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열차 안에서 끝없이 용서의 길을 열어주는 동해의 뱃길,
그 속에서 펼쳐지는 웅장한 유치환의 시,
울릉도를 읊었다.
지난해, 교토에 입성해 일본에서 가장 크다는 비파호로 향했다. 비파호 동편으로 가는 기차에서 내리자 역 인근에서 우거진 단풍나무숲을 만났다. 우리 땅의 단풍과 다를 바 없는 붉은빛이 너울대는 그 단풍 터널을 통과하다 어느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조선통신사의 길’이라는 노랑 바탕의 현란한 깃발이 곳곳에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깃발에는 조선통신사를 칭송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조선통신사’라니, 왜? 일본에서 왜 조선통신사를?
주변을 살펴보니 작은 성(城)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안내인에게 조선통신사 행사를 물어보니 일본에서는 조선통신사를 기념하는 축제를 많이 연단다. 마침 이 고장은 조선통신사가 지나갔던 길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 행사를 한다는 것이고 아쉽게도 오늘은 행사 시간이 끝나버렸으니 내일 다시 와 달라는 것이다.
주최 측이 어떤 곳인지, 이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일은 한국에서 가수가 와서 축하공연을 하기로 되었으니 꼭 들러 달라는데 그럴 수가 있나. 나는 그날 저녁에 다시 교토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나 왜?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사를 대대적으로 연단 말인가. 안내문을 더 읽어보니 ‘조선통신사 전국교류회 나가하마 대회’라는 제목과 ‘조선통신사에 대하여’라는 설명글이 있었다. 11월 23일은 한국 가수 공연이 있고 23일은 한국 민속예능 연무가 있고 12월2일까지 조선통신사 기획전을 진행 한다고 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내려놓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문화교류를 통해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새로운 정치체계를 마련하려는 방안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전국적으로 환영했다는 정치적 행위는 어느 정도 이해 가나, 지금까지도 이를 계승해나가고 있는 모습과 여전히 제국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이들의 너무나 속 보이는 행보가 아이러니할 뿐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민족이라는 생각과 아쉬움이 교차할 무렵 비파호에 석양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급히 지나가다 잘못 들어선 조그만 공터에서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모르게 “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뒤로 자빠졌다. 내 다리는 그 땅에 붙어서 꼼짝하지 않았다. 가슴은 뛰고 동공은 커졌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고 숨이 거칠어졌다.
별안간 얼음이 되어버린 내 앞에, 내 앞에는 큰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음습한 곳, 칙칙하고 물기가 흥건한 그 땅 위에 솟은 동상은 늠름하게 서 있었다. 일본어가 서툰 나였지만 이 동상은 한 눈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설마설마하며 겨우 일어서서 가까이 가 안내판을 읽었다. 그리고 나자,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이었다.
아, 어떻게 이곳에서 그의 동상을 만난단 말인가. 어찌하여 나는 파렴치한의 소굴에 내 발로 찾아왔더란 말인가. 조선을 휩쓸며 만행을 저지른 그를 칭송하며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귀 앞에 서고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
왜, 내가 자처해서 온 이국땅에서, 이 아름다운 단풍나무 숲에서 이런 상황에 맞닥뜨려졌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재난이다. 뜻하지 않게 당하게 된 천재지변이다. 꿈에도 이름 불러보고 싶지 않은 조선 침략자가 10년이나 지내며 군사훈련을 했다는 곳이 이 나가하마성*이었을 줄이야! 그리고, 주둔했던 그 성이 비파호 바로 앞에 서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마치 일본 전국시대의 우물 속에 빠져버린 듯 살 떨리는 분노가, 치욕이, 어찌할 수 없는 뼛속 깊이 스며든 복수심으로 몸이 타 버릴 것 같다.
호수 저편 건너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 바다를 따라 쭉 따라가 보면 우리의 땅이 있을 것이다. 이 호수를 지나 바다에서 출발하여 내 나라 바다로 노 저어 갈 수만 있다면, 나침반을 들고라도 우리 땅에 입성할 수만 있다면 그 망망대해를 지나 가장 먼저 일본해(一本海)가 아닌 동해(東海)를 만날 것이다. 그 동해는 처연히 조선의 혼이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곳은 섬의 이름도 아니고 땅의 이름도 아닌 채로 오늘도 대한민국의 동해일 것이다.
서둘러 다다른 비파호 석양 속에서 원한으로 조선 출병의 명을 받고
군사훈련을 받던 어느 이름 모를 왜(倭) 병사들의 고단한 탄식 소리 들린다.
그들 또한 생명이기에, 그예 가련하구나.
아, 이 왜국에서 먼 옛날 조선을 짓밟은 어느 한 인간의 동상 아래서 나는 왜 이다지도 동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은가. 그 동해에 떠 있는 조선의 의연한 섬들. 울릉도와 독도라는 이름은 어찌 이리 가슴 저리게 그리운가! 나도 모르게 읊게 되는 유치환의 시 ‘울릉도*’는 왜 이리도 눈물 나게 거룩하여 가슴을 울리나!
싯푸른 조국의 동쪽 바다가 이처럼 처절하게 그리운 것은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그 옛날, 우리를 피로 짓밟았던 적국 땅덩어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노략질을 일삼던 일패가 감히 한반도를 넘보던 그 진흙탕 같은 역사의 점획(占劃)을 이 나가하마 성에서 그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랴, 선조의 굴욕을 내 무슨 수로 씻어주랴. 어쩌랴, 내 어쩌랴!
저 비파호 건너, 더 건너 동해는 핏물의 바다일게다. 나가하마 성에서 조선 침략을 준비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떨군 피가 그 바다까지 흘러갔을 거다. 그는 천하를 손에 넣고자 하여 삶을 피로 물들이다가 결국 음흉하고 칙칙한 나가하마 성 뒤 초라한 어느 동상으로, 이끼를 온몸에 두른 채 비루하게 서 있다.
그의 흉흉한 동상 앞에서 마음 가다듬고 뒤돌아섰다. 곧 돌아갈 곳은 내 조국, 언젠가 그대가 한입에 삼키려 했던 조선 땅, 이제는 그대들의 총칼로는 도저히 쓰러지지 않을 21세기의 대한민국. 코로나바이러스를 맞아 용맹스럽게 싸워 이겨낸 내 나라 대한민국은 이제 그대들의 약탈과 침략을 오히려 가련하게 보고 있다. 그 옛날처럼 이제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며 어리석지 않노니!
나가하마 성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녹슨 동상 앞에서 머뭇거릴 동안 기어이 비파호의 석양은 검어졌다. 서둘러 다다른 비파호 석양 속에서 원한으로 조선 출병의 명을 받고 군사훈련을 받던 어느 이름 모를 왜(倭) 병사들의 고단한 탄식 소리 들린다. 그들 또한 생명이기에, 그예 가련하구나.
열차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멀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상이 넋을 잃은 채 서 있고, 이 나가하마 성 앞에서 드세게 휘날리는 저 ‘조선통신사의 길’ 행사 깃발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짐짓 바람 속에서 온몸 흔들어 댄다.
자식이 궁지에 몰리면 부모를 찾듯 나는 지금 내 부모를 찾고 있다. 나를 품어주고 안아주고 지금껏 키워준 내 나라 내 땅의 흙냄새를 맡고 싶다. 나는 열차 안에서 끝없이 용서의 길을 열어주는 동해의 뱃길, 그 속에서 펼쳐지는 웅장한 유치환의 시, 울릉도를 읊었다.
싯푸른 조국의 동쪽 바다가 이처럼 처절하게 그리운 것은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그 옛날,
우리를 피로 짓밟았던 적국 땅덩어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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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하마성 : 일본 혼슈(本州) 중서부 시가현 나가하마(長浜)에 있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성. 1336년 처음 건축되었고 전국시대말기인 1576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축성해 오사카로 옮길 때까지 약 10년간 거성으로 사용했다. 에도시대 전기 1615년에 폐성되었으며 현재 몇 개의 돌담과 우물만이 남아있는데, 옛 건축의 잔존물은 히코네성 등으로 이축 되었다가 1983년 시민의 기부로 나가하마성의 한 동을 복원했으며 현재 나가하마성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치환 시, ‘울릉도(鬱陵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