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불안을 물리치는 방법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받을 일 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나의 비행 불안 (근 과거까지는
비행 공포증)에 대한 글을 적어보려 한다.
나는 항공 업계 근무자가 아니고, 매주 해외 출장을 가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영국에 살게 된 후에는 근접한 유럽 도시들을 방문할 일이 꽤 잦았고, 내 기억에 2016-8년 2-3년 동안에는 한 해에 최소 10번 이상의 짧은 비행을 했었다. 최근 5년 동안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년 서울로 한 두 번의 장거리 비행을 하고 있다.
어릴 적, 나에게 비행기는 설렘의 장소였다. 잠시 미국에 살며 자주 비행기를 탔던 유년기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매캐한 비행기 좌석 냄새와 실내등이 켜지는 소리, 승객들의 목소리가 제트엔진 소음과 섞여 웅웅대며 울려 퍼지는 그런 감각들이 떠오른다. 당시를 더 객관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부모님의 말을 빌리면, 나는 언제나 비행에 무척 들떠있는 채로 착석했으며, 도착할 때까지 내내 혼자 조용히 색칠공부를 하고, 지루해지면 작은 소리로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가끔 비행기가 흔들리더라도 잠도 잘 자고 기내식이 나오면 냅킨을 목에 두르고 얌전히 식사를 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나의 기억과 부모님의 기억에서 엿볼 수 있듯, 나는 절대 어릴 때부터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비행을 무서워하게 되었을까?
계기가 된 사건을 말하자면, 십여 년 전 겨울, 베니스에서 런던으로 넘어오는 저녁비행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승무원 2명, 조종사 1명 총 3명의 캐빈 크루가 이끄는 아주 작은 비행기였다. 영국에 살게 되면서 꽤나 자주 저가 항공을 이용했다. 운이 좋으면 눈에 띄게 저렴한 티켓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해 겨울도 저가항공을 타고 리서치를 위해 짧게 베니스에 방문했었다. 베니스의 여름은 투어리즘의 몸살을 앓는 장소였기에, 사람이 적은 비 성수기에 방문을 하려던 것이 화근이었을지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겨울에 베니스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항로가 터뷸런스가 가장 심한 항로 중 하나라고 한다.
여느 때와 같이 특별할 것 없는 기분으로 탑승했다. 열린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검붉은 노을이 아름다웠고, 이내 바깥이 어두워져 창문들이 검은 타원들로 변하는 것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잠을 청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자리로 와서 앉았다. 맨 끝 자리였다. 2인 좌석이 양쪽으로 배치되어 중앙에 자리한 좁은 복도와 함께 기체 내부가 모두 보이는 자리였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자, 비행기는 금세 이륙했다. 십여분 정도 흘렀을까, 얼마 되지 않아 기체가 갑작스럽게 흔들리며 그대로 뚝 뚝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황은 했지만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여겼다. 승객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이 난기류가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꽤 오래 지속되는 흔들림으로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무서움을 참던 승객들이 하나 둘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살피기 위해 승무원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기체가 급격히 하강하며 승무원이 천장에 허리를 부딪히고 그대로 기절했다.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몇몇이 구토를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나의 시야에 가까이 앉은 노부부가 들어왔다. 그들은 손 모아 기도하며 움츠린 자세로 앞 좌석에 기대어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노부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의 기억은 끊겼다. 기절을 했던 것인지, 극도의 공포로 기억을 지운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정신을 차려보니 덜덜 떨리는 기체는 힘겨운 진동을 하며 공항에 랜딩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승무원은 아직 그대로 있었고, 비행기 문이 열리자 그녀는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고 실려갔다. 미세하게 역겨운 냄새가 났다. 복도를 지나며, 갈색 봉투들이 무색하게 여기저기 쏟아져있는 토사물을 보았다. 놀라웠던 것은 기장이 직접 출구에 나와 비행기를 떠나는 승객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한 것이다.
“Stay safe”
인사말과 함께 내 손을 꼭 쥐는 기장의 동공은 지나간 터뷸런스만큼 흔들리고 있었다. 땀에 절은 기장의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방금 우리들이 경험한 지옥 같은 시간의 반증이었다.
그 해 겨울비행의 경험이 깊게 자리하여,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어떤 흔들림이나 난기류를 만나는 조짐이 보이면 무척 불안해졌다. 이전엔 이 정도 흔들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나의 신체 반응은 이전과 매우 달라져있었다. 이미 자리에 착석하는 순간 오한이 들었고, 손과 발은 땀범벅이 되었다. 기체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천정에 허리를 부딪힌 승무원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애꿎은 좌석 손잡이를 짓이기듯 쥐곤 한다. 긴 시간 동안 긴장상태에 있어야 하기에 기내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흔들리는 물이나 와인이 시각적으로 더 나를 자극하므로 음료도 받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무엇보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마다, 메신저로 가족들에게 유언 비슷한 걸 남기기 시작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순간들이 늘어나면서, 나의 ’ 공포증‘은 자연스레 ’ 불안‘이라는 단어로 메꿔졌다. 이제는
비행기를 타도 직접적인 신체반응은 나타나지 않았고,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주변에 잡히는 무언가를 붙잡고 고른 호흡을 하려고 노력하는 정도이다.
’ 비행 불안‘이라는 용어는 애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 하지만, 별다른 대체할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더 이상 비행 공포증(Aeorpphobia)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아서이다. 비행 공포증은 생각보다 매우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미국 통계에 의하면, 매년 2500만 명의 미국 성인들이 비행 중 극심한 불안이나 공황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나는
이제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에 ‘비행불안’이 있는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공포와 불안은 한 뿌리라고 하는 말이 맞았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극심한 공포를 느꼈고, 그것이 나로부터 금세 빠져나가지 못해 체화되면서 불안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공포증을 온전히 극복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완화되었고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인간이 어떤 공포를 완벽히 물리치는 방법은 없다. 피할 수 없다면 그 대상을 맞닥뜨리며 끊임없이 맞서야 한다. 나는 아마도 살아있는 동안,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계속 맞이할 것이다. 그중 무엇이 또 나에게 커다란 공포를 가져다줄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비행 공포증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꾸준히 그날의 경험을 되새기고 또 되새김하는 것이 묵은 공포심을 조금씩 도려내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2023년 8월 런던에서.
베니스-런던 저녁 비행을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