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둘 Mar 29. 2023

제주도 여행길에서

[수필]


  그 아이는 팀원들을 확실하게 속였나? 

 우리는 멋지게 그 아이에게 속았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다. 




   세상 만물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야기는 강처럼 흐른다. 

  강물이 고이면 썩듯이 이야기가 멈추면 우리의 삶도 없다.

   흐르는 강물 속에서 물고기와 모래알이 만나고 모래알과 풀들이 만난다. 

  이들의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 이 세계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나는 그런 세계의 경험 하나를 독자들께 소개해 주고자 한다.


  2018년,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를 향했다. 

  제주라는 섬과 바다 이야기를 들어보는 여행이었다.

 첫날, 비행기가 뜨자마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남자아이가 갑자기 몇 살 나이 많은 형에게 묻는 것이다.


  “형아, 우리 외국 가는 거지?”


  그 아이는 


“뭐? 외국이라고…?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야. 한국의 제주도야.”


   라고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땅이라는 너무나 상식적인 말을 덧붙이면서. 비행기를 탔을 때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기도할래요. 이제 외국에 가는 거니까 무사하게 해달라고요.”


   나는 다시 한번 더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는 제주도에 가는 것이며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라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에 내려 맛있기로 소문난 김밥을 사서 먹으며 거문오름에 다녀온 뒤, 알고 지내던 애월리에 사는 화가의 집에 가서 이야기 나누다 그림을 그렸고 협재해수욕장으로 가서 멋진 일몰을 보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지친 몸을 회복시켜줄 맛있는 저녁으로 갈치찌개 집으로 갈 때까지는 말이다.

  그 아이는 갈치찌개를 한 숟갈 먹다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제주도 갈치가 특산물이라 일부러 맛있는 집으로 데려왔는데 너무 매웠나 싶어서 한 숟갈 국물을 떠먹어보니 조금 맵기는 하다. 


  “매워서 그러니? 너는 갈치구이를 먹어라.” 


  하고 밥상을 바꿔줬는데도 계속 앉아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왜 우는지 물어보니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렇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어머니는 네가 이렇게 우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다. 이따 어머니와 통화하게 해주마. 하고선 밥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선생님, 우리 애가 제주도를 외국으로 알고 있어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비행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분명히 외국에 와 왔다고 하네요.


  숙소에서 모두에게 부모님과 통화를 허락했더니 좀 있다 위층에서 우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 했더니 또 그 아이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운다. 

  통화를 끝낸 아이의 눈 주위가 벌겋다.

   바깥으로 나와 아이 어머니와 통화했다. 

  아이가 울어서 놀라지 않았는지 여쭤보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생님, 우리 애가 제주도를 외국으로 알고 있어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비행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분명히 외국에 와 왔다고 하네요.”


  “어머니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하던데요.” 


 “외국에 왔다고 생각하고 불안해서 저를 찾는 거지 정말로 제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울 때마다 혼 내주세요.”


  아이가 무슨 연유로 제주도를 한국 땅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태가 더 커지지 않으려면 아이에게 제주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걸 다시 한번 더 분명하게 인지시켜줘야만 했다.


  그다음 날, 아이는 아침밥 먹을 때부터 숙소를 나설 때까지도 계속 울었다.

  순간순간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설상가상으로 그다음 날 여정의 첫 코스가 마라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에 비행기 타고 와서 외국이라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배를 타고 다시 섬에 들어가니 또 다른 외국에 왔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전체를 위해 계획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 마라도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예상했던 대로 아이는 또 울었다. 마라도 들어가는 뱃머리에서, 마라도 내려서 섬을 걸어 다니는 길 위에서, 심지어는 바람이 너무 불어 몸이 날아가려 할 때, 아이들이 신나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 때도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많은 눈물이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 흘러내릴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마라도에는 2시간 가까이 머물러 있었는데 아이들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름다운 마라도를 즐겼다. 

  아이들이 마라도 바람에 흔들리면서 바람이 자기 몸을 때린다고 하면서 ‘슝슝놀이’를 했다. 

  몸이 풀밭 위로 떨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 아이도 같이 그 놀이에 참여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장난치고 소리 지르는 동안에도 눈물을 흘렸더란다.


  마라도의 바람, 작은 섬의 곳곳에 피어 있던 들국화, 

 온 세상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소리, 

  뚝뚝 떨어졌던 빗방울의 느낌, 

  쉼 없이 들이닥치는 제주 바다의 드센 바람…. 

  그날의 빗방울과 바람의 소리는 얼마나 강렬하게 우리 기억에 남게 되었는가.


  다음날, 동백동산에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명랑했지만, 사려니숲길을 지나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앞에서 소원을 빌다가 또 눈물보가 터졌다. 

  아이들은 이제 그 아이 곁에 가지 않으려 했다. 

  잠시 쉬어가자 하고 근처 벤치에 앉아서 시를 썼다. 

  모두에게‘소원 나무’라는 공통 제목을 주었다. 

  오메기떡을 먹으며 숲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숲에서 들려오는 “깍, 깍-” “깍, 깍-”까마귀 소리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또다시 울었다.

   잠시 후, 그림과 시를 받아 정리하면서 그 아이의 글을 보니 거의 유서(遺書) 같은 글이다. 

   자신은 외국에 나와 있고 고국에 있는 어머니가 그립고 가족들이 죽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과 혹시 죽게 되면 다음 세상에서도 꼭 가족으로 만나게 해 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내용이었다. 

  소원 나무 앞에서 울었던 건 기도하다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감동으로 밀려왔기 때문이란다.


  만장굴에 들어가서 또 울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씩씩했고 성산일출봉 올라갈 때도 가장 먼저 정상에 닿았고, 거기서 분화구를 보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쓸 때도 많이 웃었다. 

  우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지만 우리는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마침 배가 고픈 참에 들렀던 맛있는 카레 라이스 집에서도 재밌게 떠들고 카레밥도 맛나게 먹었다. 



  마지막 날 제주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대구로 돌아갈 때
모두 곤히 잠들었던  그 하늘 위에서
아이는 필사적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우려했던 바와 같이 그 아이는 지속해서 울었다. 

  너무 울어서 너 혼자 집에 가라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는 잘못했다고 하고선 또 울었다.

   마지막 날 제주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대구로 돌아갈 때 모두 곤히 잠들었던 

  그 하늘 위에서 아이는 필사적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대구 공항에 내려 어머니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며 보고 싶었다고 어리광을 부리며 눈물 펑펑 쏟는 그런 상상만 해 볼 뿐이었다.

  그러나 대구 공항에 내려 어머니를 보고도 인사만 하고 눈물은 커녕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게 아닌가?


  제주도 생태여행에서 아이들은 그림도 많이 그리고 시도 많이 썼다. 

  나는 그것을 잘 정리해서 자료집을 만들었다. 


‘2018, MNS 제주 자연생태 여행-제주의 어머니숲과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라는 표지의 그림은 그중 한 아이의 그림이다. 지금도 이 자료집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비밀을 말해야겠다. 

  그 애가 울었던 것은 정말로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 애를 울게 했던 건 바로 유튜브에서 보았던 비행기 폭발 영상 때문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탓이라는 것을. 


  어느 날 인터넷에서 비행기 폭발 장면을 본 이후로 자신도 비행기를 타면 폭발할 것 같아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했던 아이, 대구에서 제주도로 갈 때 비행기가 폭발해서 죽으면 어떻게 하나, 내려서 다닐 때 문득 들었던 생각은, 비행기가 폭발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것. 돌아갈 때, 비행기가 폭발하면 어쩌나 너무나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는 것.

   사람들한테 그렇게 말하면 겁쟁이라 놀릴까 봐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핑계를 댔다는 것이다. 

  더구나, 어머니가 자기를 겁쟁이라고 할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멋진 사나이가 될 아이라고 했다면서, 항상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말씀하셨다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기도 한다. 

  아이들이라고 위선과 가식이 없겠느냐마는 아이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건 이 사회, 그리고 기성세대의 무책임이다. 

  폭력적인 영상과 사진들을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노출하니 결국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고 그 피해자는 그 아이의 가족들이 된다. 

  결국 가족 구성원들의 심적 피해는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 


  그 아이는 팀원들을 확실하게 속였나? 

  우리는 멋지게 그 아이에게 속았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다. 

  아이가 자신의 공포를 다른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니 그것 자체도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제주도는 외국 아닐까?          







  세상 만물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야기는 강처럼 흐른다. 


이전 26화 인생의 나날 중 어느 추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