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저 자연의 병풍,
바위가 저만큼의 폭으로 무늬를 가질 때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차고 넘쳤을까?
# 수락리 주상절리 #
아직 벼가 채 익지 않은 들판을 달렸다.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라 후덥지근하다가 선선한 느낌이 교차를 하는 이 계절의 이름을 여가을이라 부르고 싶다.
먼저 도착한 곳은 청송군 현서면에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 덩어리로 구성된 주상절리였다.
마을을 지나 큰 도로를 쭉 올라 언덕배기 끝의 이정표를 만났다.
‘여기는 청송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입니다.’라는 문구가 있고 바로 옆에 수락리 주상절리 안내판이 서 있다.
한참 만에 맞은편 산 쪽에 비스듬한 세로로 세워져 있는 절벽을 찾았다.
주상절리다.
계곡 물이 많이 불어 바위 아랫부분은 물속에 잠겨버려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건너편 산의 숲이 울창해서 바위를 쉽게 찾을 수도 없었다.
저 자연의 병풍, 바위가 저만큼의 폭으로 무늬를 가질 때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차고 넘쳤을까?
바위야말로 이 지구의 가장 충직한 기록물이 아닐까 싶다.
바위는 역사를 몸으로 말한다.
과거 그들이 무엇이었고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예고한다.
그와 더불어 모든 관계 맺는 존재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보여준다.
바위를 보면 나무를 보게 되고 물을 보게 되다가 결국 다시 산을 보게 됨으로써 그 자리에 존재한 비밀의 열쇠가 풀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럼으로써 인간의 문명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물결 속 무늬로 다시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가 자연물에 경외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될 이유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온 세상이 이 바람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 방호정 길 #
신성계곡 지질탐방 안내소에 들렀다.
‘산소 카페 청송군’이라는 작은 간판 아래 ‘청송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신성학습관’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근무 나온 안내원이 며칠 동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곡을 모두 돌아보기는 힘들 거라 한다.
방호정만 보고 다시 돌아 나와 자동차를 타고 고와리 본마을 까지 가라고 안내해준다.
계획이 틀어졌지만 서둘러 ‘방호정 감입곡류천’* 으로 향했다.
강 건너 조그만 정자가 보이고 계곡은 긴 동물이 꿈틀대며 기어 다니는 형상이다.
‘방호정’은 단아하고 점잖았다.
사선으로 뉘어진 바위 절벽 위에 초연하게 서 있는 정자가 수수하게 손님을 맞는다.
정자 끝에 서서 계곡 쪽을 바라보니 부모를 생각하며 이 집 지었던 아들의 사모곡(思母曲)이 물 따라 흘러가는 듯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강가에 동그란 자갈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이 얼마 만에 만나보는 강가의 자갈돌인가.
어린 시절, 낙동강 지류 쪽에서 살 때 아이들과 강가에서 목욕하던 그 여름날엔 이런 뜨거운 자갈돌을 밟으며 폴짝폴짝 뛰곤 했다. 뜨거운 감자보다 더 뜨거운 게 여름 강바닥의 자갈이었다.
돌이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그리워 불쑥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강가를 걸어본다.
어린 여자아이가 조그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다.
기우뚱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평행감각을 유지한 채 나풀나풀 걷고 있다.
다시 바람이 분다.
온 세상이 이 바람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저 물을 타고 내려오는 듯하다.
여가을의 햇발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날의 추억에 잠겨 강가를 걷던 내 앞에 뭔가 다가온다.
뱀이다!
식은땀이 나고 몸이 떨린다.
도망을 어찌 가나!
뱀은 내 앞까지 와서 멈췄다가 긴 혀를 날름거리며 주변을 감지한다.
꼼짝도 못하고 섰다.
‘뱀에 물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119를 불러서 여기요 저, 뱀에 물렸어요. 그러다 독이 온몸에 퍼져 그대로 쓰러지면? 혹시 내가 의식불명이 되어도 찾아올 수 있게끔 GPS를 켜야 할 텐데 어떻게 해서든 핸드폰을 꺼내야 할 텐데!’
속으로 외쳐 보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 일을 어쩌나!’
하면서 나는 이미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상상을 하고 있지만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뱀은 강물 쪽으로 머리를 서서히 돌려 여유만만하게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 세찬 물속을 늠름하게 헤엄쳐 저쪽 건너까지 가는 것이 아닌가.
긴장이 풀리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 강가에 물뱀이 더러 살고 있었지.
본시 물을 견딜 줄 아는 녀석이었는지라 스스럼없이 요동치는 계곡물 쪽으로 방향을 틀었더란 말이지.
그 사이 햇살이 더 뜨거워진데다 아래쪽으로는 좀 더 굵은 돌들이 많아서 신발을 다시 신는다.
저 멀리 징검다리가 보인다.
안내원이 말씀하셨던 그 징검다리구나.
그런데 다리가 훤하게 보여 건너갈 수 있겠구나 싶어 냅다 달음박질을 쳐서 징검다리까지 왔다.
그러나 징검다리 끝부분에 가 보니 더 이상 건너기 어렵게 되었다.
앞부분은 큰 돌이 촘촘하게 서 있는데 뒤쪽 징검다리 쪽은 간격이 너무 넓다.
비 때문에 중간의 돌이 떠내려가 버렸던 모양이다.
거기다 물이 그쪽으로 급하게 돌아간다.
다리가 짧으니 뛰어야 갈 수 있을 텐데 내 몸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혹시 이곳에서 잘못되면 또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나를 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자연에 나왔을 때 가장 나약한 것이 인간이리라.
어떤 장비의 도움 없이는 극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구의 노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이 자연에 도전장을 내밀며 우월을 과시하는 호모사피엔스.
역사는 현재 우리가 아직도 철기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더라.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철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것 없이는 문명을 발전시킬 수 없다 하더라.
그러니 이 원시의 현대인들아, 세상을 모두 장악할 듯하다가 자연에 와서 맨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었뇨!
징검다리 건너기를 포기하고 돌아 나오다 보니 계곡 끝 쪽에 나무들이 심하게 부러져 있다.
어떤 나무는 허리까지 흙탕물이 머물다 갔다.
계곡 끝의 고인 물웅덩이에는 상류 쪽에서 떠내려온 사과들이 보인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가끔 홍수가 나곤 했다.
둑 너머 강물이 넘쳐 오르면 황토물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온갖 것을 쓸고 내려갔다.
수박이나 과일도 많이 떠내려갔지만 어떨 땐 황소나 돼지 같은 가축들도 괴성을 지르면서 물에 쓸려가기도 했다.
둑에 서서 물 구경 하던 어른들이 그것들을 쳐다보며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어린 마음에 저 수박 하나 건져서 먹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생명의 죽고 사는 일은 엄연히 하늘의 일인 것을
이곳에 와 보고서야 깨닫는다.
문명 속에서 인간은 위대한 듯 보이는데
역시 그들은 자연의 손아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 신성리 공룡 발자국 #
방호정을 돌아 나와 신성리 공룡 발자국 쪽으로 간다.
의외로 공룡 발자국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들이 뛰어놀았거나 이동했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땅은 본래 공룡들이 놀던 곳이었지만 지각변동으로 인해 지금은 절벽이 되어 있다.
이것 또한 인간이 알 수 없는 일 중 하나이다.
생명의 죽고 사는 일은 엄연히 하늘의 일인 것을 이곳에 와 보고서야 깨닫는다.
문명 속에서 인간은 위대한 듯 보이는데 역시 그들은 자연의 손아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멋진 풍경을 보고자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이 땅을 정성스레 걸어보는 것으로써 나는 겨레의 땅에 예를 표하고 싶었다.
그래서였던지 청송 신성리 계곡은 땅을 걸어보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작년, 여가을에 걸었던 그 신성리 계곡은 일 년 동안 또 다른 자연의 역사를 새기고 있을 것이다.
자연에 나왔을 때 가장 나약한 것이 인간이리라.
어떤 장비의 도움 없이는 극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구의 노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이 자연에 도전장을 내밀며 우월을 과시하는
호모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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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투어리즘 : 자연 지리적, 지질학적 유산을 이용한 관광
*감입곡류천 : 경북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656. 강이 마치 뱀 기어가는 것과 같이 구불구불 휘어진 상태의 모양이나 현상이라 하여 불리워진 이름.
*방호정(方壺亭)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51호, 광해군 11년에 조준도 선생이 생모 권씨의 묘가 바라보이는 곳에 새운 정자로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풍수당’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