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에서 서른다섯이 되기까지
다른 세상이 궁금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니 문득 이곳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 런던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십 년 전엔 내가 계속 영국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삶에서 맞이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건들을 겪으며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유학생에서 이민자로, 그리고 스물셋에서 서른다섯이 되었다. 항상 변화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처럼 내가 맞이하는 수천 번의 밤도 점점 변했다.
학생일 적 이곳의 밤은 나에게 때때로 시끄럽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붐비는 번화가에 나가 마치 대낮 같은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기도 하고, 늦도록 논문을 쓰거나 작품을 할 때도 있었으며, 우리 집과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어떤 소속감 같은 것들을 분명히 느끼는 왁자지껄한 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당시 내 마음은 항시 어떤 공동체 같은 것을 좇으며 어딘가 안착되기 위해 조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생 신분을 벗어나자 이곳의 밤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켓에서 일을 하고, 종종 갤러리에 출퇴근하는 등, 여러 개의 생업이 생기기 시작한 탓일까? 일을 마치고 비로소 작업실에 갈 수 있는 저녁과 밤은 귀한 나만의 고요한 시간이 되었다. 관광객이 바글대는 시끌벅적한 야외 마켓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나는 셔터를 내리고 퇴근을 하며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리게 흐르는 도시의 풍경들을 관조했다. 작업실로 돌아와 그림에 몰두하다 자정이 지나 집으로 향하고, 숏-컷으로 가기 위해 동네공원을 가로지르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다시 공원의 담을 넘어 집으로. 그렇게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꿈과 행위를 섞어버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밤의 시간이 좋았다.
공원 안의 숲과 호수는 밤에는 까맣다. 백조도 오리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사람, 쉬는 사람들도 없다. 불빛이 적은 곳에는 여우와 너구리 같은 동물들도 자주 출몰한다. 이렇게 인적이 없는 자정의 공원은 더 이상 인간이 도시에 만들어 놓은 자연이 아니게 된다. 인간이 아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꿈 꾸는 숲 같기도 하고 공포스러운 동굴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염없이 걸으며 아무 생각 없이 바람과 습도, 밤공기와 나뭇잎 냄새 등을 감각하다가 어느 순간 목적지를 잃고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밤의 공원은 내면세계의 침잠된 생각들을 깨운다. 이내 기억과 망상이 뒤섞이고 펼쳐지는 신비로운 장소가 된다. 그렇게 타지에서 혼자 걷는 밤을 경험하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오롯이 혼자 살게 되는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작업실에 가는 루틴이 생기면서, 그렇게 밤은 나에게 어떤 ‘장소’가 되었다.
팬데믹 이후의 이곳의 밤들은 나에게 기나긴 어두운 터널 같은 장소였다. 어쩌면 이번엔 나만의 장소가 아닌 모두의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 연초부터 영국 전역 봉쇄가 시작되었다. 다른 집에 사는 사람 (other households)을 만날 수 없으며 하루에 한 번 조깅이나 산책 등 1인 운동만이 가능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재택을 하고 또 집에서 나오지 말아야 했다. 3월부터는 사재기 현상이 심해졌고, 장을 보기 위해서는 오전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줄을 서기도 했다. 물론 물건은 동이 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NHS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도저히 음식을 살 수 없으니 제발 사재기를 멈춰 달라고 호소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그 직후 정부차원에서 병원근무자들과 노년층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만 음식 쇼핑을 할 수 있는 시간대가 따로 정해지기도 했다. 레스토랑과 카페, 펍들은 정부 규제로 문을 닫았고 약국과 병원, 슈퍼마켓을 제외하고는 모두 셔터를 내렸다. 자가용에는 2인 이상이 탑승할 수 없었으며 운전자를 제외한 다른 한 명 마저도 조수석에는 탑승 금지였다. 작업실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들이 ‘외출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를 물어왔다. 강아지 납치 사건이 늘어나고, 소포 도둑들이 기승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새로운 규제들이 생겨났고, 그럴 때마다 포털에 ‘록다운 룰 (Lockdown rule)‘을 검색하며 업데이트된 항목들을 체크해야 했다.
집과 작업실만을 오가며 지냈다. 작업실에 가기 힘든 날엔 집에서 그리기도 했다. 봉쇄가 잠시 풀려 짧은 기간 미술관이 개방되면 그림을 보러 갔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낮도 저녁도 컴컴한 밤처럼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의도치 않은 외부로부터의 고립이 어느새 삶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있었다. 봉쇄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표면으로 만나게 되는 관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화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눈동자도, 목소리의 깊이도 얇은 막에 가려져 모두 평평하게 느껴진다. 손 끝에 만져지는 휴대폰의 촉감으로, 평평한 모니터 너머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그렇게 나를 둘러싼 관계들은 더욱 평평해져 갔다.
이전의 삶이 잘 기억나지 않는 순간도 오곤 했다. 타인을 만나지 않고,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되며, 이곳엔 오직 나와 그림, 그리고 공상이 있었다. 집 안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를 하루에 몇 번이고 쳐다보게 되었다. 깜깜한 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밤 기차의 모습은 그 누구도 태우지 않은, 그저 크고 빠르게 움직이는 검고 쓸쓸한 실루엣이었다. 새까만 고철의 실루엣 안으로 둥글게 네모진 빛들이 나란했고 그 빛 속에 사람은 없었다.
텅 빈 기차가 주는 소음은 여전했다. 그 누구도 타지 않더라도 아침이 되면 운행이 시작되고 밤이 되면 운행을 멈췄다. 집 앞을 지나는 횟수도 여전했다. 세상이 정한 시간과 계획은 그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오후 네 시가 되면 밤이 찾아오는 계절이 오고, 두 번째 공식적인 록다운 (Lockdown)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한 달의 시간 동안 도시 곳곳에서 불꽃놀이가 빈번히 일어났다. 가이 포크스의 밤 (Guy Fawkes Night), 전쟁 추모기념일 (Remebrance Day) 등, 몇 개의 기념일들이 몰려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 해에는 코비드로 인해 공식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1월이 되자, 폭격음과 비슷한 불꽃놀이 소음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무시하기엔 꽤나 큰 소리이기에, 그 소리가 들려오면 창가에 나가 금세 사라지는 불꽃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곤 했다. 집 안에서 바라보는 불꽃놀이가 주는 기분은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다. 시끌벅적한 축제에서, 야외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젖혀 감상하는 불꽃놀이와는 사뭇 다르다. 밤 기차를 보는 감정과 불꽃놀이를 보며 느끼는 그것은 비슷한 형태의 것이었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굉음을 내며, 현상은 보이되 인간은 보이지 않는.
내가 이곳에서 보낸 밤들은 언젠가는 매우 시끌벅적했다가, 다시금 조용히 홀로 걷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기도 하고, 창작의 세계에 대한 경이를 발견하게도 해주었으며, 아무도 타지 않는 밤기차와 아무도 보지 않는 불꽃놀이 같은 쓸쓸한 감정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그것이 짧은 글이 되고, 메모가 되고, 그림이 되는 와중에 내가 경험했던 여러 가지 순간들은 내게서 밤이라는 장소를 배제하기가 점점 어렵게 만들었다. 시간이자 장소이며, 인간세계와 인간세계가 아닌 곳의 경계가 지워지는 장소. 언제든 고립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유로운 장소. 내가 나이기도, 타인이 되기도 하는 변형 metamorphosis의 장소. 끊임없이 꿈꾸게 되지만, 또 여전히 공포스러운 기분을 지울 수는 없는. 그렇게 헤매다 결국 다다르게 되는 침묵의 장소. 어느 순간 지식이 사라지고, 감정이 사라지고, 인식이 사라지며, 기존의 것들이 계속해서 사라지게 되는 장소. 이 꿈같은 곳을 가로질러 내 삶의 홀로 걷기를 지속해보려 한다. 그 안에서 절망하고 결핍되고, 상실하고, 불안하더라도 끊임없이 나아가며 감각하고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22년 11월 런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