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하는 마음

by 루체

▶리스트, 사랑의 꿈(pf.노부유키 츠지이)


작년 가을, 동네 꽃집에서 화분을 하나 샀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했다. 새 집은 작지만 해가 아주 잘 들었다. 이런 곳이라면 식물을 좀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꽃집을 매일같이 지나치면서도 선뜻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처음으로 산 식물이었던 유칼립투스는 한 계절도 버티지 못했고, 마트에서 산 테이블 야자는 이 년 정도를 살다가 내 손을 떠났다. 이후에도 식물을 두어 개 죽인 전적이 있었다. 그냥 방치하면 된다던 선인장도 죽였으니 나도 소위 말하는 식물계의 저승사자인가 싶었다.


그러던 중에 민생지원금이라는 것이 들어왔다. 그동안 못 사먹던 과일도 사고, 밖에 나가서 제대로 된 밥도 사먹었다. 마지막 남은 지원금으로 산 것이 식물이었다. 자전거를 꽃집 앞에 대어 놓는데 괜히 설렜다. 얼굴도 모르는 강아지나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기분이었다. 방이 좁아서요, 해는 잘 들어요. 책상에 놓고 키울 만한 게 있을까요. 자그마한 체구의 사장님은 꽃집 안을 곰곰이 둘러보시더니 몇 가지를 권하셨다. 다육식물이 작고 키우기 좋다는 말에, 다육이는 별로라고 손사래를 쳤다. 선인장은 어딘지 모르게 무서운 구석이 있었다(애호가분들께 미리 사과드립니다). 그보다는 넓고 푸릇한 잎으로 시야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작고 동그란 잎을 가진 것들도 예뻐 보였으나, 너무 가녀려서 금방 죽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저렴한 가격까지 원하니 사장님이 꽤 곤란해 하시는 게 보였다. 다행히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을 들었는데 다음날 바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면서, 물을 줄 때는 화분받침을 빼고 물이 충분히 빠지고 나면 다시 받쳐두라고 일러 주셨다. 나는 그 말을 아주 충실히 이행했다. 창가 쪽에 내놨더니 해가 너무 강한 것 같아서 안쪽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또 잎이 마르기에 물을 열심히 주었다. 어느 날 잎을 만져보았더니 손 안에서 파사삭, 바스라져버리고 말았다. 미처 한 계절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내가 또 뭘 잘못한 거지. 다행히도 식물은 잘못 키운다고 해서 그 애가 나를 원망하거나 윤리적인 문제가 따르지 않는다. 그냥 내 기분이 착잡할뿐이다.
커다란 잎이 몇 개 더 마르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가지째 떨어졌다. 나는 '이번에도 안 되겠구나' 생각하며 그냥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화분을 내어 놓았다. 남은 잎은 고작 두 개였다. 완전히 죽으면 화분을 비울 생각이었다. 녀석은 그렇게 얼마인지 모를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녀석을 다시 발견한 건 겨울의 한가운데였다. 그러고 보니 화분이 있었지, 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죽으라고 내놓은 녀석이 새 잎을 내고 있었다. 뽀얗다고 느껴질 정도로 옅은 연두색 잎이. 아기 손처럼 자그마한 것이 홀로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음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고서 녀석을 화장실로 데려갔다. 바짝 마른 흙에 물을 주고 반쯤 말라버린 기존의 잎에도 물을 뿌려주었다.
이 한겨울에, 물도 바람도 들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꼬물꼬물 새 삶을 시작한 녀석. 애잔하다고 해야 할지.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어제 김금희 작가의 <식물적 낙관>을 읽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새 보금자리의 온도와 습도에 적응하느라 멈춰 있는 식물. 사람이 손을 대기도 전에 거침없이 가지를 툭툭 떨어뜨리는 식물. 과한 관심이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아이들.
나는 그 기분을 잘 아는데. 나에게도 새로운 잎을 내기 위해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던 날들이 있는데. 긴 시간을 들여 뻗은 가지를 미련없이 떨어뜨렸던 순간, 바깥의 온도가 맞지 않아서 움츠렸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화분이 뭐라고. 식물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지금 녀석은 새로운 잎을 세 개나 냈다. 처음 나왔던 어린잎은 벌써 청소년이 되었고, 한가운데서 뻗어나온 아이는 위를 향해 쑥쑥 뻗어 나가고 있다. 한 번 돌아볼 때마다 눈에 띄게 자라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나 잘 자랄 수 있는 것을 일찍부터 포기하려 했다니. 저 작은 잎이 몇십 배는 큰 내게 용기를 주고 있다. 새로운 시작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 것이라고. 뿌리만 살아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화분은 더 못 사겠다. 그냥 물에 담가서 키울 수 있는 스킨답서스를 몇 뿌리 샀다.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 화분 하나와 세 개의 물병과 함께 파릇하게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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