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반을 사는 마음

by 루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 (광주심포니, 임윤찬)


오랜만에 중고서점에 들렀다. 책이 아니라 음반을 보러 간 것이었다. 어쩐지 무언가를 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무엇을 살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쇼핑은 꽤나 큰 설렘을 준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해도 괜찮다. 최근 빠져 있는 음악가의 음반을 발견한다면 굉장한 행운이리라.


날이 풀려서 외출에 드는 품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느긋하게 걸었다. 서점 입구에 들어서면 곧장 음반 코너가 보인다. 사분의 일 정도가 클래식이고 나머지는 대중음악이다. 대중음악 음반은 인터넷에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반 코너를 기웃거리는 사람은 드물다. 클래식 코너를 보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그런 장르에서 함께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괜히 동질감이 든다. 내가 서점에 도착했을 때는 덩치 큰 금발의 손님이 음반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옆을 기웃거리자 그가 살짝 비켜 주었다. 얼마 안 되는 클래식 음반이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려면 다른 장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름이 죄다 깨알같은 크기의 영어로 적힌 탓이다. 가끔 러시아어나 프랑스어도 보인다. 그러니 처음부터 목표하는 음반이 있었을지라도 하나하나 눈을 게슴츠레 뜨고 살펴보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내악과 독주곡, 협주곡과 교향곡을 구분해 두었다는 점이다. 내가 협주곡 코너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피고 있을 때, 먼저 와 있던 이는 실내악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폈다.


클래식을 좋아하기는 하나 작곡가는 많고 연주자는 더 많다. 내가 아는 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하나하나 들어보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는 이름을 발견하는 게 먼저다. 멘델스존, 바흐, 생상스, 프로코피예프, 이 무지치의 <사계>, 나는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2003년도 쇼팽 음반 앞에서 손을 멈췄다. 무려 23년 전 음반이다. 누가 이런 걸 중고시장에 내놓았을까. 활동기간이 긴 사람은 중고시장에 나오는 매물도 많다. 지금 한창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것은 절대 중고로 나오지 않는다. 발매했을 때 사두지 않으면 영영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클래식 음반은 무한정 찍어내는 게 아니고, 한 사람이 한두 장 사면 족하는 탓이다. 아이돌 앨범처럼 무작정 사서 팬사인회 티켓을 얻거나 포토카드를 모으는 게 아니라는 이유도 있다.

사실 그런 이유를 따지자면 클래식 음반을 살 이유는 없다.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에서 고음질의 음악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시대에, 플레이어가 필요하고 공간 차지까지 하는 실물 음반이라니. 그것도 케케묵은 고전음악을. 음반 구매에 특혜가 있다면 글쎄, 예상치 못한 연주자의 포토카드와 인터뷰?


하나 말해두자면, 나는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음반 하나를 위해 오디오를 구비해둔 사람이다. 그야 오디오가 있으면 컴퓨터에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긴 하다만(항상 폰으로 듣는다), 어쨌거나 오디오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는 CD에 있는 것이다. 오픈 버튼을 누르면 얇은 슬롯이 안에서 나온다. 그 위에 더 얇은 CD를 얹고 톡, 손끝으로 밀어 주면 스르륵 소리를 내며 다시 들어간다. 안에서 CD가 돌아가면서 작은 소음을 낸다. 소음이 끝나면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당연히 노트북이나 핸드폰 스피커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 오디오가 아무리 저가 보급형 오디오라도 최소한의 이름값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음질을 위해 음반을 사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그보다는 음반이 가진 물성에 매번 매혹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카세트테이프부터 스트리밍까지의 역사를 거쳐온 세대다. 물리적 버튼과 가상의 디지털 작동 방식에 모두 익숙하다. 하지만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작동하는 것에는 묘한 쾌감이 있다. 딸깍 소리가 나는 '진짜' 버튼과 손으로 하나하나 번거롭게 꺼내야 하는 CD. 원하는 구간으로 점프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속성. 무한한 알고리즘의 수동성이 아니라 유한한 소장품 중에 골라 듣는 능동성. 그게 좋아서 나는 음반을 사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클래식 음악은 이미 아날로그의 속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는가.


다른 걸 구경하는 와중에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음반을 발견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22년도 음반인데 새 음반 코너에 앉아 있었다. 어쩌다 여기 계시는지 알 길이 없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윤이상, 바버, 몸포우와 스크랴빈의 피아노 앙코르까지 야무지게 수록되어 있었다. 함께한 오케스트라는 홍석원 지휘자가 이끄는 광주심포니. 홍석원 지휘자는 한때 부산시향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해서 굉장히 친숙하다. 나는 당장에 음반을 계산해서 갖고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오디오를 켜고 CD를 넣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순식간에 방을 가득 채웠다.

서점에 걸어가서, 손으로 비닐을 뜯고, 조심스럽게 CD를 꺼내서, 오디오 버튼을 누르고 재생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거친 클래식 음반. 지금 듣는 음악에는 200년이라는 시간에 그 순간들이 더해져 있다. 들을 때마다 낡아가면서 더 아름다워지리라,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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