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는 국중박 영국내셔널갤러리전에서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을 본 것이 첫 대면이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기가 막히게 구사하는 그의 작품을 드디어 실물로 대하는 것이었는데 무언지, 왠지 내 성에는 차지 않은 만남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빈미술사박물관은 달랐다. 이곳에 카라바조의 그림이 이리 여러점 있을 줄을 몰랐는데 카라바조를 처음 내게 각인시킨 다윗과 골리앗을 소재로한 작품이 이곳에 있었고, 다른 기가 작품도 더 있었다. 드디어 성에 찼다
Caravaggio David with Goliath's Head> 1600/01년경
내가 카라바조라는 이름을 처음 기억하게 해준 작품. 성서의 거인 골리앗을 어린 다윗이 돌팔매로 무너뜨리고 그의 목을 친 장면을 담고 있다.
드뎌 제대로 보게된 그의 키아로스쿠로 기법과 단 2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모든 시선이 이 두명의 인물 (좀 더 정확히는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의 목)에 집중하게 만든 구성법이나 목을 내려친 다윗(젊은 시절)이나 잘린 목의 주인인 골리앗(지금 현재)이나 사실은 카바라조 본인의 얼굴이었더라.. 까지 감상의 여러 포인트가 제대로 녹아있는 그림이다.
목잘린 골리앗의 이마에 돌팔매가 아니라 지금 시대로 치면 총상을 입었다 해도 믿을 만큼 강렬한 흉과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한 골리앗의 표정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고 어찌보면 서사적으로는 영웅인 어린 다윗은 다소 밋밋하여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걸맞는 순간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듯하다.
하기사 그도 그럴것이 카라바조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미 살인죄로 복역하다 탈옥하여 도망자 신세였고, 교황에 본인의 면죄를 요청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때 그린 이 그림의 잘린 목의 모델로 본인을 넣어 내 죽어 마땅함을 표현했으니 (혹은 진실로 참회하고 있었으니) 모든 화가적 기교는 골리앗의 머리에 쏟아 부은 것은 맞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다윗과 골리앗을 소재로한 그림을 더 그렸는데 빈미술사에는 이 버전으로 소장되어 있다
Caravaggio <Crowning of Thorns> 1603년경
<그리스도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움>이라는 작품
집행관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고문을 가하며 조롱할 참이고 예수는 이 모든 고통과 조롱을 감내하는 듯 조용히 눈을 내리 두고 있다. 지극히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 극도로 고요한 모습이다.
기독교인인 현대의 나도 이런 그림 앞에 서면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종교의 비중이 지금 보다 훨씬 높았던 당시에 이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은 마음이 어땠을까
본인의 인생은 개차반으로 살아놓고 시민들을 향해선 이런 종교적 선동을 해댄 카라바조는 실로 천재긴 하다.
Caravaggio <Madonna of the Rosary> 1603년경
카라바조의 또 다른 그림 <로사리오의 성모>
붉은 커튼은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듯 하고 어린 예수를 안고 았는 마리아는 그 주변 인물들에 둘러 쌓여있다.
카라바조는 성경을 주제로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시대가 그러했고 의뢰인들도 성경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선호했을 터
한꺼번에 카라바조의 그림을 세점이나 본 날
르뷔랭 <Archduchess Marie-Antoinette> 1778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저 멀리 보이는 반가운 얼굴. 국중박에 대여 나왔던 르-뷔랭의 마리 앙트와네트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친정이고 세상물정 모른 채 프랑스에 시집갔다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인
그녀가 조금만 더 정치감각이 있었더라면, 친정이 프랑스의 브르봉가와 함께 유럽을 쩜쩌먹던 합스부르가 아니었다면 혁명의 시대를 잘 헤쳐나갔을까, 자문해 보면 그렇지 못했을 것 같은 천상 대단한 왕가의 공주님이었다.
친정에 이렇게 걸려있으니 그녀의 화려했던 인생 전반보다 비극적인 말년이 더 각인된 여인이어서 내가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
Anton von Maron <Maria Theresa as a Widow> 1773
마리 앙뜨와네뜨의 어머니이자 남편 사망 후 그를 대신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훌륭히 이끈 마리아 테레지아 군주. 이 그림은 남편이 죽고 미망인 신분일 때의 모습이다. 정확치 않은데 이 그림도 국중박에 대여를 나왔던 기억이다.
그 너머 작은 방엔 합스부르크전 최고의 스타였던 꼬마아가씨 마가리타 공주의 유년시절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모두 벨라스케스의 작품으로 왼쪽부터 쪼르륵 세 점 모두 마가리타공주이고 마지막은 주의 깊에 안 봤으면 같은 마가리타 공주라고 오해하고 지나갔을 법했는데 필립4세 왕의 아들인 필립 프로스퍼 왕자의 그림이다. 그 당시 어떤 풍습 (치마를 입히고 여자아이처럼 키워야 오래산다, 가문의 액땜을 할 수 있다...같은 식의) 때문에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또 보니 반갑네, 꼬마 아가씨, 아니 공주님 :-)
Jacopo Tintoretto <Susanna Bathing> 1555/56
목욕하는 수산나를 훔쳐보는 두 늙은이를 그린 틴토레토의 작품
고전회화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인데 유독 아름다운 수산나 때문에 사진에 담았다.
목욕을 하기 위해 이제 막 옷을 벗고 장신구를 다 빼놓은 수산나를 늙은 교회의 장로(또는 재판관) 2명이 훔쳐보고 있다. 잘못은 노인들이 했는데, 그들은 남성이고 권력자이므로 이야기이 끝은 여성의 불명예와 책임으로 갈 터이다
작가는 이런 불합리한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기 보단 아름다운 여성을 늙은이들과 같이 훔쳐보는 관람객의 욕망을 같이 들어낸 (그래서 이를 비판하고픈) 작품이라고 보인다.
저 뒤의 노인은 원근법이 무시된 듯 과소하게 표현되어 있고, 수산나는 크게, 그 앞 왼쪽의 노인도 작게 그려져 있다. 수산나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인다.
Paolo Veronese <Lucretia> 1580/83
아름다워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들여다 보니 여인은 울고 있고 가슴엔 단도가 쥐어있다. 곧 목숨을 끊을려나 보다.
이런 모먼트면 원인은 그것이겠지.. 겁탈, 강간...
왕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 루크레시아가 예상대로 자살을 감행하려 하고 있다.
작가는 아름다운 여성의 비극적인 순간을 애도하려는 것일까 사회에 경고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 비극성을 부여한 것일까
나에겐 후자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움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다.
Paolo Veronese <Venus and Adonis> 1586년경
이번엔 대놓고 사랑질이다. 딱봐도 꼬마는 큐피드고 여인은 그의 어머니인 비너스일 것이다. 비너스를 희롱하는 이는 사냥꾼인 아도니스
큐피드는 자기가 엄마한테 사랑의 화살을 쏴 놓고 엄마가 아노니스와 사랑을 하니 왜 심술이 난듯 엄마를 보채고 있는 것이지
Guiseppe Cesari <Perseus Liberate Andromeda>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이 행성이름도 여신 이름에서 나온거구나...)를 구해주고 있다.
신화의 이야기는 여러번 읽어도 늘 까먹기 때문에 한바닥 적혀있는 영문 설명판을 읽다가 포기했으나, 이런 구도 (여성은 바위산이나 바다 한가운데 묶여 있고 남성이 저 멀리 말을 타고 구출하는 구도)는 익히 여러 그림에서 봐 왔는데 그 모태가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인가, 생각하게 된다
페르세우스가 들고 있는 방패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게다.
Tizian Werkstatt <Mars, Venus and Amor>1550년경
비너스는 1500년대에는 완벽한 뮤즈이자 스타다. 이런 에로틱하고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여성은 대부분 비너스를 그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의 아름다운 나체를 보고는 싶은데 대놓고 그릴수 없으니 신화를 끌어와야 하는데 여기서 소위 가장 만만한 것은 미의 여신인 비너스일 터. 원하는대로 그려놓고 비너스라고 하면 되는 그런 분위기 쯤 되 보인다.
Tizian <Danae> 1554년 이후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는 왕위를 이을 왕자가 없어 신탁을 구하던 중에 딸 다나에가 낳은 아들 즉, 외손자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왕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청동탑을 만들어 딸을 가두지만, 다나에를 마음에 둔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하여 지붕의 틈새로 탑 안에 스며들어 그녀에게 접근했다. 다나에는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임신하여 훗날 영웅이 된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나무위키
탑에 갖힌 여인이 황금비로 인해 임신하게 되는 다나에 이야기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이 그림은 티치아노의 작품
그러고 보니 이번편은 카라바조의 극적이고 성서적인 그림으로 시작했는데 끝은 에로틱하고 매혹적인 신화의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빈미술사는 그 컬렉션이 수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세계 최고인데 전시의 수준, 관리의 방식도 더할나위없이 안정적이고 깔끔하다.
그래서 이 미술관이 파리나 영국에 있었으면 (자주 가 보게) 싶지만서도 빈에 있음으로 관광객의 때가 덜 타고 덜 어수선한 것이 아닌가 싶어 이렇게 계속 다소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고고하게 빛을 발했으면 싶은 미술관으로 남는다.
회화는 이렇게 4편으로 정리되고 공예로 2편을 더 쓰면 빈미술사박물관의 이틀에 걸친 감상기는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