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미로 Dec 02. 2021

청년이여, 회사에 목숨을 걸어라! (2)

내가 걸고 싶어서 거는 게 아니라 알아서 수명이 깎여 나가더라

'가족 같은 회사'

아마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희화화되었던 문구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이 정해준 운명 공동체이며, 후손을 낳고자 하였던 부모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그리고 그 외의 혈육들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교육과정, 그리고 가치관들은 점점 많은 이들을 부모로부터 심리적, 정신적으로 독립시켰다. 급격한 관념의 변화는 세대 간의 소통에 장애를 일으켰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임계점을 넘어가며 '가족'이 가지는 의미의 빛깔이 전과는 많이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스함과 안정감은, 아직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이 근본적으로 나고 자란 공간과 그 공간을 공유하였던 가족 구석원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아무리 정 붙이면 고향이요,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격언이 존재했기로서니 회사가 가족 같을 수가 있는가. 물론 사장님 아들이 과장님이고 사모님이 사업 지휘하고 이러면 가족 같긴 하다. 콩가루 집안일 지언정.......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제법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인원은 사장님과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었고, 사장님이 제법 젊고 유쾌하신 분인 데다가 본인을 사장님이 아닌 '삼촌' 혹은 '나이 많은 친척 형님' 정도로 생각하고 편하게 하라고 하시면서 실제로 편하게 대해주신, 인간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던 분이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나 고되어 나는 퇴직금 수령이 가능한 1년의 근무 일자를 채우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은 마지막까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라고 아직까지 믿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일이 고되다고 해서 직장을 때려친다면, 대한민국에는 아무도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미국인 멘토들의 영상만 봐도, 주 40시간을 일하는 삶이 너무 고돼서 때려쳤다는 얘기가 수두룩한데 (주 40시간이면 정확히 9 to 6, 점심시간 1시간, 주 5일이다) 우리나라는 2021년 1월이 되어서야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에,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사업체에 적용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주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켜도 68시간이 안 넘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은? 왜 언급이 없는 것이지? 답은 간단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대상이 아니다.


내가 위에 언급했다시피 내가 일하던 직장은 총 3인이었고, 주 52시간을 보장받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용주가 그걸 지켜줄 필요가 없었다. 사장님이 아무리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신다고 해도 사업가는 사업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윤을 끌어내는 것이 사업의 기본이기 때문에 사장님의 절약 정신을 통해 나는 정말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충분한 수면 시간과 여가생활과 인간관계를 최소한의 임금과 맞바꾸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쏟아지자 내가 출퇴근 시간을 수기로 기록해 본 적이 있었는데, 주 81시간을 일한 날도 있었다. 토요일에도 일을 했었더라. 아침 7시부터 밤 9시 20분까지, 무급으로. 사장님은? 집에 계셨지 물론.




그때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며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왜 나는 수입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걸까? 였다. 주 40시간을 일하면 간신히 최저시급이 맞았는데, 당연히 그런 주 보다 그렇지 못한 주가 훠어어어얼씬 많았기 때문에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보다도 수입이 적었던 것이다. 물론 아르바이트는 그렇게까지 일을 많이 할 수가 없지만...... 어쨌든 내 시간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시간당 9천 원, 8천 원, 7천 원... 나는 그걸 참을 수가 없었다. 업무는 숙련되고 일은 많아지는데 급여는 그대로니까.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니 일을 돈만 보고 하냐? 거기서 사회생활도 배우고, 기술도 배우고, 열심히 하면 자연스레 돈은 따라온다'고. 나는 말한다.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인간은 단순히 돈과 기술로만 사는 동물이 아니다. 업무 자체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었을뿐더러, 직원이 적으니 실무와 각종 서류까지 내 몫이 되었다. 그렇게 바쁜데 업무는 어떻게 배우냐? 유튜브에 남들이 올린 영상 보면서 배웠다. 엑셀에 재고관리에 영업에 실무도 뛰고 배달까지... 나는 보람과 희망을 갖고 싶었고, 그게 없다면 하다못해 돈으로라도 나는 만족을 원했으나 내 전 직장은 그걸 주지 못했다.


다행히 나는 월급의 70% 이상을 저축하고 있었고, 적은 돈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며 친구도 별로 없다 보니 지출도 적어 퇴사 직전에는 약간의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걸로 좀 쉬면서 망가진 건강도 회복할까 했는데, 어쩌다 보니 바로 이직을 하게 되어서 그럴 수가 없어지긴 했다. 거기에다가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하며 내일채움공제를 신청하려 했는데, 1년 이상 고용보험에 등록되어 있던 사람은 6개월 이상 휴직하지 않으면 신청을 할 수가 없다더라. 3인 사업장은 개인사업자라서 애초에 등록 요건도 못 채웠기 때문에 신청을 못했는데, 이제 신청하려 하니까 수입이 있었다는 이유로 못하게 하더라. 머리가 어찌나 띵하던지...... 첫 직장을 잘 골랐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정말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러니 저 돈을 쓸 수가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일하는 게 싫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한다. 나는 책 읽고 감상문 쓰며 노래 만들고 멋진 곡이 있으면 편곡도 하고 맛있는 음식 해서 지인들 불러서 밥 먹이는 게 취미다.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했으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정도는 자유롭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현재 이직했고,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 뒤에는 자취방에서 요리하고 (직장을 타지에 구해서 독립하게 되었다) 청소하고 음악하고 글을 쓴다. 수입은 별반 차이 없고 지출은 엄청 늘었지만 난 지금이 행복하다.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다면, 적어도 난 내가 행복한 방식으로 힘든 삶을 영위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청년이여, 회사에 목숨을 걸어라!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