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구축 - 테세우스의 배
눈 펑펑 내리고 살을 에는 바람이 대한민국을 덮는 겨울이 끝나고, 따스한 햇빛 내리쬐는 봄 날씨가 서서히 우리 주변에 도달했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분명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푹푹 찌는 여름이 오겠지. 요 근래 몇 년간의 여름은 정말 살인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더위와 습도로 많은 사람들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었는데, 유달리 더위를 많이 타는 나 역시도 여름은 그야말로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원래도 집에만 박혀 지냈지만 여름엔 더더욱 그랬는데, 부득이하게 외출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꼭 집 앞에 새로 생긴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 들어가서 메로나를 하나 사서 먹으며 길을 나서곤 했다. 다 먹어치우기 전까진 황홀한 시원함을 선물해주는 메로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메로나는 1992년 처음으로 출시된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나이만 보면 빙과류 중에선 원로급인데 아직까지 세대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올 때 메로나'라는 밈까지 있을 정도면 얼마나 메로나가 사랑을 많이 받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메로나에 여러 가지 변형이 있던데...
메로나는 멜론맛 아이스크림이라서 메로나 아닌가? 도대체 망고맛이면 망고나, 바나나맛이면 바나나나가 맞는 것 같은데 망고맛 메로나, 바나나맛 메로나라니...... 저것들은 메로나가 맞는가? 아니면 메로나의 탈을 쓴 가짜 메로나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미궁에 갇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이다. 그와 관련된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프로크루스테스, 스키론, 아리아드네 등등- 여기서는 '테세우스의 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테세우스의 배는 상당히 유명하고 재미있는 사고실험이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뒤 아테네로 돌아오는 길에 탔던 배를 아테네인들은 오랫동안 보관하였다. 기나긴 세월 동안 썩어가는 판자는 하나씩 제거되고 새로운 판자로 교체되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부품이 계속해서 바뀌다가 결국 최초의 부품은 단 하나도 남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하는 이야기이다.
무언가를 무언가로 정의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인가? 테세우스의 배는 아테네와 크레타를 왕복하며 영웅 테세우스의 업적 그 자체의 상징이 되었다. 그 배에는 테세우스가 보낸 시간과 고난과 성취가 실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의 손길 아래서 그 수명이 다해가는 몸을 고치기 위해 하나 둘 부품을 갈아치우기 시작한다. 처음엔 판자 하나였을 것이다. 못 몇 개가 뽑혀나간 뒤 새로운 판자가 덧대지고, 다시 못 몇 개가 판자를 고정했을 것이다. 그래도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였다. 바뀐 것은 극히 일부이니까. 그리고 이런 교환은 시간이 지나며 계속해서 발생한다. 어쩌면 절반쯤 바뀌었어도 테세우스의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율이 50%를 넘어간다면? 70%라면? 99%라면? 그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일까?
메로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차피 메로나 안에 진짜 멜론이 몇 퍼센트나 들어있겠는가? 그냥 멜론 맛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그 맛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부드러운 식감과 연녹색 색감까지 구현해낸 아이스크림의 이름을 메로나라고 지었을 뿐이다. 그리고 하루 이틀 존재했던가 메로나가? 무려 30살이다. 이 글을 적는 타자보다 나이가 많고, 분명 내가 죽은 뒤에도 오랜 세월 빙그레가 폐업할 때까지 사람들의 여름을 책임질 것이다. 부품이 싹 바뀌었어도 여전히 전시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리는 오래된 테세우스의 배처럼 모양과 손잡이 빼고 맛도 색도 싹 바뀐 메로나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메로나라고 불릴 것이다.
단순한 외형이나 성별 따위가 어떠한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믿는 사람은 요즘 사회에서는 보기 드물 것이다. 십인십색이라, 모든 사람은 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그가 보인 모습을 통해 그를 규정한다. 밥 먹는 습관, 종교, 키와 몸매,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나를 대하는 말투, 어른이나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 등 복합적인 것들을 통해 '아 그 친구 정말 괜찮은 친구지!'라고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단순히 이 사람이 키가 작아서, 돈이 적어서, 학력이 안 좋아서 '다른 지성이나 인격적인 부분들도 결함이 있을 것이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라. 갈등과 분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귀 기울이고 관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A를 A로 규정하는 그 무엇을 찾고 난 뒤에 그 사람을 평가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