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적응’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면 설렘보다는 낯섦이 먼저 찾아오게 된다. 조직의 분위기, 일하는 방식, 동료들의 성향, 심지어 커피 타임까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신입이든 경력이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접하게 되면 '이질감'이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HR에서도 이직자들의 빠른 적응(Soft Landing)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시도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 상 '적응'은 며칠이나 몇 달이란 정해진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흐름'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냐의 문제라 생각한다.
입사 초기의 목표는 즉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새로운 직장은 말 그대로 ‘다른 생태계’이므로 관찰이 먼저며 자연스럽게 “왜 이 회사는 이렇게 일하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조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회의 때 발언의 빈도, 보고 라인의 길이, 이메일과 메신저 중 어떤 수단을 선호하는지 등을 빠르게 파악하여 조직의 의사소통 방식에 스며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가급적 “이전 회사에서는 이렇게 했는데요”라는 말을 삼가는 것을 권장한다. 이 말 한마디가 당신을 ‘적응하려는 사람’이 아닌 ‘비교하고 지적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입사 초기에는 평가보다 관찰이, 주도보다 경청이 더 큰 힘을 가진다. 따라서 내부 인맥을 차근히 넓히고, 비공식적인 정보(보고 스타일, 의사결정 구조 등)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시기다.
어느 정도 조직에 적응했다면 이제는 '언어'를 배워야 하는 시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아닌 그 회사만의 표현과 문법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정리 좀 해주세요.'라는 말은 '보고서를 써오세요'라는 뜻이고, '시간 날 때 봅시다.'가 사실상 '바로 회의를 잡아서 검토하자'라는 의미일 수 있다.
경력직이라면 이 시기부터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과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성과'보다는 '성과를 내기 위한 방향'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빠르게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는 '조직의 방향에 맞게 성과를 만드는 사람'이 더 오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동료와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늘리면서 업무에 대한 기대치와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을 권장한다.
입사 후 6개월 정도 지나면 대부분의 경력직은 조직에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다고 본다. 이 시점에는 기본적인 업무 루틴에 익숙해지고 동료들과의 신뢰나 네트워크가 쌓여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본인의 강점을 본격적으로 조직에 녹여내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시기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조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에 기존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무시하거나, '내가 더 잘 안다'는 태도를 보이면 순식간에 기존 구성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즉, '나의 방식'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조직의 문화와 방식을 이해한 뒤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교정자'가 아닌 '조율자'의 관점에서 접근하길 권장한다.
누군가는 한 달 만에 회사에 녹아들고 누군가는 1년이 지나도 여전히 낯설다고 말하면서 다시 퇴사를 고민한다. 그 차이는 '그들이 조직에 합류한 뒤 지난 시간'이 아닌 '그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적응이 빠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조직과 사람에 대한 관심의 깊이'가 적응이 느린 사람들보다 다르다는 것이다. 즉, 일을 배우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조직의 분위기와 흐름까지 읽어내려는 태도가 그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결정한다.
조직은 결국 '사람이 모인 집합체'이기 때문에 적응의 본질은 '관계의 형성과 관리'라고 본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관계를 원만히 형성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혼자 일하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반대로 관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며 자연스럽게 조직 속에 스며든다.
이직 후의 적응은 내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버티기가 아니라 조직의 리듬에 나를 맞누는 과정이다.
그 리듬을 익히는 시간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방향은 같을 것이다.
배우려는 자세, 듣는 태도와 조직을 존중하는 마음 이 세 가지가 준비된다면 어디서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