인데 현대 영화도 디자이너가 컴퓨터로 한땀한땀 작업을 하겠지만 그 시대 붓을 가지고 한 화가가 표현하는 수준이 이정도라니, 경외감 조차 들게 되는 작품
1560년대의 브뤼헐은 한마디로 미쳤다
브뤼헐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이 <눈속의 사냥꾼>이 아닐까 한다.
다른 작품들은 여기서 처음 보기도 책에서 한 두번 보기도 했는데, 이 <눈 속의 사냥꾼> 그림은 여러 책에서 그의 대표작으로 빠지지 않고 소개되었다.
추운 겨울 사냥을 다녀온 사냥꾼의 수확은 등 위에 맨 여우 한 마리 쯤으로 봐선 대단치 않고 함께 간 사냥꾼들도 사냥개 무리들은 축 쳐져 지칠대로 지쳤다.
그래도 저 멀리 곧 다다를 집 근처에선 아이들이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탄다.
내가 브뤼헐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이런 추운 겨울에 풍족한 사냥을 하고 금의환향하는 장면이 아닐지라도 왠지 따뜻한 정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아저씨도 이 그림을 나보다 더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봐도 구도나 색감 스토리 정서 모두 갓벽.
예수께서 골고다로 가는 행렬을 그렸다.
그림속 가장 주인공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장면은 위치는 중앙이나 오히려 눈에 덜 띄고 맨 앞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훨씬 잘보이게 배치했다.
브뤼헐의 그림은 어디에 렌즈를 가져다 대도 디테일의 어그러짐이 없다.
앞쪽의 무수한 사람들은 당연하고 뒤쪽의 골고다 언덕부분, 골고다 지역의 특색을 알고 있다면 더 이해가 될 법한 뒤 연못처럼 생긴 부분 까지 어디 하나 허투루가 없는 그림이다.
예루살렘에서 미래의 왕이 태어났다는 예언을 듣고 헤롯왕이 예루살렘의 2세 미만 남자 아이를 모두 죽여버리는 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브뤼헐의 이곳 컬렉션엔 유독 성격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그의 모든 그림이 그러한 건지 빈미술사박물관의 컬렉션이 종교적인 것에 집중된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그가 성경의 주요 이야기들을 그림의 소재로 빈번히 선택했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잔인한 처형을 다루는데도 브뤼헐은 유혈이 낭자한 모습보다는 '죽임' 의 행위 자체에 방점을 두어 그 당시의 모습을 액션으로 소화했다.
아이를 빼앗기는 부모들의 얼굴 표정은 적나라 하지만 극한의 고통의 모습은 아니다. 죽음을 행하는 자들도 생명이 대상이 아닌 가벼운 놀이로 생각하는 것처럼 진지하지 않게 보이기는 마찬가지
이런 류의 그림에 비극성을 거세한 것은 브뤼헐의 의도일까...
브뤼헐의 비슷한 화풍을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있고
이어 그의 아들들의 작품도 걸려있다.
피터르 브뤼헐의 첫째 아들이다. 그러니 피터르 브뤼헐 더 영거의 형인 것
첫째 아들도 화가로 활동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은 비슷하다. 확실하게 아버지를 모사해 두각을 나타낸 동생과 비교해 그림의 개성이 좀 희미한 감이 있다.
피터르 브뤼헐의 둘째 아들인 소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아버지와 구도, 색감, 표현법, 소재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거의 판에 박은 듯 같다. 스승을 거의 모사하는 수준의 작품임에도 아버지임으로 이해가 된다.
이 방은 브뤼헐 패밀리를 위한 헌사같다.
피터르 브뤼헐의 이만한 컬렉션을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고 나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고
본 후에도 정신이 좀 나가 있었는데,
이제 글을 쓰며 곱씹어도 그때가 현실이었던건 맞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만큼 브뤼헐의 빈미술사박물관의 컬렉션은 대단했다.
이 미술관에 오는 사람들이 여러 고전작가들을 보러 올 텐데, 그 안에 이 브뤼헐이 있어서 내가 기뻐한 만큼, 그 이상 즐겁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