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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영덕의 일출

[수필]


12년 전, 외로움에 사무쳐 영덕의 아침 바다, 
찬란한 일출을 서럽게 맞이했던
 까투리 할아버지의 외로움의 정체를 이제 나는 안다.




  어느 날, 나에게 걸려 온 전화의 주인공은 ‘까투리’라는 닉네임을 가진 영덕 바닷가에 펜션을 운영하는 노인이었다. 그분은 두 아이를 당신이 운영하는 펜션에 초대해 하룻밤 초대했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다. 무슨 이유인지 물어보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아가들이 너무 장해서…. 아직 어린데 자전거로 못 가는 데가 없잖아요. 대단하잖아요.”     


  정류장에 내려섰다. 우리는 자전거를 꺼내 정렬하고 각자 자기 가방을 맸다. 먼발치에서 자전거를 탄 분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분이었다. 펜션까지 길라잡이를 해주시기 위해 자전거로 마중을 나오신 것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헬멧 사이로 빗자루처럼 삐져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까투리 할아버지 뒤를 따라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분이 우리에게 내준 방은 동해의 이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펜션의 방 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방이었고 냉장고에는 먹을거리가 꽉꽉 채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다음 날, 우리는 짐을 풀어놓고 자전거를 타고 동해안을 달렸다. 가파른 언덕길도 길디긴 꼬부랑길도 아이들이 잘 달리자 그분은 소리쳤다.


 “어이구, 잘 탄다. 우리 아가.” 


  곧이어 당도한 어느 횟집. 까투리 할아버지는 이미 그 집에 음식을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는 허기가 져 이것저것 집어먹었다. 딸 아이가 조개껍데기를 잘 벗기지 못하자 그분은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이리 온, 아가. 할아비가 껍질 까 주마.”  

   

  그 길로 우리는 까투리 할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강구항을 샅샅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녁 늦게까지 영덕 바닷가를 달린 우리는 저녁이 되었을 때야 숙소에 들었다. 곧이어 그분이 냄비에 푹 삶은 꽃게를 들고 오셨다. 까투리 할아버지는 딸 아이 옆에 앉아서 꽃게 먹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한참 만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딸이 있었다우.” 


  꽃게의 속을 굵다랗게 잘 파낸 다음 딸아이 입에 쏙 넣어주면서 말씀하셨다. 


  “딸이 보고 싶다오.” 


  딸 아이는 어린 새가 먹이를 받아먹듯 덥석덥석 꽃게살을 잘도 받아먹었다. 


 “딸을 못 만난 지가 5년은 넘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질문을 하기가 조심스러워 그저 열심히 꽃게살을 파고 있었다. 


  “이 애가 우리 딸을 너무 많이 닮아서…. 웃는 모습도 영락없는 딸의 모습이라…. 이렇게라도 보니 이제야 살 것 같구먼.” 


  딸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던 모양이지만 딸과 왕래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사연일까.



  “저 아이의 모습이라도 많이 남겨 놓아야
나중에 덜 외로울 거 같아서….”  


  “국제기구에 직장을 얻어 외국에 간 지 오래되었지.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할아버지 딸은 왜 할아버지를 만나러 안 와요? 휴가도 없어요?”


  딸 아이가 맹랑하게 묻자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게, 휴가가 매년 있는데도 할아비한테는 오지 않는구나. 더 이상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할아버지의 눈꼬리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테라스로 나갔을 때 일찍 일어난 아이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서 놀고 있었다. 까투리 할아버지는 저 먼발치에서 큰 렌즈의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계셨다. 바다 사진을 찍으셨나 했다. 아침 인사도 드릴 겸 가까이 가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딸 아이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저 아이의 모습이라도 많이 남겨 놓아야 나중에 덜 외로울 거 같아서….”    

 

  동해 어느 바닷가에 해가 떠오른다. 

  그 해는 사방천지를 인간의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주고 외로움조차 채워줄 듯 살갑다.

  어느 한 노인은 어린 여자아이에게 앵글을 맞춘다. 

  아이는 해 속에서 뛴다. 해는 아이를 안는다. 

  노인은 해를 안은 아이를 찍으며 눈을 부릅뜬다. 

  그리워하지 말자고, 외로워하지도 말자고.

  아이의 웃음 서린 눈망울은 순수하고 고결하다. 

  노인은 그 아이의 눈망울 속으로 들어가 말하고 싶다. 


  ‘아가, 딸아, 너를 사랑한다. 보고 싶은 내 딸아….’


   그런 그의 속눈썹은 젖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인다. 


  ‘저 사랑스러운 아이의 눈처럼 맑고 아름다웠던 내게도 딸이 있었다. 그 아이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이 아비를 떠나갔다. 아비는 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지난날에 대해 참회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인가.’


   그분은 딸 아이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부모님 곁을 느닷없이 떠나지 말아라. 느닷없는 이별은 너무 힘들단다.” 


  노인은 이제 곧 떠날 채비를 하는 딸아이에게 말했다.

 

  “이 할아비는 곧 떠날 거다. 이 바닷가에서 혼자 사는 게 너무 외로워.”      


  어느 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여 휴가철이 가까워지자 비대면 여행이 유행이다. 연초에 시작된 바이러스 대란이 겨우 고비를 넘기고 여름 문턱에 오니 그 영덕 바다에 가 보고 싶어진다. 그날 보았던 일출의 장엄과 아이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던 까투리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12년 전, 외로움에 사무쳐 영덕의 아침 바다, 찬란한 일출을 서럽게 맞이했던 까투리 할아버지의 외로움의 정체를 이제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그 영덕을 찾아 동해안 도로를 걸어 함께 달렸던 자전거 바퀴 자국을 찾아보고 싶다. 

  신나게 바퀴를 지면에 그어대며 환하게 웃었던 두 아이가 강구항에 만들어 놓았던 드래프트 자국들.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서러운 지난 세월. 

  나에게 그 자국은 영덕의 일출을 바라보던 까투리 할아버지의 눈에 스며있던 아득한 그리움의 시 같은 것이다. 






아이는 해 속에서 뛴다. 해는 아이를 안는다. 
노인은 해를 안은 아이를 찍으며 눈을 부릅뜬다. 
 그리워하지 말자고,
 외로워하지도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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