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은신처, 먼지처럼 꽃처럼
인파를 비집고 작업실로 향하던 늦은 저녁, 크리스마스 전구로 빼곡히 장식된 연말의 시내는 마구 들떠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오래된 에스컬레이터가 덜덜 소리를 내며 작동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인지라 걸어내려가는 것이 피곤하다. 자리에 가만 선 채 움직이는 레일에 몸을 맡긴다. 천천히 지하로 내려가고 있던 그때, 경보음이 울리며 역내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위험이 감지되었으니 빠르게 피신하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울려 퍼진다. 허옇게 질려 피신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공포를 본다.
역 바깥에서 십 여분 기다리니 이제 정상화되었다는 공지가 나왔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줄지어 역 내부로 입장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웨스트민스터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다, 누군가의 폭발물 신고로 인해 다리 위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춰서 있던 것이 떠올랐다. 테러 위협이 많은 도시인만큼 이곳에서는 종종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된다.
작업실로 돌아와, 곧장 테러 경보에 관한 정보를 리서치해본다. 그러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 측에서 안내하는 포스터 이미지를 보게 되었다. RUN HIDE, TELL이라고 적힌 문구 아래에는 각각의 동사를 서술하는 그림이 붙어있었다. RUN 밑에는 비상구 사인과 닮은 뛰어가는 사람의 모습, HIDE 밑에는 벽 뒤에 숨어있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TELL 밑에는 전화기 아이콘이 있었다. Run, hide, tell 은 무기 기반의 테러 공격이 발생할 경우, 공공 보안을 위해 영국 경시청에서 2017년 도입하여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는 간단한 기술이라고 한다. 기술의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Run: 안전한 곳으로 달려간다. 이것은 항복하거나 협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이다.
2. Hide: 맞서는 것보다 숨는 것이 좋다.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하고 진동을 끄는 것을 잊지 마라. 그렇게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라.
3. Tell: 999에 신고하여 경찰에 알려라.
간단히 말해 피신하고 은신한 뒤,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흰 글씨로 강조된 세 단어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세 개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위잉 맴돌았다. 그러다 가지치기가 되어 여러 개의 풍경이 그려지고, 풍경들이 서로 연결된 구체적인 서사가 떠오르는 것이다. 현실도피성을 지닌 한 사람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은신하다가 한참 시간이 흘러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 이야기. 마을을 떠나서 먼 여정을 떠났다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어느 음유시인에 대한 이야기. 빙글빙글 돌아가며 먼 곳까지 날아갔다가 어느 순간 반대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어 빠른 속도로 돌아오는 부메랑에 대한 이야기.. 등 이런 몽상들이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근하려고 작업실을 나서다가 오늘따라 괜스레 아쉬워져 불 꺼진 공간에서 그림들을 죽 훑어보았다. 어쩌면 이곳이 나에게는 진정한 은신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생활 12년 차, 그리고 두 도시를 오가며 작업활동을 한 지는 5년째, 안정적인 환경에 둥지를 튼다는 생각 없이 떠돌이처럼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일까? 집-작업실 사이를 오가며 특별히 사교활동이나 취미활동을 하지 않은 채 큰 불편함 없이 그저 그렇게 조용히 생활하고 있다. 고립될 수 있는 자유가 어느새 나의 특권이 된 느낌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듯 사는 나의 근 몇 년의 삶에서 굳이 변하지 않은 것을 찾자면 십 년째 사용하고 있는 이곳의 작업실이다.
작업실이라는 물리적인 장소는 메타포가 되어줄 뿐, 그것이 대변하는 것은 공간뿐 아니라 내가 구축하는 나의 회화 세계 일 것이다. 회화라는 매체가 나에게 온전한 은신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인간은 무척 작고 연약해서 물리적인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작업을 할 때에도 나의 신체의 범위가 닿는 곳이 곧 물질세계에서의 나의 한계라는 생각에 가끔 절망하기도 한다. 그런 절망을 딛고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솟을 때마다 회화 속 장소들이나 물건, 환경들에게 그만큼 환상이 덧입혀진다. 캔버스 안에 펼쳐지는 세계에 몸을 담그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유영하다가 그 안에서 좌절하고 슬퍼하며, 반대로 온갖 흥미를 느끼기도 재미를 찾기도 한다. 회화는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가상적인 물체라고도 하지만 물질세계 (physical world)는 아니다. 그럼에도 때때로 나는 그림이, 이곳의 작업실이 나의 진정한 은신처로 느껴진다.
나에게 ‘그리기’라는 것은 현실로부터 피신하고(Run), 화면 안에 은신하며(Hide), 다시금 세상으로 나와 이야기하는(Tell) 행위인 것인가? 내 인생의 크고 작은 경보음이 울릴 때마다, 나의 옆에는 항상 작업실이 있었다. 감정을 눌러 담으며 무언가를 읽던, 눈물을 터뜨리며 그림을 그리던 작업실에서 어떻게든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작업실은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항상 기다려 주는 고마운 곳이었다.
여기까지가 작년 연말에 적어둔 글이다. 그리고 어젯밤, 작업 일지 귀퉁이에 작업실에 대한 생각을 긁적인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옮겨본다.
“ 작업실. 그곳은 알려지지 않은 곳 (unknown place)이다. 은밀한 사유와 그것이 낳은 이미지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곳이다. 내가 가본 곳과 가보지 못한 곳이 혼합되는 곳. 확신과 불안이 공존하고, 실패와 시도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지식과 감정, 환상과 꿈, 세상의 나열된 사실들이 유령처럼 떠돌다, 어느 순간 캔버스 위에 내려앉는다. 먼지처럼, 꽃잎처럼! “
영어로 적어 둔 것을 번역해놓고 보니, 더 부끄럽다. 짧지만 한 편의 러브레터가 따로 없다. 그래도 기록해 본다. 앞으로도 이곳을 향한 나의 애정이 꾸준하기를,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이 노트가 미래의 나에게 응원이
되기를. 언제든 번아웃이 와도, 다시 그곳을 찾을 수 있게 되는 응원 말이다.
2022년 12월, 그리고 2023년 8월
런던 작업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