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단조롭고 반복된 삶 속에서
어떤 이들은 작은 생활의 행복을 느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정들었던 고향 마을을 떠나왔다.
익숙했던 잠자리를 바꾼다는 것과 새로운 구조의 공간에 내 몸을 들여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낯익은 것들과 이별의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이사는 다시 되돌릴 수 없었고 전학은 필수였다.
나는 부모님께 이사와 전학의 부당을 항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학교에 전학 통보했다.
어린 여자아이가 이 현실 앞에서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의 충격은 고스란히 가슴속 한 켠에 오래 담겨 있다가 어느 날 시가 되었다.
‘나는 시골소녀였지’
나는 시골소녀였지. / 5월 5일 어린이날 / 고향마을 떠나왔는데 / 내 친구 혜영이는 / 이사 트럭 앞에서 /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 잘 가라, 친구야 / 잘 가라, 친구야 / 손 흔들었지. // 나는 시골 소녀였지. / 이사 트럭이 / 학교 앞을 지날 때 /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아 두었어. / 콧수건 달고 입학하던 날, / 미루나무 길 걷느라 지각했던 날, / 수업 시간에 창문 밖 바라보다 알밤 맞던 날, / 비 온 날 운동장이 진흙뻘 되어도 / 그 뻘구덩이 속에서 / 야, 야, 야, / 달리기하던 날, // 그래, / 나는 촌뜨기였지만 / 자연, 그 속에서 / 웃고 울고 놀면서 마음의 키가 컸지. / 미루나무 둥지에 / 어깨 기대며 / 높은 하늘 바라보며 / 꿈을 키웠지, / 추억을 담았지. // 나는 시골 소녀였지.
-김둘 동시집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시와반시’ 중에서
익숙한 것들과 단절은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는 그 무엇인가는 규칙적이기에 편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은 변함없다.
단조롭고 반복된 삶 속에서 어떤 이들은 작은 생활의 행복을 느낀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란 말이 있는 것은 아주 조그마한 반복된 일상 가운데 느껴지는 편안함이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생명 활동하며 살아가는 기본적 변화에 순응하면서도 그 외, 부차적인 가변성을 무시하고는 살 수 없다.
사고(思考)하고 사유(思惟)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위, 문화(文化)를 형성하고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인과관계 그 이상의 인간적인 관계는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유배와 이사는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익숙한 것들과 강제 이별’.
유배는 본인의 죄질에 대한 반성 촉구를 위한 사회적 형벌이기 때문에 불명예스럽다.
게다가, 죄인에게 향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방도가 없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名譽)가 아니던가.
의(義)나 리(理)는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가.
그런 덕목에 흠집이 생겨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떠나는 유배의 길은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유배는 외로움이라는 형벌을 하나 더 준다.
가중처벌 당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힘든 순간은 외로움 가운데 있을 때, 그 외로움이 한없이 길어질 때이다.
그러한 외로움을 끈질기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부터인가 세상일에 초연해질 수 있는 공력(功力)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더욱 성장하고 회생(回生)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 가기 전, 포항 장기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몇 해 전 여름, 장기유배지를 찾아갔더랬다.
입구에 들어서니 안내판들이 있었고 그간 장기로 유배를 왔던 사람들의 약력과 신분을 표기해놓았다.
천천히 읽어보고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
여자도 유배를 왔다는 것,
상상하기도 어려운 죄목으로 많은 사람이 유배를 왔다는 것이다.
또, 유배 비용을 자비 부담해야 한다는 것과 가난한 선비들은 비싼 유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가산을 탕진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유배 비용은 나랏돈으로 부담하는 줄 알았는데 참으로 공정한 처사다.
백성들의 세금을 죄인에게는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백성의 돈을 죄인에게 내주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인데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부분이다.
선조들의 지혜에 사뭇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안내판을 돌아 나오니 좌측으로 우암 송시열이 유배를 와서 지냈던 거처가 재현되어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 거처는 그 옆으로 조그만 초가집으로 재현되어 있었는데 나는 다산의 조그만 초가집, 좁디좁은 툇마루에 해가 기울어질 때까지 오래 앉아 있었다.
이곳으로 유배와 살면서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의 무게를 감당할 정신의 힘은 어디서 얻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룻바닥 사이로 연두색 자벌레 같은 것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어떤 벌레도 반가이 맞아들였을 다산 선생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벌레는 사람 말을 못 하니 정치나 사상을 논할 수도 없었을 테다.
다산 선생은 벌레랑 맘 편히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뭇 생명체 또한 다산 선생을 죄인으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심한 자벌레를 보고 있자니 다산 선생은 얼마나 자연의 그 무심함에 감격했을까 싶다. 본시 생각이 정신을 만들고 그것이 사람을 부추겨 당(黨)을 만드니 벌레처럼 사람들이 무심하다면 세상에 무슨 경계가 있겠나.
집 울타리 쪽으로 둘러쳐진 싸리나무들과 그 너머 뒷산으로 오르는 좁은 길 주변에는 대나무가 무성했다.
그 숲으로 새들이 수도 없이 날아들었다가 날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람도 들고 햇볕도 좋은 날이면 선생은 여유 있게 자연의 이치에 더욱 깊이 천착했으리라.
유배지가 형무소는 아니다. 죄인으로 받는 형벌은 외로움과 기다림일 뿐 신체적 가해는 없다.
외로움의 형벌을 명받은 그들은 곧 유배지에서 새로운 삶을 창작(創作)해야 한다.
새로운 것들과 조우하고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할 일을 찾아내야 한다.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나갈 계기를 마련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되뇌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없음이며 유약해진 몸과 마음으로는 유배가 풀릴 때까지 그 기다림의 세월을 견뎌낼 수도 없다.
종국에는 원망과 그리움으로 한 많은 생을 유배지에서 마감해야 한다.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유배지에선 새로운 팬클럽이 형성되기도 한다.
숲이 우거진, 가파른 곳에 오롯이 자리했던 강진의 다산초당에 학문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은 다산의 팬이었다.
다산은 마을 아이들의 글을 가르쳐 주었고 아픈 사람들이 있을 때 진맥해주고 약효 좋은 민간요법도 알려 주었다.
샌님 같은 양반이 유배를 왔던 초창기에는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으나 다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 일을 유배 생활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다산초당은 글자를 배우러 자식들을 보내고 싶은 무지렁이 부모들의 꿈의 학교였고, 아픈 사람들의 진료실이었고, 시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시 창작 교실이 되어 주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집필을 쉬지 않고 했으니 그의 초당은 또한 샘솟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넘쳐흐르는 집필실이었다.
다산의 지도로 효율적인 농사법을 체득하게 된 마을 사람들에게 다산초당은 농업기획연구소 같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팬은 더 많아졌다.
정약용이 강진을 떠날 즈음엔 그의 떠남을 애석해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복귀하고 나서도 그의 제자들이 오랫동안 계를 조직하여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했던 정리(情理)를 지키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만 봐도 그의 팬클럽 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것이다.
유배는 결국 한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침묵의 메시지이다.
포항 장기유배지는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 1차 유배지로 머물렀던 곳이다.
아마 이 1차 유배지 장기에서 이미 유배의 쓴맛을 경험하고 훗날 강진의 기나긴 유배지 생활을 잘 견뎌 나갈 수 있는 발판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 장기유배지는 다산의 위대한 삶에 중요한 획을 그어 준 장소라 말할 수 있다.
유배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지만, 사회가 내밀어 주는 격려와 성장의 산실이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제받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가려가면서 살아야 했고, 낯선 환경 속에 던져진 자연의 도장(道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던가, 다산 정약용은 전라도에 2차 유배를 명 받아 강진에 닿자마자 유배해 온 것을 오히려 기뻐하며 이제는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책을 쓰고 싶어도, 독서하고 싶어도 일이 많아 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그 일을 하게 되었다고, 반어적으로 이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던가
.
사람 사는 세상에는 질서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 원칙을 위반한 사람들에게 가하는 가장 인도적인 형벌, 살리지도 않지만 죽이지도 않는 형벌, 내면의 성장과 구도의 생활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형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경고하였던 형벌, 그러나, 감각적 쾌락을 좇아 살아가는 데는 엄중한 문책을 가하고 경계하는 반면, 선비의 길을 걸어가기를, 의(義)로운 길 걷기를 강하게 전하는 침묵의 형벌. 유배….
만일, 이러한 유배 생활을 극복해야 한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지금보다 더 맑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
즉, 이것은 내면의 일이지 외부의 일이 아니라는 성숙한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성찰에 용맹정진해야 한다는 것.
시골 소녀였던 나는 이사를 해야 했던 것을 형벌로 착각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몇 편의 시를 썼고 그 대가로 이제 형벌은 멈추었다. 그런 것이다.
유배는 결국 한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침묵의 메시지이다.
만일, 유배 생활을 극복해야 한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지금보다 더 맑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