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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인생의 나날 중 어느 추억

[수필]


 나는 인문학의 힘을 믿기에, 
남들이 하기 어려운 선택을 했으며, 
그 길을 힘차게 걷기 시작했으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이번 생일에 큰 선물을 받았다. 오래전 제자에게서 반가운 연락이 온 것이다.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제 인생의 나날들에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항상 감사드려요. 저는 열심히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사히 전역해서 꼭 찾아뵐게요. 코로나바이러스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나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 내 수업에 참여했던 제자였다. 2011년경 만나 여러 일들을 겪으며 함께 지내 온 나날들, 8년간 함께 한 제자였다.


   얼굴 윤곽이 뚜렷하고 커다란 눈에 오뚝하여 잘생기다 못해 오히려 차갑게 보이는 외모와 달리 마음 따뜻한 아이였다. 아니, 오히려 촌스러운 아이였다. 너무나 깔끔해서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빈축을 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벽증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친구들은 그것을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시의 어느 작은 동네에 사는 그 아이들은 말썽을 부려도 같이 부리고 도망을 가도 같이 다녔다. 

  무슨 일이 있어 모두 소환하려 했을 때 한 녀석만 잡으면 다른 아이들은 굴비처럼 줄줄이 엮어 나타났다. 

  그 중 이 아이는 눈치도 빠르고 재치가 있어서 친구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훌륭한 언변으로 어른들을 설득하여 위기에서 구해주어 또래의 자랑이 되었다.      


  ‘참말로 오래간만이구나. 너한테 축하받으니 참 좋다. 전역하면 꼭 한 번 오너라. 친구들이랑 같이 와서 요리도 해서 먹고 쉬다 가거라.’


  제자는 행복한 느낌이 전해지는 답을 보내왔다. 


 ‘꼭 가 볼게요. 선생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훈련받고 몸이 피곤할 텐데 이제 제법 계급이 올라가 여유가 생겨서 연락한 걸까,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준 이 전근대적인 시간적 여행이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의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느려지더니 요즘은 뚝 멈춰 버렸다. 

  영업사원들이나 외부 출장이 많았던 사람들은 충분히 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빛의 속도로 디지털의 세계를 따라가던 청년들은 문득 디지털의 감옥으로부터 삶을 차단당했다.

   이 제자도 세상의 시간을 뒷걸음질 치다가 어느 추억의 시간을 만났던 건 아닐까? 


제자들이 <미루나무숲에서>라는 이름의 
교육 공간의 일부인 혜문정(慧文庭)을 왕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애들 중학교 시절에는 요리 교실을 자주 열었다. 

  요리할 장소를 찾지 못해 고생하다가 시민단체의 도움을 얻어 카페를 빌렸다. 

  그렇게 요리 교실과 독서토론을 함께 했던 그 시절과 그 외 여러 활동들을 했던 추억의 시간이 짧지 않았다.     

    제자들이 <미루나무숲에서>라는 이름의 교육 공간의 일부인 혜문정(慧文庭)을 왕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아이들이 현재의 학생들과 만나면 선·후배 관계가 형성되는 일이며 옛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현재의 삶에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년 정도 전이었지 싶다.

  이 아이가 고2가 되어 야외활동을 조금 줄이자 같이 하던 어린 동생들이 형이 보고 싶다고 야단했다. 

 그다지 싹싹하지도 않았던 형이었다 싶었는데 동생들에게는 형이 멋져 보였다 한다. 

 친구들에게는 깐깐하게 굴었어도 동생들에게는 늘 웃어주고 작은 것이라도 챙겨주었다 한다. 

하루는 어찌나 형을 보러 가자고 하는지, 제자에게 전화해서 잠깐 집 밖으로 나와달라 부탁했다. 

  제자가 나오자마자 초·중등 4~5명의 동생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형아!!!”

  하고 안겨 버리니 당황스러워하더니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사줄게. 가자.”


 아이들이 좋다고 형의 옆에 붙어서 조잘대며 같이 시장으로 갔다. 

 그 모습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손에 아이스크림을 두세 개나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형이 많이 먹어도 된댔어요!”


  “마침 아이스크림 할인 중이래요!”


  내가 꾸중할까 싶어 한 녀석이 형의 뒤로 가 숨었다.


  “동생들이 니 용돈 털어가서 우짜노?”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할인 중일 때 많이 먹어야죠. 이 정도는 사 줄 수 있어야지요. 형인데.”


  아이들은 그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손에 흘러 내릴 때까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형 옆에서 조잘댔다.

  형에게 여자친구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던 것 같다. 

  형은 너무 잘 생겼으니 여자들한테 인기 좋을 거 같다고 물으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던 제자였다. 

 왁자지껄 시끄럽게 굴다가 아이들 데리고 돌아서는 뒤에서 핸섬보이 답지 않게 손을 들어 흔들며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리던 아이였다.  

   

  도시에서 아날로그적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자라는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해줄 만한 신체활동과 감각경험 활동은 매우 의미 있다. 놀이와 여행 그리고 여러 가지 신체활동을 통해 자신 속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과 자전거 여행, 도보여행, 자연 생태여행, 역사와 문화여행 그리고 ‘평화의 밥상'이라는 요리 교실을 간헐적으로 열고 등산, 단전호흡, 수영, 배드민턴, 공으로 하는 운동 등을 접목해서 아이들과 함께 뛰었다. 

  아이들의 교실은 학교라는 건물 속 작은 공간만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땅과 바다, 하늘….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지혜를 일깨워줄 수 있는 교실이 된다. 그런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글쓰기가 낯설지 않다. 자신이 몸으로 느낀 것을 쓰기를 어려워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된다. 사람다운 사람의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나는 인문학의 힘을 믿기에, 남들이 하기 어려운 선택을 했으며, 그 길을 힘차게 걷기 시작했으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내가 한 일은 조그마한 일에 불과하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후회할 일이 없다.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햇수를 헤아려보니 그 아이들을 만난 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그 어리던 아이가 군대에 갔으니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까. 그땐, 형한테 아이스크림 얻어먹은 아이들을 불러 볼까. 그 멋진 형이 이제 군대까지 마치고 정식으로 어른이 되었으니 앞으로 너희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 어렸던 꼬마들은 또 어떤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지, 생각만 해도 가슴 쿵쾅쿵쾅 뛴다. 제자가 제대하고 옛 친구들과 함께 오겠다고 연락이 오면 이렇게 말해야지.


  "너희들이 재료 다 준비해 와서 맛있는 거 해 다오. 그때처럼 난 너희들 해주는 음식 먹고 싶다. 인생의 어느 날 그 추억을 우리 다 같이 다시 만들자.”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제 인생의 나날들에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항상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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