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직장으로 이직하고 3년이 지나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아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안식월을 위한 유급휴가를 받아서 연차와 복지휴가와 함께 총 4주간의 안식월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긴 휴식을 취하면서 지난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특히 지난 2년 반 동안 프로젝트에 집중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에 늘 빠져서 이번 안식월이 더욱 반가웠다.
원래 내가 세운 여행 계획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나 혼자 3주간 다녀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던 부모님께서 '스페인은 꼭 같이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민 끝에 결국 계획을 수정해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는 15박 17일간의 스페인 가족 여행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번 여행은 2022년 12월에 다녀왔던 이탈리아 가족 여행처럼 패키지나 투어 없이 100% 자유여행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준비의 첫 단계는 '스페인에서 어떤 도시들을 갈 것인가'였고, 금방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단호하게 '바르셀로나에서 여유롭게 다녀보고 싶다'라고 하시면서 이번 여행의 중심지로 바르셀로나가 정해졌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임무는 얼마나 가성비 있고 효율적이면서 기억에 남는 여행 코스를 세우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히 아버지도 가보고 싶으신 스페인의 어느 도시가 있으실 건데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수많은 블로그와 여행 후기를 참고하여 나름대로 알찬 여행 계획을 수립해서 부모님께 보고(?) 드렸다.
[1] 런던(3박) → 바르셀로나(5박) → 세비야(3박) → 말라가(4박) → 마드리드(1박) → 이스탄불(4박)
스페인 여행인데 왜 갑자기 런던과 이스탄불이 있냐고? 그 이유는 단순했다.
여행을 계획하던 2024년 12월에는 마드리드 직항 왕복 항공권보다 '런던 In & 이스탄불 Out' 다구간 항공권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스탄불은 예전부터 내가 가보고 싶은 도시라서 '이참에 경유 겸 여행까지 다녀오자'는 계산도 있었다. 하지만 나름 괜찮았던 여행 계획은 여행이 아닌 고행이란 부모님의 평가로 인해서 곧바로 폐기되었다.
[2] 바르셀로나(5박) → 말라가(4박) → 그라나다(3박) → 마드리드(2박) → 이스탄불(5박)
두 번째 여행 코스에서 드디어 아버지께서 진심으로 가고 싶으셨던 도시인 '그라나다'가 공개됐다. 그 순간부터 여행 계획은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경유지로 계획했던 런던을 과감히 제외하고 지중해 연안 풍경을 즐기는 여행으로 콘셉트를 바꾸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론도를 가기 위해 세비야를 추가했지만, '세비야는 바닷가도 없고 건물만 가득할 것 같아서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어머니의 한 마디에 세비야 대신 말라가로 변경되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바람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고 싶어서 최종 코스에 '이스탄불'을 남겨두었다.
[3] 바르셀로나(5박) → 말라가(4박) → 그라나다(3박) → 마드리드(3박)
이스탄불만큼은 정말 끝까지 사수하고 싶었다. 이번 여행을 내 안식월에 떠나는 것인데 적어도 한 도시 정도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앞선 코스를 보여드리니 부모님께서 '20일이 넘는 일정은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다'라고 하시면서 이스탄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은 '스페인에 집중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 결과,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말라가와 그라나다, 마드리드로 이어지는 스페인 남부 중심으로 바다와 도시를 즐길 수 있는 동선이 완성됐다. 그리고 말라가에서는 프리히릴아나(Frigiliana), 마드리드에서는 세고비아(Segovia)로의 근교 당일여행을 추가하여 가능한 알찬 여행을 보내고자 계획했다.