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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유재 Aug 17. 2023

꿈 노트

무의식의 부스러기들



나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일상과 매우 닮아있는 평범한 꿈부터, 스펙터클의 끝을 보여주는 액션으로 채워진 꿈, 환상소설을 상기시키는 기묘한 꿈, 공포로 가득한 악몽, 꿈계의 국룰(?)인 하늘을 나는 꿈, 이제는 하도 많이 나와 제2의 제3의 고향처럼 여겨지는 가본 적 없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꿈 등 그 내용도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특별히 곤두서있는 시기에 나의 뇌는 더 적극적으로 꿈 보따리를 쏟아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던가,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시기,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을 때, 내가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시기엔, 나의 꿈속 세상은 한층 더 어지러워진다.


사람은 하루 평균 4-5개의 꿈을 꾼다고 한다. 그중 한 두 개를 기억하게 되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 많은 날들의 꿈들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오자마자 다시 무의식으로 봉인된다. 꿈을 꾼 것 같기는 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적이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꿈 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방금 본 것들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두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꿈 노트는 몇 개의 단어들로만 구성되기도 하고, 때로는 약간의 묘사가 곁들여진 문장들로 적히기도 한다. 잠에서 깬 직후, 메모장을 켜고 타이핑을 하다 보면 금세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하여, 기승전-으로 끝나는 기록들도 있다.


꿈 노트 중 몇 개를 가져와본다.



2022/11/5 생크림이 가득 든 봉지 모양 하얀 빵을 매장 유리 창문 너머에서 보았다. 급히 학교로 가보니 새로 지은 건물에는 5학년 1반-4반이 있고 같은 건물 카페테리아가 너무 예뻤다. 파도색 크림이 올라간 기다란 도넛, 입을 벌리고 있는 팔뚝만 한 크기의 악어 모양의 악어빵이었다. 악어빵은 튼튼하고 윤기 나는 딱딱한 재질이다. 누런 황금빛으로 빛나는 악어빵을 주문했고 뒤에 서있는 친구들에게도 권했지만 모두 거부했다.


: 앞 뒤 사건이 큰 연결고리가 없고, 그저 보이는 이미지에 대한 묘사로 채워진 꿈 노트. 빵에 대한 욕구가 터져 나오던 시기에 꾼 꿈인 지 빵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다.


2022/11/12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밥을 먹지 못했다. OOO (어릴 적 다니던 학원) 건물 같이 생긴 곳 지하에 스튜디오 및 터널, 벙커 같은 공간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나는 끈 하나에 의지해서 천정 레일에 매달려 앞으로 나아갔다. 밑에는 언제부터 고여있는지 모르는 탁하고 진한 물이 흘렀다. 다리와 허리가 물을 가르는 느낌이 생생하다. 굽이굽이 애써서 종착지까지 도착했지만 신발 하나를 중간 자점에 떨어뜨리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거 주우러 다시 처음부터 리셋. 다시 골목으로 소환되어 OOO 닮은 건물 지하를 찾아 헤맸다. 결국 같은 입구를 찾았고, 눅눅한 지하동굴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


: 마치 RPG 게임을 연상시키는 구조의 꿈이다. 학창 시절에 자주 방문했던 공간을 기반으로 한 장소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꿈에서도 역시 학원가가 등장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마저 기억하는 것이 흥미롭다.


2022/11/24

쌍둥이를 임신했다. 나의 배는 불룩했고 등 뒤로는 애 둘 머리가 나와있었다. 눈썹이 진한 애들은 하나는 여자 하나는 남자 같다. 발가락들도 비죽 나와있음. 한 애가 발가락이 여섯 개여서 놀라니, 옆에 있던 엄마가 나중에 잘라주면 된다고 했다.


: 신체에 관련된 기괴한 꿈이다. 임신 출산에 대한 어렴풋한 공포심이 드러난 걸까? 꿈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들은 잘 동요하지 않는다. 매번 나 혼자 놀라고, 주변인들은 무덤덤하다.



꿈을 기록한다는 건 어쩌면 무용한 일이다. 내가 예지몽을 꾸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분석해 본다 한들 나는 그저 추론만 할 뿐, 정확히 내 무의식이 어떤 지 알 길이 없다. 설사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무의식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그다지 지금 내 일상에 도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꿈 노트를 적고 있을까?


무언가 금세 사라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생생한 환경에 놓여있다가, 눈을 뜸과 동시에 이야기가 끊기고, 이내 내용이 모두 증발해 버리는 것이 아쉬워서이다. 간혹 어떤 꿈은 너무 생생하기에, 현실이 꿈인 지 꿈이 현실인 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 꿈이 어떤 내용이던, 잠에서 깨면 바로 증발해 버리게 아쉬워서 기록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하나 쌓여가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꿈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부스러기이다. 그 부스러기들이 모이면, 어떤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이야기들을 잡아두고, 휴대폰 안에 저장해 두는 것으로 나는 매일매일 이야기의 재료를 모은다. 나에게 꿈 노트란, 일상에서 느끼는 찰나의 감정이나 문득 드는 생각을 기록하는 일과도 같다. 시간이 지나, 이 부스러기들이 쌓이고 걸러지면, 언젠가 한 편의 근사한 이야기로 자리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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